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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벽돌이 이어놓은 시간

한 장의 벽돌이 이어놓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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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석정화 에디터

‘연희정음’은 1984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장석웅 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벽돌의 조형성과 단정한 비례미를 강조한 이 건물은 주거의 기능을 넘어, 김중업 건축의 미감을 오늘의 일상 속에서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연희정음의 지하에 카페 ‘푸어링아웃 메라키Pouring Out Meraki’가 문을 열며, 오래된 건축에 새로운 시간이 더해졌다. 이 공간의 이름 ‘메라키Meraki’는 그리스어로 ‘영혼을 담아 정성을 쏟다’라는 뜻을 가진다. 건축적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름이 공간의 사용 방식과 태도를 암시하는 셈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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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이 다시 숨 쉬는 공간

김중업은 벽돌을 구조적 재료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벽돌을 건물의 형태와 표정을 만드는 요소로 이해했다. 1978년 완공된 ‘태양의 집’에서는 남향 외벽 전체를 벽돌로 마감해, 빛의 방향에 따라 입면의 표정이 달라지도록 계획했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벽돌을 통해 건축의 시간성을 표현하려는 시도였으며, 연희정음은 그 연장선에 있다. 그렇게 김중업이 설계한 이 주택은 벽돌의 물성을 강조한 외피와 단정한 비례감을 통해, 주거 공간에서도 벽돌 건축의 조형적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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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벽에 옷걸이를 더해, 공간 구획과 실용적 디테일을 부여했다. ©BRIQUE Magazine
벽돌로 채워진 사진과 실제 벽이 이어지며, 공간이 하나의 장면처럼 보인다. ©BRIQUE Magazine

리모델링 과정에서 벽돌은 단순한 외장 재료가 아닌 공간의 색조와 구조로 작용했다. 건물의 진입부는 완만한 경사의 계단과 테라스로 구성돼, 콘크리트와 벽돌이 교차하며 내부로 이어진다. 재료는 바뀌지만, 질감의 차이를 통해 외부에서 내부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실내로 들어서면 외벽의 색조를 반영한 붉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인다. 벽면, 포스터, 조명까지 동일 계열의 톤으로 구성돼 외피의 물성이 인테리어로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액자 속 빛과 그림자가 실제 보이드의 빛과 겹쳐, 공간에 착시 같은 깊이를 만들어낸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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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빛이 교차하는 지점

연희정음의 1층을 활용한 카페 푸어링아웃 메라키의 내부는 기존 건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동선을 더했다. 공간의 중심에는 반 가벽이 놓여 있는데, 이 벽은 외부 테라스와 카페 내부를 시각적으로 분리하면서도, 동선을 자연스럽게 조정한다. 가벽을 기준으로 외부는 시각적으로 개방되고 체류 시간이 짧으며, 내부는 조도가 낮고 정적인 활동이 이뤄진다. 빛의 양과 시선의 높이에 따라 사용자의 행동 패턴이 달라지는 것이다.

화장실로 향하는 짧은 철계단은 건축 동선의 마무리 지점에 놓였다. 천장의 보이드는 상부의 자연광을 아래로 끌어드리며, 벽돌과 미장 마감의 대비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연희정음 내부 전시 공간 ©BRIQUE Magazine

 

왜 어떤 공간에서는 괜히 멍해질까. 필자는 평소 멍을 잘 때리지 않는 사람인데, 이곳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자꾸 시선이 멈춘다. 붉은 벽돌의 표면은 거칠었지만 따뜻했고, 그 질감이 내부의 공기를 천천히 바꿔놓았다.

 

시간 위의 건축

건축은 재료를 통해 시간을 기록하고, 사람은 그 안에서 일상의 흔적을 남긴다. 김중업은 “건축가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으며 자신의 자화상을 세워간다”라고 말했다. 연희정음의 벽돌 또한 한 시대의 건축가가 남긴 자화상이다.

리모델링 이후의 공간은 이 건축물 위로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고 있다. 푸어링아웃 메라키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잠시 머문다. 필자가 카페를 나설 때 들려온 밴드 오아시스Oasis의 ‘Whatever’은 이 공간의 현재를 잇는 하나의 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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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로 절단된 벽돌을 쌓아 만든 곡면 지붕. 각도의 반복이 자연스러운 음영을 만든다. ©BRIQUE Magazine

 


설계.
김중업 건축가

리모델링.
쿠움파트너스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 (연희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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