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과 하나된 몸들의 도시
글. 김정민 에디터. 김태진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우리는 보통 도시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화된 발명품이라 생각하며 자연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도시계획가와 설계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대로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문명의 산물처럼 말이죠. 그러나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닙니다.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존재가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공존합니다. 도시 공간에는 인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수많은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는 누구의 것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를 바탕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비인간 동물부터 새들, 쓰레기까지,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공존 방식을 탐색합니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질문이자 선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글 싣는 순서.
①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 집 밖의 동물들
② 새들과 함께 사는 도시 – 탐조와 스티커
③ 쓰레기와 함께 사는 도시 – 깨끗함과 더러움의 등가교환
④ 다양한 몸이 춤추는 도시 – 도래하지 않은 몸
⑤ 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 일상과 축제, 거리와 광장
⑥ 집이 필요한 모두를 위한 도시 – 너무 많은 집
⑦ 기술과 하나된 몸들의 도시 – 손 안의 삶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연다. 전날 주문해 새벽에 도착한 식료품을 냉장고와 주방에 정리한다. 나갈 시간이 되면 휴대폰을 꺼내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집을 나선다. 정류장에서 내렸지만 목적지는 아직 조금 멀다. 다시 휴대폰을 꺼내 가까운 공유 킥보드를 찾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킥보드를 주변에 세워둔다.
할 일을 마친 뒤 지도 앱에서 근처 평점 높은 카페를 검색해 들어가 커피를 마신다. 요즘은 데이팅 앱도 켠다. 실제 만남이 목적이라기보다 게임처럼 화면을 좌우로 스와이프하며 시간을 보낸다. 집에 가려 보니 버스가 30분 뒤에 온다. 자연스럽게 택시 앱을 켜 호출한다. 집에 도착하니 더 이상 에너지가 없다. 저녁은 배달을 주문한다. 휴대폰에 알림이 온다. 중고 거래 앱에 내놓은 의자를 가지러 온다는 메시지다. 문득 다음 주에 입을 정장을 드라이클리닝에 맡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시간이 늦어 세탁소에 갈 수 없어 세탁 앱으로 수거를 신청한다. 침대에 누워 SNS를 보다가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고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는 휴대폰과 함께한다. 하루 동안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생각보다 많다. 장보기, 버스, 공유 킥보드, 지도, 데이팅, 택시, 음식 배달, 중고 거래, 세탁까지.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흔한 하루의 풍경이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말이 등장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이제 휴대폰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작은 화면은 단순한 기기를 넘어 우리의 도시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핸드폰 Phone과 지성을 뜻하는 사피엔스 Sapiens의 합성어

플라뇌르Flâneur는 19세기 도시의 산책자였다. 보들레르가 묘사한 플라뇌르는 군중 속을 자유롭게 거닐며 감각과 관찰로 도시를 읽어내는 주체였다. 그들은 목적지 없이 걸었고 우연한 발견이 도시 경험의 핵심이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볼지 스스로 결정했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 경험은 달라졌다. 위치 기반 서비스와 소셜 미디어, 배달 앱까지. 우리는 어디로 이동하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날지 플랫폼의 중개를 거친다. 지도 앱이 제시한 길을 따르고 추천 알고리즘이 알려준 카페를 방문한다. 데이팅 앱의 스와이프 인터페이스 안에서 사람을 만난다.
이제 우리는 도시를 물리적 공간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플라뇌르는 거리뿐 아니라 스마트폰 속 플랫폼을 경유하며 이동한다. 이를 ‘디지털 플라뇌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고전적 플라뇌르와 다르다. 디지털 플라뇌르의 자유로운 산책은 이미 알고리즘이 그려놓은 경로 위에서 이루어진다. 선택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선택지 자체가 필터링되어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러한 개별 사용자들의 선택들이 도시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도시 연구자 ‘사라 반스Sarah Barns’는 플랫폼이 도시를 바꾸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거대한 시스템보다 일상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도시 이론가 앙리 르페브르의 생각을 빌려와 ‘플랫폼 어바니즘Platform Urbanism’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반스가 강조하는 건 간단하다. 플랫폼이 도시를 바꾸는 건 대단한 도시 계획이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앱을 켜고 끄는 그 순간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달 앱으로 저녁을 시키고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리고, 지도 앱으로 길을 찾는 이런 평범한 행동들이 모여서 도시 공간의 의미를 다시 만든다. 달리 말하면 디지털 플라뇌르의 개별적 행동들이 누적되면서 도시 자체가 플랫폼화되어 가는 것이다.
디지털 플라뇌르의 경험은 기술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길을 잃으면 지도 앱이 안내하고 시간이 남으면 추천 알고리즘이 카페를 제안한다. 데이팅 앱에서의 스와이프는 데이터로 기록되어 다음 추천을 정교하게 만든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택시를 호출하고 음식을 주문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플랫폼이 제공한 선택지 안에서 움직인다. 알고리즘의 논리가 이동 경로와 만남의 방식, 소비 패턴을 조직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일방적이지만은 않다.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의자를 가지러 온 이웃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사용자에서 지역 주민으로 전환된다. 지역 기반 플랫폼은 거래를 넘어 관계를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강다희(2023)는 지역 플랫폼 ‘당근마켓’의 사례를 통해 “플랫폼 안에서의 만남 속에서 구성원 간 신뢰가 쌓이면서 더욱 시민적 참여와 실천을 촉발시키게 되고 이는 헤테로토피아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물건을 거래할 뿐만 아니라 동네생활 게시판을 통해 지역 정보를 공유한다. 공원 산책이나 스터디 모임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낸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교류의 통로가 되어준다. 나눔과 환경 보호 같은 공동의 가치를 함께 실천한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도시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이것이 플랫폼 어바니즘이 보여주는 복합적인 진실이다. 도시는 더 이상 물리적 공간만도, 알고리즘만의 영역도 아니다. 디지털 플라뇌르의 선택과 구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 풍경을 소비하는 순간 거리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배달 플랫폼은 우리의 선택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또 다른 층위를 재편한다.


공소현(2022)의 연구가 보여주듯 변화는 분명하다. 한강공원 잔디에는 배달 용기가 쌓인다. 공원은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하는 제 3의 장소가 되었다. 거리의 작은 음식점은 문을 닫고 편의점이 배달의 허브가 된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앱을 켜고 음식을 주문한다.
그러나 그 장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주문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거리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가 정아람은 전시 ‘관심 연습’에서 배달 라이더 세 명과 협업해 그들의 시선을 기록했다. ‘일의 세계 (The World of Work, 2022)’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한 라이더들이 음식을 픽업하고 배달을 완료할 때까지, 그들의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포착한 것이다. 화면 속의 초점 선들은 끊임 없이 이동한다. 신호등에 멈춘 라이더의 눈은 다음 목적지를 찾고 건물 입구에서 헤맨다. 그 움직임은 마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플라뇌르가 도시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아람이 드러낸 것은 정반대다.
제한된 시간 안에 과제를 완료해야 하는 플랫폼 노동의 조건에 동기화된 시선. 그것은 라이더의 자율적 선택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지정한 경로 위에서 강제된 움직임이다.
우리는 앱에서 주문 버튼을 누르며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버튼 하나가 거리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규정하고 몸의 이동 경로를 그린다. 공원에서 음식을 받아드는 우리의 자유 뒤에는 결정권 없이 이동하는 또 다른 신체가 존재한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선택의 집합은 도시의 다른 영역을 조직한다. 반스가 말한 ‘평범한 행동’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도시의 한쪽을 해방시키고 다른 한쪽을 구속한다. 우리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 누군가의 다리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
참고문헌.
강다희. (2023). 디지털 장소로서 플랫폼 의미와 역할 탐색: ‘당근’을 사례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26(3), 159-173.
공소현. (2022). 플랫폼 어바니즘이 도시 공간 이용에 미치는 영향.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홍다솜, 백일순. (2022). 플랫폼의 성장과 도시공간의 변화: 플랫폼 도시주의의 이해. 한국도시지리학회지, 25(2), 83-97.
김정민 Jungmin Kim
김정민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들, 특히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존재들 –소수자, 식물, 동물, 건축과 자연 등 –에 관심을 두고 글과 전시, 책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왔다.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SoA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도시연구단체 ‘서울퀴어콜렉티브’를 창립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와 ‘타자 종로3가, 종로3가 타자’ 등을 통해 지역성과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청년 주거와 공간에 대한 비평적 시선으로 에세이집 ‘즐거운 남의 집’을 출간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속 소수자의 공간 창출을 주제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WHAT I MEAN을 개소해 디자인과 연구를 하며 지내고 있다.
*이번 회차를 끝으로 본 연재는 마침표를 찍습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다뤘던 문제의식과 시선은 브리크의 다른 자리에서 계속 변주될 예정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