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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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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민 에디터. 김태진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우리는 보통 도시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화된 발명품이라 생각하며 자연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도시계획가와 설계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대로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문명의 산물처럼 말이죠. 그러나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닙니다.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존재가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공존합니다. 도시 공간에는 인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수많은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는 누구의 것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를 바탕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비인간 동물부터 새들, 쓰레기까지,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공존 방식을 탐색합니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질문이자 선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글 싣는 순서.
①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 집 밖의 동물들
② 새들과 함께 사는 도시 – 탐조와 스티커
③ 쓰레기와 함께 사는 도시 – 깨끗함과 더러움의 등가교환
④ 다양한 몸이 춤추는 도시 – 도래하지 않은 몸

⑤ 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 일상과 축제, 거리와 광장
⑥ 집이 필요한 모두를 위한 도시 – 너무 많은 집


 

서울 홍대에 ‘걷고 싶은 거리’가 있던 2013년 6월 즈음,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작은 광장에서 여러 부스가 설치된 모습을 보았다. 이곳은 늘 다양한 행사가 열리던 장소라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려던 순간, 누군가 건네준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전단지는 무지개색으로 가득했다. 정확하게 기억 나진 않지만 ‘우리가 여기에 있다’ 라는 문장도 있었다. 그때 나는 인생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 정확하겐 ‘퀴어문화축제’에 들어선 셈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나는 퀴어문화축제의 중심에 있었다.

 

2013년 홍대 앞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Jungmin Kim

 

2017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시기였다. 어느 날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파리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파리에서 반쯤 오픈리퀴어로 살아가던 나는, 마침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망설임 없이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퀴어퍼레이드는 파리에서 맞이하게 됐다.

2013년 이후 4년의 공백이 있었고, 군복무 중이라 참여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대신 인터넷과 SNS를 통해 한국의 퀴어퍼레이드 분위기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괜히 마음이 잔뜩 긴장된 채로 집을 나섰다. 머리엔 무지개 머리띠를 장착한 채로. 하지만 이게 웬걸, 내가 들어왔던 퀴어퍼레이드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거리가 함께 즐기고 있었다.

 

2017년 파리 퀴어퍼레이드 ©Jungmin Kim
©Jungmin Kim

 

2018년 7월, 드디어 서울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내 의지로 찾아갔다. 축제 현장으로 향하던 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동성애 동성혼 OUT’, ‘NO!! SAME-SEX MARRIAGE’라고 적힌 팻말들이었다. ‘아, 이게 한국이지. 이게 서울이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웅장한 반대 집회 음악을 뒤로하고 서울광장으로 들어섰지만, 그 소리는 북과 장구의 울림과 뒤섞여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들, 북, 장구 소리에 둘러싸인 채 한가운데에서 자유로운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그 풍경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나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세 번의 퀴어문화축제와 퀴어퍼레이드를 경험했다. 우연히 걷다 참여했던 경험부터, ‘가겠다’는 의지를 품고 참여한 두 차례의 경험까지. 거리를 걸었던 두 번의 경험과, 광장에서 머물렀던 한 번의 경험. 한국에서의 두 경험과 유럽에서의 한 경험이 서로 다른 층위를 이루며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낸다. 광장과 거리는 무엇일까? 축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퀴어퍼레이드는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은 도시에 어떤 흔적과 의미를 남기는가?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Jungmin Kim
2018년 여름, 처음 찾은 서울 퀴어문화축제. 광장 입구엔 ‘동성애·동성혼 반대’ 팻말과 북·장구 소리가 뒤엉켰고, 그 소리를 뚫고 들어선 서울광장 한가운데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혼란과 자유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Jungmin Kim

 

도시 공간은 움직임으로 정의된다. 거리를 가로지르는 행진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도시를 점유하고 변형하는 행위다. 광장과 거리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몸과 목소리로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광장과 거리의 점유는 같은 행위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사방으로 열려 있는 듯 보이는 광장은 실제로는 트럭, 경찰, 북·장구 소리, 혐오 발언들로 둘러싸여 위태로운 균형 위에 ‘위태롭게’ 열린 상태가 된다.

르페브르가 말한 ‘전유’는 단순한 점유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 거주자들이 자신의 필요와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공간을 사용하고 변형하는 창조적 개입이다. 축제에 참여한 낯선 타자들—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일 년에 한 번 모였다가 흩어지는 난잡한 군중—은 그들의 몸짓과 존재만으로 공간을 점유한다. 평소 사적인 영역에만 가두어져 온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와 젠더가 대낮의 도시로 나온다. 이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긍정일 뿐 아니라, 평소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공공 공간에 실은 특정한 성별과 성적 지향의 표현만을 허용하는 규범성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다. 성소수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사실 자체가 공간의 의미를 전복한다.

거리를 걸으며 도시를 가로지르는 행진은 세상을 향한 일종의 선언이다. 순간적으로라도 거리가 ‘나의 것’이 되고, 동시에 내가 거리의 일부가 된다. 도시가 축제의 장으로 변환되는 바로 그 순간, 전유가 일어난다. 유럽의 거리를 걸었을 때 느껴졌던 자유로움—도시가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각, 누군가의 허락이 없어도 거리에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은 이러한 전유의 경험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행진 중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발코니에서 손을 흔드는 주민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로 호흡하는 순간. 이것이 행진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진정한 전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도시가 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경험이다. 거리를 나의 속도로 걷고, 나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허락이나 보호 없이도 도시의 일부가 되는 행위다. 축제적 전유는 이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도시민들에게 더 포괄적이고 민주적인 공공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을 남기며, 미래의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도시에 대한 진정한 점유란, 도시를 전유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자신과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고 고쳐 나가는 행위다. 그리고 이러한 축제적 전유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일년에 몇 번의 특별한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누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건축과 도시계획이라는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포용성을 실현할 수 있을까?

 

2025년 프라이드 플로트 컴페티션 우승작 <사진 출처= 런던건축축제 공식 홈페이지>
2025년 프라이드 플로트 컴페티션은 건축과 도시공간이 퀴어 공동체와 만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 담론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시도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런던건축축제 공식 홈페이지>

 

2025년 런던건축축제(London Festival of Architecture)가 프라이드 플로트(Pride Float) 컴페티션을 개최했다는 소식은 건축과 도시공간이 퀴어 공동체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건축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체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 담론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비롯한 주요 건축 행사들에서 퀴어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장면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문화적 관용의 수준 차이를 넘어서, 건축과 도시계획이 누구를 위한 것인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와 담론들이 표준적이고 규범적인 주체-핵가족, 이성애자, 비장애인-를 전제로 공간을 설계하고 논의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건축과 도시공간은 보다 포용적이고 급진적인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을까? 퀴어 이론가 잭 할버스탐Jack Halberstam이 말하는 ‘퀴어 시공간(queer time and space)’의 개념은 이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는 직선적 발전, 재생산 중심의 생활주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엄격한 분리를 전제로 한 기존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도전하는 대안적 시·공간성이다.

‘청소년 → 학업 → 대학진학 → 취업 → 결혼 → 임신 → 출산 → 육아 → 노후 → 사망’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원룸 → 투룸 → 아파트 → 더 큰 아파트’로 확장되는 표준적 주거 스텝, ‘학교 → 직장 → 육아시설’로 이어지는 공간의 순차적 이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규범적 시공간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전통적 성역할을 따르지 않거나, 직선적 커리어 경로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비규범적’ 삶의 궤적이 필요로 하는 공간은 무엇이며, 기존 도시계획은 이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질서가 전복되는 순간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틈새에서 어떤 대안적 관계와 정체성이 발현될 수 있는지(한윤애, 2015)’를 살피는 일은 단순한 학술적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광장의 경계 너머, 축제라는 일시적 형식 너머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퀴어퍼레이드가 보여주는 것은 일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의 장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무지개는 축제 때만 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점유하고,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시가 진정으로 모든 이의 것이 되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넘나들고, 그 규칙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참고 문헌.
김숙현 (2019). 도시공간과 축제, 그 윤리적 사유. 한국연극학, 1(72), 77-97
김현철 (2015). 성적 반체제자와 도시공간의 공공성 : 2014 신촌 퀴어퍼레이드를 중심으로. 공간과 사회, 25(1), 12-62
남궁태윤 (2020). 축제를 통한 사회적 소수자 간 ‘액화된 연대’에 관한 연구 : 서울퀴어문화축제 사례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정형은, 정현주 (2024). 집을 통한 이성애규범성의 시공간적 구성 – 출생률 관리 기제로서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을 사례로 -. 대한지리학회지, 59(4), 431-446
정희성 (2018). 역설적 공간으로써 퀴어문화축제 장 [석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한윤애 (2015). ‘축제적 전유’를 통한 공공공간의 재구성. 공간과 사회, 25(1), 63-94
허윤 (2020). 87년 이후 광장의 젠더와 계보 —한국여성대회, 장애여성운동, 퀴어문화축제를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49), 232-264
웹사이트.
londonfestivalofarchitecture.org

 

 

김정민 Jungmin Kim
김정민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들, 특히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존재들 – 소수자, 식물, 동물, 건축과 자연 등 – 에 관심을 두고 글과 전시, 책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왔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SoA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도시연구단체 ‘서울퀴어콜렉티브’를 창립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와 ‘타자 종로3가, 종로3가 타자’ 등을 통해 지역성과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청년 주거와 공간에 대한 비평적 시선으로 에세이집 ‘즐거운 남의 집’을 출간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속 소수자의 공간 창출을 주제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WHAT I MEAN을 개소해 디자인과 연구를 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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