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들과 함께 사는 도시
글 & 사진. 김정민 에디터. 김태진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우리는 보통 도시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화된 발명품이라 생각하며 자연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도시계획가와 설계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대로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문명의 산물처럼 말이죠. 그러나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닙니다.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존재가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공존합니다. 도시 공간에는 인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수많은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는 누구의 것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를 바탕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비인간 동물부터 새들, 쓰레기까지,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공존 방식을 탐색합니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질문이자 선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글 싣는 순서.
①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 집 밖의 동물들
② 새들과 함께 사는 도시 – 탐조와 스티커
③ 쓰레기와 함께 사는 도시 – 깨끗함과 더러움의 등가교환
④ 다양한 몸이 춤추는 도시 – 도래하지 않은 몸
⑤ 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 일상과 축제, 거리와 광장
⑥ 집이 필요한 모두를 위한 도시 – 너무 많은 집
언젠가부터 탐조라는 단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는데, 최근 한 수업의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의 취미가 탐조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고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에서 주인공인 탐정 코델리아 컵은 시도 때도 없이 탐조한다. 사건의 추리보다도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코델리아 컵이 그렇듯 탐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어 있고 새에 대해 말할 때면 두 눈이 초롱초롱하고 입이 바빠진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집에서 기르는 경우는 보지만 동물을 보러 간다는 일은 잘 들어본 적이 없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새를 좋아하는 ‘새-덕후’들은 탐조를 한다. 단순히 집에서 기르는 게 힘들어서일까? 왜 탐조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결국 나를 탐조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다행히도 주변에 탐조하는 친구가 있어서 ‘서울의 새’라는 단체를 소개받고 그곳에서 주기적으로 하는 탐조에 참여하게 됐다. 친구는 쌍안경을 꼭 사서 가라고 말했지만, 이리저리 바쁜 일상에서 쌍안경을 구매하는 것을 잊은 채 아침에 곧장 탐조 장소인 항동 푸른 수목원으로 향했다. 조금 늦은 탓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찾아 헤맬 줄 알았으나, 그들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일고여덟 명의 사람들이 저수지 데크에서 쌍안경을 쓰고 각자 이곳저곳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중엔 쌍안경이 아니라 기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로 갔지만 그들은 숨죽인 채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나도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내가 온 걸 눈치챈 분께서 나에게 쌍안경을 내어주시며 방향을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처음 떠난 탐조에서 쌍안경을 내 두 눈에 대고 본 새는 ‘물까치’였다.

그렇게 물까치를 시작으로 몇 번의 탐조를 더 떠났다. 탐조하면서 느낀 건, 탐조는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눈보다는 귀가 먼저 탐조를 시작한다. 길을 걷다 새 소리가 들리면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본다. 내겐 큰 차이가 없는 소리지만, ‘서울의 새’를 이끌고 있는 이진아 대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건 박새 소리예요.”
“이건 붉은머리오목눈이네요.”
“오늘은 잘하면 솔부엉이도 볼 수 있겠어요.”
아니, 사람 목소리도 잘 구별을 못하는데, 새 소리를 구별한다고? 나에겐 초능력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탐조가 영어로 ‘birdwatching’이 아닌 ‘birding’을 더 많이 쓰는 이유일 테다. 단순히 새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새(bird)를 향해 무언가를 하는(ing) 것이 탐조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보기, 듣기, 기록하기 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탐조가 끝나면 그대로 해산하는 것이 아닌 그날 본 새의 종류와 수를 기록하는데, 나는 ‘한 열 종류를 봤나? 아니다. 열두 종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탐조 고수들의 말은 끝나지 않는다. “원앙, 멧비둘기, 논병아리, 왜가리, 새매, 물까치…. 되새, 참새, 딱새, 큰부리까마귀, 곤줄박이, 쇠박새, 재두루미….” 나와 같이 다녔던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이렇게 많은 새는 어디 먼 야생에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연구원(2024)에 따르면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조류는 총 249종이다. 새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도시에서 평소 걸으면서 쉽게 볼 수 있는 새만 해도 비둘기, 참새, 박새, 까치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남미리, 류미, 주은정(2019)은 “아이들은 일상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이를 통해 자연과의 상호 관련성을 깨닫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태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 대해 깨달아 나가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생태적 정체성은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태적 정체성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만들어가게 된다. 도시 속 여러 가지 소음 사이에서 낯선 소리에 집중하고 그곳을 바라보며 낯선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지난 글에서 ‘목줄로 연결된 여섯 개의 다리’로 도시를 탐험했다면, 탐조는 조심스럽게 새의 모습을 상상하며 도시를 탐험하는 방법이 된다. 이처럼 도시에서의 탐조 행위 또한 생태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탐조는 앞서 말한 개인의 생태적 정체성을 만드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에 대한 미시적인 관찰 행위다. 탐조인들은 주기적으로 같은 장소를 비슷한 경로를 따라 길을 만들며 탐조한다. 이러한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 단순히 새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주기적인 반복 관찰을 통해 장기적인 변화 추세를 파악한다. 따라서 특정 종의 서식지 변화를 파악해 보호 구역을 설정하거나, 환경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탐조 행위를 통한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여전히 새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조류 충돌(bird strike)은 항공기뿐만 아니라, 빌딩 등에 새가 충돌하는 사고를 말한다. 입면이 통으로 유리로 된 건물은 보통 커튼월Curtain wall 건물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커튼월 건물은 건축 기술의 발전이고 도시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리로 쌓인 건물은 흔히 하늘을 그대로 반사한다. 인간 또한 바다 위에서 비행할 때 바다에 비치는 하늘 때문에 위-아래의 구분이 힘든 것처럼, 새들은 위아래가 아닌 전방에 있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을 뿐인데 그대로 창에 부딪혀 죽게 되는 일은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간단한 해결책이 하나 있다. 새들이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높이 5cm, 폭 10cm의 공간을 유리에 표시하는 것이다. 이는 ‘버드세이버’라고 하며 말 그대로 새를 구하는 도구다. 일반적인 버드세이버는 격자형으로 동그란 스티커가 붙여진다.

박수현 작가는 2023년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ANTI-FREEZE : 얼어붙지 않을 거야!’에서 ‘산(散)’이라는 작업을 전시했다. 이는 새들의 유리창 충돌을 막기 위한 버드세이버로 만들어졌는데, 기획한 학예사에 따르면 해당 전시 이후에 조류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작품은 해당 전시가 끝난 2024년 3월 이후에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미술작품이기도 하고 버드세이버이기도 한 스티커가 여러 새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유리 빌딩이 새들에게는 죽음의 벽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매년 가을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린다. 약 한 시간 동안 10만 발의 폭죽을 발사한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이 아름다움 뒤에 어떤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이 도시 축제를 그 전과 같이 즐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9월 말에서 10월의 한강공원은 겨울 철새가 매년 찾는 월동지다. 빛과 소리에 민감한 새들은 불꽃축제와 같은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을 느껴 방향 감각을 잃은 채 빠르게 비행하는 모습이 관찰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새들과 부딪히거나 건물, 차량, 나무 등과 충돌해서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꽃축제는 대기오염 등에도 환경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새에게 안 좋은 것은 사람에게도 안 좋다. 모두 지구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자. 새에게 좋은 도시는 사람에게도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249종의 새들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새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사실 새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다. 탐조하면서 알게 된 것은 새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둥지를 틀고, 지하철역 근처에서 먹이를 찾고,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새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록) 탐조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 Merlin Bird ID by Cornell Lab
필자가 찍은 사진이나 녹음을 통해 새를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이다. 동시에 기록어플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관찰한 위치와 날짜를 알 수 있고, 같은 종을 또 기록을 할 때에는 이미 기록한 조류라고 알려준다. - 네이처링
네이처링은 ‘온라인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이라고 소개된다. 개인의 기록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에 방점이 조금 더 찍혀있는 어플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점은 미션을 통해 함께 탐조활동을 같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뿐만아니라 네이처링은 조류와 여러 종류의 식물들 양서류, 갑각류 등도 함께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참고문헌)
- 남미리, 류미, 주은정 (2019). 도시 생태교육을 통한 초등학생들의 생태적 정체성 형성 과정 – 인공새집 모니터링 사례를 중심으로. 환경교육, 32(4), 498-513.
- 홍자경 (2023). ‘다종적 접촉’이 촉발하는 공거의 윤리. 국내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서울
- 서울연구원 (2024). 서울시 보호 야생생물 서식실태 조사와 재지정 연구
- 이예빈.“도시탐조를 아시나요?”. 한대신문.2022.09.26
- 김지숙.“탐조는 어르신 취미? 젊고 가까워진 ‘도시 탐조’”. 한겨레. 2022.06.19
- 김지숙.““이러다 다 죽어!”…3년 만의 불꽃축제, 새들은 어땠을까요?. 한겨레. 2023.12.28.
- 고나린. “불꽃놀이에 가려진 ‘조류 대학살’…미국선 화약 대신 드론 조명쇼”. 한겨레. 2024.10.09.
- 동물권행동 카라 성명. “동물에게 재앙이 되는 서울세계불꽃놀이 축제”. 한국NGO신문. 2024.10.05.
김정민 Jungmin Kim
김정민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들, 특히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존재들 – 소수자, 식물, 동물, 건축과 자연 등 – 에 관심을 두고 글과 전시, 책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왔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SoA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도시연구단체 ‘서울퀴어콜렉티브’를 창립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와 ‘타자 종로3가 종로3가 타자’ 등을 통해 지역성과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청년 주거와 공간에 대한 비평적 시선으로 에세이집 ‘즐거운 남의 집’을 출간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속 소수자의 공간 창출을 주제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WHAT I MEAN을 개소해 디자인과 연구를 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