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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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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정민 에디터. 김태진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우리는 보통 도시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화된 발명품이라 생각하며 자연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도시계획가와 설계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대로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문명의 산물처럼 말이죠. 그러나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이 아닙니다.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존재가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공존합니다. 도시 공간에는 인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수많은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는 누구의 것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를 바탕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비인간 동물부터 새들, 쓰레기까지,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공존 방식을 탐색합니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질문이자 선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이 도시에 살 것인가.

 

글 싣는 순서.
①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 집 밖의 동물들
② 새들과 함께 사는 도시 – 탐조와 스티커
③ 쓰레기와 함께 사는 도시 – 깨끗함과 더러움의 등가교환
④ 다양한 몸이 춤추는 도시 – 도래하지 않은 몸
⑤ 무지개가 지지 않는 도시 – 일상과 축제, 거리와 광장
⑥ 집이 필요한 모두를 위한 도시 – 너무 많은 집

 

서울, 산책하는 강아지 ©Jungmin Kim

 

‘강아지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라는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다음으로 많이 들어봤을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은 강아지와 고양이일 테다. 두 동물 모두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수 도널드슨Sue Donaldson과 윌 킴리카Wil Kimnika(2014)는 이러한 집 안(건물 안)에서의 동물을 ‘사육동물’이라 부르고, 집 밖에서의 동물을 ‘야생동물’이라 말한다.

모든 동물을 사육동물과 야생동물로만 구분할 수는 없기에 이 둘에 속하지 않는 동물은 ‘경계동물’이라고 부른다. 경계동물이란 도시 바깥 야생이 아니라, 도시 환경 안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비둘기, 다람쥐 등을 말한다. 집 바깥이 바로 야생이 아니기에 이른바 도시-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강아지와 고양이는 사육동물이기도 하고 경계 동물이기도 하다. 집 안에 있는 반려견과 반려묘의 경우에는 사육동물로 분류가 될 테고, 집 밖에서 서식하는 들개와 길고양이 같은 경우에는 경계동물일 테다. 그런데 집 밖에서 들개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이후에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집 밖에서 강아지를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다.

집 밖에서 보는 강아지는 보통 인간과 함께 목줄로 이어진 채 산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권소희(2024)는 이러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목줄로 연결된 여섯 개의 다리’라고 명명한다. 2m 가량 되는 ‘목줄의 장력을 매개로 내부-작용(intra-action)’과 함께 혼종적 주체로서 도시를 걸어 다니는 이들은, 두 다리로 걸을 때와는 다른 도시 경험을 한다. 코를 바닥에 대고 걷는 강아지는 어쩌면 도시를 눈으로 보면서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으며 산책하고 있을 거다. 냄새로 도시를 기억하며, 도시 이곳저곳을 여섯 개의 다리로 누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촬영한 길 고양이 ©Jungmin Kim

 

그렇지만 이들이 도시의 어떤 곳이든 여섯 개의 다리로 누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노펫존’의 등장이다. 손님들이 싫어해서, 불편해서라는 이유에 처음엔 납득을 했었다. 그리고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노(No) 섬바디’ 현상은 ‘노시니어’, ‘노유스’, ‘노키즈’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동물이 사람을 해치는 일보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더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노 사람존’을 만들진 않는다. 공간에서의 특정 대상에 대한 차별은 쉬이 다른 차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예 공간에서 배제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환대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여섯 다리의 혼종적 주체의 도시 산책은 마냥 도시와 만나는 즐거운 경험만은 아니다. 산책하며 길가에 있는 것들을 먹기도 하는데, 무언가를 먹는 소리가 들리면 반려인간의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반려동물을 향한 ‘간식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집 밖 도처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노펫존’이 공간에 대한 차별이라면 ‘간식 테러’는 그런 차별이 폭력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특정 공간에서 임의의 공간으로 공간적 성격도 넓어지고 스케일 또한 도시 스케일로 커졌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간식 테러는 산책하는 강아지보다도 길고양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어느 카페의 ‘노키즈 존’과 ‘노시니어 존’ ©Jungmin Kim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길고양이를 살해하는 방법을 공공연히 공유하기도 한다. 드라마 등에서 길고양이 혐오범죄가 소재로 사용돼 논란이 된 바 있다. 길고양이는 법적인 지위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권수빈(2023)은 “집고양이가 귀여운 이미지를 가지며 환영받는 한편 길고양이는 불쾌와 혐오, 무관심의 정동 가운데 놓여 있다”고 말한다.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 상에서도 ‘구조와 보호의 제외 동물’이다.

그런데 신고에 의해 포획되면 다시 유기 동물로 분리되고, 입양이 되지 않으면 안락사의 절차를 밟게 된다. 도시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는 안락사의 잠재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권수빈, 2023). 집 안의 고양이에 대해선 귀여워하면서 집 밖의 고양이에 대해서, 이른바 길고양이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유독 잔인하리만치 차갑다.

이렇게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도시 속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바로 길고양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캣맘이다. 이러한 차가움 속에서도 캣맘은 고양이와 함께 이 도시를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다. 캣맘들이 활동하는 시간은 보통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라진 새벽이다. 좁은 골목길을 옮겨 다니면서 고양이 밥을 주러 나서고, 길고양이도 같은 시간에 같은 골목을 돌아다닌다. 도시의 시간은 인간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닌 강아지, 고양이를 비롯한 비인간 동물들로도 채워지게 된다.

 

©Jungmin Kim

 

김사라 건축가가 설계한 파빌리온의 제목 워어엉, 탕탕, 뜨드르륵, 스윽, 쓰아악, 따닥은 건축 파빌리온의 재료를 가공할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적은 것이다. 도시를 거닐다 보면 이런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이제는 공사장이 없는 도시 속 장면을 볼 때면 어딘가 어색한 느낌까지도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만들어진 지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인지 여기저기 신축공사 뿐만 아니라 재개발 공사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재개발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인간끼리만 결정한다. 재개발될 때 신음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인 고양이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재개발 지역의 철거 과정에서 그곳에 살고 있던 고양이들은 갑자기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질병을 얻게 되기도 하며, 철거 중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우린 도시를 인간의 발명품이자 인간 소유의 것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지구는 한 번도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준 적이 없을 것이다. 재개발 시 쫓겨나는 고양이를 비롯한 여러 비인간 동물이 있을 것이다. 재개발은 더 이상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며, 도시 또한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100년도 채 못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하고자 한다. 지구의 시간에서 100년은 너무나도 짧은 순간일 텐데 말이다.
많은 도시계획이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거두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비인간 동물의 시간도 순식간에 뺏어버리는 일이 많다. 도시라는 공간에 우리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도시라는 시간 또한 우리 인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조금 느릴지라도 다양한 비인간 동물들과 함께 공존하며 이 도시를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 본다.

 

성수동 재개발 사진 ©Jungmin Kim

 

김정민 Jungmin Kim

김정민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체들, 특히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존재들 – 소수자, 식물, 동물, 건축과 자연 등 – 에 관심을 두고 글과 전시, 책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왔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SoA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도시연구단체 ‘서울퀴어콜렉티브’를 창립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와 ‘타자 종로3가 종로3가 타자’ 등을 통해 지역성과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청년 주거와 공간에 대한 비평적 시선으로 에세이집 ‘즐거운 남의 집’을 출간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속 소수자의 공간 창출을 주제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WHAT I MEAN을 개소해 디자인과 연구를 하며 지내고 있다.

 

참고 문헌.
권소희 (2024). 인간-반려견 산책 분석을 통한 인간-너머 도시의 가능성 모색.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권수빈 (2023). 교차하는 존재로서 동물-여성과 난잡한 돌봄. 여성학연구, 33(2), 41 – 86.
채윤 (2021, 3). 행성적 도시화와 비인간 동물의 삶, 도시권 운동의 생태적 확장. 뉴 래디컬 리뷰,(87), 237-264.
Donaldson Sue, and Will Kymlicka(2014). Zoopolis: A Political Theory of Animal Rights. New York: Oxford.

권안나. “[기자수첩]’노키즈존’ 차단 당한 아이들…차별을 배운다”. 뉴시스. 2024.11.20.
박지애. “재개발에 신음하는 길냥이들 “가이드 필요”[댕냥구조대]”. 이데일리.2024.02.11.
정혜린. “바늘·못·낚싯바늘 ‘간식 테러’… “반려견 산책시키기도 겁나요”. 한국일보.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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