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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구조가 가지는 힘

반복의 구조가 가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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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선아 에디터. 김태진

 

[오늘도 도서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일까요? 어쩌면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피난처이자 필요한 지식을 탐색하는 보고이며, 때로는 도시를 여행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합니다. 같은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도서관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맞이하고, 책과 사람, 그리고 도시와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들 곁에 있는 도서관의 공간적 특성과 건축적 가치, 그리고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도서관을 하나의 건축적 경험으로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좋은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서관이 많아진다면, 더 나은 도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도서관은 어디인가요?

 

글 싣는 순서.
① 나선으로 물결치는 지붕 사이로 – 서울시 성북구 오동근린공원 ‘오동숲속도서관’
② 반복의 구조가 가지는 힘 – 서울시 도봉구 ‘김근태기념도서관’
③ 층층이 쌓인 콘크리트 슬래브와 100년의 역사 – 서울시 용산구 ‘남산도서관’
④ 주민들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골목 도서관 –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
⑤ 단순한 조형이 만들어 내는 기적의 도서관 – 강원도 인제군 ‘인제 기적의 도서관’
⑥ 붉은 벽돌 건물이 만드는 작은 문화마을 – 서울시 중구 ‘손기정문화도서관’
⑦ 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⑧ 땅에 스며든 도서관 – 서울시 서초구 ‘방배숲환경도서관’
⑨ 한옥과 도서관의 판타지 –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천년서고’
⑩ 흐르는 것들의 자리 – 전라북도 전주시 ‘아중호수도서관’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인으로 평생을 활약한 고 김근태 선생의 길지 않은 생애는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역사의 한 페이지나 마찬가지이다. 1970~80년대를 거쳐 여러 차례 구속되었고,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는 유독 심한 정도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의 편지와 노트에 남아있는 “인간의 존엄은 어떤 폭력으로도 깨트릴 수 없다”는 믿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그의 사후 2016년부터는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이 만들어져 민주주의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상을 주고 있기도 하다.

어떤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방법은 재단을 세우고 상을 주는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추모 공간을 공공을 위한 도서관으로 만든다는 것은 일면 감동적인 측면이 있다. 과거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일상 속 도서관이 된다는 것.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러한 공간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라키비움(Lachiveum)’이라 부른다.

 

©Seona Kim
©Seona Kim

 

김근태 선생이 수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도봉구, 북한산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산새를 뒤로하고 김근태 선생을 기리기 위한 라키비움이 있다. 벽돌로 지어져 단단한 인상이 풍기는 김근태기념도서관은 수직성과 수평성이 강조된 벽들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의 외관은 계단을 뉘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도로 건너편에서는 병풍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복되는 사각의 프레임들은 건물의 우측부터 좌측으로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며 누구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외부 공간을 만들어 낸다. 반복되는 벽을 따라가다 보면 도서관의 입구, 혹은 김근태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발길이 닿는다.

 

©Seona Kim
©Seona Kim

 

커다란 벽이 중첩되어 보이는 외관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의 박물관처럼 진중하고 무거운 첫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의 첫인상은 모두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분명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중정의 폴딩도어가 활짝 열려있어, 또다시 건물 안에는 바람이 불었다. 딱딱한 외벽 안쪽으로는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부는 중정이 있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중정을 감싸며 순환하는 동선을 만들어낸다. 어느 층에 가도, 어떤 서가에 있든 중정을 만날 수밖에 없다. 중정 너머로 건너편의 서가가 보이고, 서가 사이의 사람들이 보인다. 벽이 중첩되는 것을 넘어 이곳엔 서가의 풍경들 또한 겹친다.

 

©Seona Kim
©Seona Kim
©Seona Kim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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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중정을 바라보고 앉기도 하고, 서가 사이에 마련된 책상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서가와 열람석이 정확히 구분돼 있던 기존 도서관의 구성에서 벗어나 마치 카페에 온 듯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북한산의 산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옥상 공간도 선택지 안에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 덕분에 사람들은 더 빈번히, 더 꼼꼼히 공간을 누린다. 어떤 이는 책을 펴 들고, 또 어떤 사람은 노트북을 열고 강의를 듣는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향유하는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도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상상했을 모습은 바로 이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Seona Kim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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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을 가로지르는 브릿지를 건너 전시관에 도달하자, 이 도서관이 어떤 사람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김근태 선생의 생애를 기록한 전시관은 별개의 진입구와 동선을 갖고 독립적인 장소로 운영된다. 도서관이 전면으로 나와 있는 것과는 달리, 전시관은 대지 가장 안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사진들, 옥중에서 보낸 편지, 재판에서 고문을 폭로하는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김근태 선생의 기록물들은 도서관이라는 친근한 공간과 연결돼 남의 이야기나 역사처럼 느껴졌던 민주주의를 더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을 방문한 사람들의 기억 한편에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남긴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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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기념도서관은 반복되는 사각형의 틀 안에 아주 말랑한 것들을 채워 넣는다. 그것은 햇빛과 바람이기도 하고, 주민들의 여유로운 일상이기도 하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향하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수필을 만났다. 도서관을 우연히 방문하게 된 사람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수강한 주민도 있었다. 도서관에 얽힌 각자의 사연들로 빼곡히 종이를 채운 글자 사이, 행간에는 김근태기념도서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있었다.


설계.
여느건축디자인 건축사사무소(홍규선)

위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279, 279-16

연면적.
1,662.29m²

구조.
철근콘크리트 RC

김선아 Seona Kim
김선아 필자는 건축하고, 사진을 찍는다. 디자인 스튜디오 스투키Studio Stuckyi에서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띵크오브미Think of Me에서는 공간을 개발하는 디벨로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건축 설계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을 아우르며 공간을 다루는 방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으며, 좋은 공간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도시 역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