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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조형이 만들어 내는 기적의 도서관

단순한 조형이 만들어 내는 기적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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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선아 에디터. 김태진

 

[오늘도 도서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일까요? 어쩌면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피난처이자 필요한 지식을 탐색하는 보고이며, 때로는 도시를 여행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합니다. 같은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도서관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맞이하고, 책과 사람, 그리고 도시와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들 곁에 있는 도서관의 공간적 특성과 건축적 가치, 그리고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도서관을 하나의 건축적 경험으로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좋은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서관이 많아진다면, 더 나은 도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도서관은 어디인가요?

 

글 싣는 순서.
① 나선으로 물결치는 지붕 사이로 – 서울시 성북구 오동근린공원 ‘오동숲속도서관’
② 반복의 구조가 가지는 힘 – 서울시 도봉구 ‘김근태기념도서관’
③ 층층이 쌓인 콘크리트 슬래브와 100년의 역사 – 서울시 용산구 ‘남산도서관’
④ 주민들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골목 도서관 –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

⑤ 단순한 조형이 만들어 내는 기적의 도서관 – 강원도 인제군 ‘인제 기적의 도서관’
⑥ 붉은 벽돌 건물이 만드는 작은 문화마을 – 서울시 중구 ‘손기정문화도서관’
⑦ 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⑧ 땅에 스며든 도서관 – 서울시 서초구 ‘방배숲환경도서관’
⑨ 한옥과 도서관의 판타지 –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천년서고’
⑩ 흐르는 것들의 자리 – 전라북도 전주시 ‘아중호수도서관’


도서관, 기적의 시작

2003년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방영 직후 ‘괭이부리말 아이들’ 같은 책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며 독서 열풍을 일으켰다. 예능 프로그램은 사라졌지만, 그 덕분에 시작된 건축은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여전히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 이야기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전국 17번째, 강원도 첫 번째로 한 인제군 공무원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직접 찾아가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2017년 이상윤 연세대 교수가 설계를 기증하고 지안건축과 협업했다. 다른 공공 설계 프로젝트와는 달리 12개월간의 기획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군 장병들이 참여한 워크숍을 통해 공간을 계획하는 참여 설계 방식을 택했다. 2019년 착공, 2023년 6월 완공해 문을 열었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단순한 형태를 지녀,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예상하기 어렵다. ©Seona Kim
©Seona Kim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만드는 원형의 대공간

도서관의 첫인상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투박하고 단순하다.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은 도서관의 외관은 동그란 벽에 규칙적으로 열린 창문, 원형의 매스에 꽂힌 기다란 직사각형 매스는 건축이라기보다 다른 뜻을 가진 기호처럼 다가온다.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예상하기 어려운 형태다.

 

들어서자마자 하나로 연결된 커다란 도서관이 반긴다. ©Seona Kim
©Seona Kim

 

하지만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한눈에 드러난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축소해 놓은 듯 커다란 원형 공간에 계단식 열람석들이 늘어서고, 그 아래는 북토크와 같은 행사가 열릴 수 있는 작은 무대가 있다. 높이 솟은 백색 기둥들은 도서관이라기보다 신전과도 같은 경건함을 자아낸다.

 

도서관은 여러 공간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통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 공간에서 소화해낸다. ©Seona Kim
©Seona Kim

 

이러한 대공간은 프로그램의 통합에서 비롯되었다. 건축가는 전통적인 도서관의 구분을 과감히 없애고 모든 공간을 하나로 연결했다. 방문객들이 도서관을 편안하게 이용하면서도 창의적인 탐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원형 구조 덕분에 중앙의 계단식 열람석에서는 도서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면서도 각자만의 독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Seona Kim
계단식 열람석에는 각자 자리를 잡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서가 사이로 빼꼼 보인다. ©Seona Kim
계단식 열람석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들과 층간 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Seona Kim

 

1층에서는 도서관 방문자들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독서, 공부, 각종 행사 참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서가들과 작은 동아리실들이 도넛과 같은 모양으로 완벽한 원형을 그리며 연결되어 있다. 2층 원형 서가를 따라 걷는 경험은 고대 아고라를 거니는 산책과도 같다.

 

한 방향을 바라보는 열람석은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Seona Kim
커다란 원형의 공간을 둘러싸고 2층에는 방사형으로 서가가 둘러져 있어, 방문객들은 책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공간을 탐험한다.©Seona Kim

 

1층과 2층은 적극적으로 연계된다. 극장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열람석을 따라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2층 서가를 둘러싼 복도에서도 도서관의 전체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이런 열린 구조 덕분에 XR뮤지엄, 미디어아트실, 동아리 스튜디오 등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도서관이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복합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원형 도서관에 연결된 직사각형 매스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어린이 도서관과 각종 세미나를 위한 강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Seona Kim

 

하늘이 내리는 도서관

인제 기적의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인제군의 슬로건이 ‘하늘 내린 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지역의 슬로건을 건축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공간이 또 있을까. 아무리 시원하게 열린 대공간이라 하더라도, 이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역시 채광이다.

 

©Seona Kim
©Seona Kim
얇고 깊은 그리드를 커다란 백색 기둥이 가볍게 받치고 있어 실제보다 더 큰 공간감과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Seona Kim

 

원형 공간 전체를 천창으로 구성한 건축가의 결단력과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깊은 그리드를 형성하고 있는 천창은 백색 기둥들이 가볍게 받치고 있으며, 그리드 사이의 투명한 창을 통해 외부의 자연광이 쏟아져 내려온다. 흐린 날에도 인공조명 없이 충분히 밝은 조도를 확보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면 그리드가 그대로 도서관 내부에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와 흔치 않은 풍경을 연출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움직이는 그림자, 햇빛이 기둥과 서가 사이로 스며들어 도서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전통적인 도서관의 무겁고 꽉 찬 분위기 대신, 마치 야외 소풍에서 책을 읽는 것 같은 개방감과 경쾌함을 선사한다.

 

서가 사이와 높은 벽면 틈속에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설비들이 숨어있다.©Seona Kim

천장을 모두 열어내기 위해 건축가는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한 설비적 측면에서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천장에 매입되는 설비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냉난방과 환기 역할을 하는 팬은 서가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삽입되어 있고, 야간 조명은 그리드를 따라 매입되어 있다. 2층 복도를 따라 벽등이 규칙적으로 설치되어 있어, 밤에는 또 다른 분위기의 도서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Seona Kim

 

도서관이 만드는 지역의 기적

2023년 6월 개관 이후, 인제군 인구의 6배에 달하는 18만 명이 이 도서관을 다녀갔다. 이는 단순히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을 넘어, 인제군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 인제를 찾는 관광객들은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나 백담사만 들렀지만, 이제는 기적의 도서관도 함께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개관 후 주말 정주 인구가 늘었고, 관광객들의 동선도 바뀌었다. 이런 건축의 힘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가 전국에 18개의 도서관을 만들어 수많은 지역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다시 한번 그 기적을 보여줬고, 기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Seona Kim

설계.
이상윤(연세대학교)+지안건축(박세희)

시공.
한나래종합건설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 140번길 52-7

대지면적.
9,993.70m²

건축면적.
2,225.71m²

구조.
철근콘크리트 RC

김선아 Seona Kim
김선아 필자는 건축하고, 사진을 찍는다. 디자인 스튜디오 스투키Studio Stuckyi에서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띵크오브미Think of Me에서는 공간을 개발하는 디벨로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건축 설계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을 아우르며 공간을 다루는 방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으며, 좋은 공간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도시 역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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