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크brique> 디지털 멤버십 정기구독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BMX공간공공 건축공공 놀이터공공 디자인공공공간도시롤러장브리크브리크매거진수변공간여의도 한강공원여의롤장자전거한강공원휠체어 놀이터Features
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자료. SOAP

 

[사사로운 공공건축]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나름의 다름을 추구한 공공건축물을 소개합니다. 공익과 합리라는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낭만과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건축가들. 이로써 전에 없던 공공건축물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이야기. ‘공공건축’과 ‘좋은 건축’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엿보는 일은 우리를 더 깊은 공간 경험,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흔한 도서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변화 – 푸하하하프렌즈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② ‘유스Youth’를 위한 복합문화공간 – 신아키텍츠가 말하는 ‘펀그라운드 진접’
③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 SOAP의 ‘여의롤장’
④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 구보건축사사무소 ‘연의생태학습관’

 


 

여의롤장에서 만난 다채로운 얼굴들

색깔이 같은 사람들을 찾아 울타리를 단단히 친 걸까, 누군가의 핀셋으로 뽑혀 분류된 걸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퍽 줄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달력을 뒤로 넘겨 적어 놓았던 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같은 업종이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이 대부분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올라선 트랙에는 어느새 나와 비슷한 사람들 뿐이다.

여의도 수변공원에 조성된 ‘여의롤장’은 바퀴 달린 탈 것을 이용한다면 누구나 모여 놀 수 있는 놀이터이다. 여의롤장에 찾아간 어느 평일 오후, 두 꼬마 아이를 데리고 온 외국인 가족과 BMX(묘기 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던 대여섯의 남학생 무리, 네 발 자전거를 탄 꼬마 아이와 화교로 보이는 어머니를 만났다. 나의 보편적 일상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사람들로, 그들은 여의롤장의 롤링존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같은 트랙을 달렸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사원증을 맨 여의도의 직장인도 나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바퀴라는 공통점으로 모두가 쉽게 어우러지는 ‘여의롤장’의 풍경이었다.

 

마포대교 아래, 수변공연에 조성된 여의롤장 전경 ©SOAP

 

모두를 위한 놀이와 운동의 장

2024년 4월 개장한 여의도 한강공원의 ‘여의롤장’은 자전거, 킥보드, 휠체어, 프레임 러닝 등 다양한 바퀴 달린 기구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열린 놀이터이다. 이 공간은 모든 연령대와 신체 조건, 운동 숙련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이들부터 장애인, 가족, 러너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 개방적이면서도 안전한 환대의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여의롤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야외 활동이 줄어든 장애인과 아동, 노인 등 소외되기 쉬운 이들이 한강의 자연을 바라보며 건강과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자리 잡고자 하는 서울시의 사업 중 하나로, 설계를 맡은 SOAP는 이러한 목적에 충실한 공간을 고안해냈다.

 

헬멧을 착용한 외국인 어린이를 귀여워하던 남학생들. 같은 트랙을 돌며 가볍게 눈으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여의롤장은 크게 ‘롤링존(Rolling Zone)’과 ‘플레잉존(Playing Zone)’, 그리고 주변에 위치한 ‘휴게존(Rest Zone)’으로 나뉘어 있다. 각 공간이 재미와 흥미를 유도하며, 서로 다른 활동 수준의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롤링존은 사방에 높낮이를 조절해 통로를 내었다. 곳곳에 낸 통로는 롤링존의 외부와의 경계를 잡아줌과 동시에 오르내리는 활동이 다른 영역과 연결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기획 단계부터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하여 트랙의 폭을 넓혀 안전성을 확보했고, 휠체어 사용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계단 높이와 경사도 조정, 다양한 환경 조건을 재현한 트랙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휠체어 사용자 역시 일상적인 도로 환경을 체험하고 밸런스, 회전 같은 고난이도 동작도 시도할 수 있다.

 

©SOAP
바닥의 언덕과 그래픽을 통해 가벼운 맨손운동이나 놀이활동을 할 수 있는 플레잉 존 ©SOAP

 

플레잉존은 다양한 연령대와 운동 수준의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모여 맨몸 운동이나 스트레칭, 점프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바닥에 동선 유도 그래픽이 설치되어 있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각자의 능력에 맞는 운동을 즐길 수 있다. 방문 당일에는 이곳에서 직접적인 활용 모습을 보지는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이 공간은 앞으로 각종 동호회 모임이나 지역 축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 같다.

트랙 한쪽에 자리한 휴게존은 휴식을 취하며 운동하는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벤치가 설치돼 있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점심시간을 활용해 산책에 나선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들의 밝은 모습에서 잠시나마 업무로부터 벗어나 활력을 얻어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여의롤장은 반드시 함께 하지 않아도, 여러 사람이 뒤섞여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체육 시설을 넘어, 전문적인 운동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연령과 운동 수준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열린 놀이터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말 없이 지켜보던 아버지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자전거 동호회로 보이는 남성들과 남학생 무리가 벤치에 모여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보기만 해도 넓어지는 이해의 폭

여담이지만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대형 총격, 폭탄 테러가 벌어져 16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온라인으로 이 소식을 접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SNS 계정에 프랑스 국기를 태그하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8,960km나 떨어진 파리와 서울, 직항편으로 12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먼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마음으로 연결됐다.

반면 파리보다 900km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매일 같이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적극적으로 애도의 뜻을 전하는 움직임은 소극적이다. 이러한 편향은 도덕적으로 탓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중동의 문화보다 파리의 문화를 더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벌어진 마음의 편향이라고 생각한다.

 

여의롤장은 6cm 이하의 단차가 있는 계단, 3 단으로 이뤄진 계단, 경사, 자갈길, 비포장 등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도로 환경을 재현하는 트랙 디자인을 통해 밸런싱, 터닝 등 휠 체어 이용자가 다양한 동작을 수 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SOAP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익숙하지 않아 발생하는 마음의 편향은 자주 벌어진다. 동물원에서 푸바오를 보았기 때문에 팬더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일상을 부분적으로 관찰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바라보아야만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의 ‘이런 삶’과 ‘저런 삶’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교감의 축적은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일의 초석이 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바퀴 달린 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여 놀 수 있는, 여의롤장이 귀한 이유이다.

 

©BRIQUE Magazine

 


프로젝트.
여의롤장

위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84

설계.
건축사사무소 SO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