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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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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선아 에디터. 김태진

 

[오늘도 도서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일까요? 어쩌면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피난처이자 필요한 지식을 탐색하는 보고이며, 때로는 도시를 여행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합니다. 같은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도서관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맞이하고, 책과 사람, 그리고 도시와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들 곁에 있는 도서관의 공간적 특성과 건축적 가치, 그리고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도서관을 하나의 건축적 경험으로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좋은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서관이 많아진다면, 더 나은 도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도서관은 어디인가요?

글 싣는 순서.
① 나선으로 물결치는 지붕 사이로 – 서울시 성북구 오동근린공원 ‘오동숲속도서관’
② 반복의 구조가 가지는 힘 – 서울시 도봉구 ‘김근태기념도서관’
③ 층층이 쌓인 콘크리트 슬래브와 100년의 역사 – 서울시 용산구 ‘남산도서관’
④ 주민들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골목 도서관 –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

⑤ 단순한 조형이 만들어 내는 기적의 도서관 – 강원도 인제군 ‘인제 기적의 도서관’
⑥ 붉은 벽돌 건물이 만드는 작은 문화마을 – 서울시 중구 ‘손기정문화도서관’
⑦ 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⑧ 땅에 스며든 도서관 – 서울시 서초구 ‘방배숲환경도서관’
⑨ 한옥과 도서관의 판타지 –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천년서고’
⑩ 흐르는 것들의 자리 – 전라북도 전주시 ‘아중호수도서관’


 

©Seona Kim

 

평창동에 자리 잡은 미술 아카이브

2023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미술관에서 출발하여 여러 기록을 수집하고 보관하기 위한 도서관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이곳은 일반적인 도서관과도 다르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처럼 전시를 위한 공간도 아니다. 미술관의 본래 기능에서 아카이빙을 위한 시설로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공간이다. 그러니까 미술관에서 뻗어 나온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인 것이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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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가 자리한 평창동은 지역의 역사와 고유한 색깔이 짙게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곡물창고인 ‘평창(平倉)’에서 유래해 물자를 모으고 나누던 창고의 이름이 붙은 이 땅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미술의 기록을 모으고 나누는 또 다른 창고가 들어섰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평창동 북악산 자락에 120여 개의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있지만 미술사의 기록물을 모으고 기록하는 장소는 지금껏 없었다고 하니,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그 빈자리를 채운 셈이다.

이곳은 완성작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완성작 이전의 기록을 보존하고 열람하는 장소이다. 작가 노트, 미완성 드로잉, 육필 원고, 일기, 서신, 메모, 사진, 필름과 같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창작자와 비평가, 큐레이터 등이 생산한 기록들이 이곳에 모인다. 이곳의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에는 일반 도서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전시도록과 아티스트북, 독립 출판물들이 서가에 꽂혀 있고, 누구나 들러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쉬어갈 수 있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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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지에 내려앉은 분절된 건축

도서관이라고 하면 커다란 건물로 이루어진 중앙집중형 공간 구성 방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평창동의 언덕을 따라 위치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기 어려운 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도로에 의해 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가장 아래의 도로에서부터 땅의 가장 윗부분까지는 높이 차가 20m 가까이 난다.

그러니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중심이 없는 공간이 되기로 한다. 분리된 땅을 굳이 합치지 않고, 공간을 용도에 따라 쪼개어 땅에 흩뿌리듯 올려놓았다. 땅을 깎아내는 대신 지형에 순응하여 언덕이 높아짐에 따라 건물도 함께 높아진다. 모음동과 배움동, 나눔동으로 이뤄진 세 개의 건물에는 위계가 없다. 각자 다른 용도로 쓰일 뿐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일반적인 미술관의 문법으로는 불편해 보이는 이 구성이, 역설적으로 미술아카이브를 평창동이라는 마을의 일부로 만든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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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부분으로 쪼개진 건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입면의 통일성이다.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모두 외벽에 메탈 패브릭 스크린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직조한 이 망사 같은 재료가 서로 다른 부지의 건물들을 하나로 묶으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과 풍경의 투명도를 조절하는 필터 역할도 한다.

미술관과 도서관은 둘 모두 태생이 빛과 그리 친하지 않다. 미술 작품과 도서는 모두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공간에 내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상할 것이고, 책은 바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공공의 장소인 미술관과 도서관에게 개방성과 투명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입면에 주된 재료로 쓰인 메탈 패브릭 스크린은 이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 직사광선은 걸러내고 풍경은 통과시키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드럽게 열어두면서 아카이브가 요구하는 채광을 조절한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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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만들어내는 열람의 풍경

아주 잘게 쪼개어진 조각들은 패턴이 되어 오히려 풍경을 해치지 않는 배경으로 자리하게 된다. 통창을 가리고 있는 메탈 패브릭 스크린도 그러하고, 천장의 조명들과 설비들을 가리고 있는 격자 형태의 알루미늄 천장 마감재도 그러하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도서관 부분인 라운지는 1층과 2층이 열려 있어 밝게 열린 공간감을 가진다. 이곳을 채울 서가와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하여 내부 공간의 디자인은 최대한 단정하고 깨끗한 배경이 되기로 했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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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고가 높은 공간에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여기가 도서관인지 갤러리인지 모호해진다. 아카이브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보안을 요하는 보존서고 등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목적 없이 들른 사람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디자인 중점을 뒀다. 그 결과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와 라운지는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를 잇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는 장소가 되었다.

 

©Seona Kim

 

도로와 맞닿아 있는 벽은 메탈패브릭이 감싸고 있는 통창으로 계획되어 낮에는 층고가 높은 공간에 햇살이 가득 드리운다. 스크린은 바깥 풍경을 완전히 가리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걸러낸다. 창 너머로 평창동의 경사진 골목과 낮은 지붕들이 보인다. 빛의 각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창밖 풍경은 다른 색을 띤다.

국내외 미술 분야 단행본과 연속간행물, 전시도록, 아티스트북, 독립출판물, 그림책 등 4500여 권의 책을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는 이 공간에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만을 위해 디자인된 가구들이 놓여 있다. 배경이 되는 고요하고 커다란 공간 안에서 가구는 오브제가 된다. 공간의 무드와 결을 함께하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더하는 원목 스툴들도 곳곳에 자리한다. 서가는 단순하지만 컬러와 형태의 변주를 통해 다양한 크기와 형식을 가진 도록과 기록물들을 보관한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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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때 한 번,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 번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를 방문해 시간을 보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카이브는 여전히 처음과 같은 결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었다. 건축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가구, 사이니지, 서적 분류 시스템, 리플렛과 책자들이 모두 일관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무엇 하나 대충 한 것이 없고, 관람객이 보게 되고 만지게 되는 모든 것들에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 시간 동안 여러 메시지를 던지는 전시들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로 들어설 때,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사이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느껴졌던 소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치 고요함만이 공간에 흐르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평화로웠다. 복잡한 도심의 일상에서 피로함을 느낀다면 이곳에서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이다.

 

©Se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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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건축사사무소 아크바디 (김성한)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문화로 101

대지면적.
7,347.00㎡

구조.
철근콘크리트 RC

 

김선아 Seona Kim
김선아 필자는 건축하고, 사진을 찍는다. 디자인 스튜디오 스투키Studio Stuckyi에서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띵크오브미Think of Me에서는 공간을 개발하는 디벨로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건축 설계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을 아우르며 공간을 다루는 방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으며, 좋은 공간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도시 역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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