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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여정, 건축은 멈추지 않는다

60년의 여정, 건축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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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최성우 에디터. 김태진

 

[이베리아반도 유랑기] 오래전부터 막연히 가보고 싶었던 포르투와 알함브라. 두 도시를 지도에 핀으로 찍고 출발한 여행, 단 하나의 숙소만 예약한 채 아무런 정보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보다 ‘유랑’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다시 지중해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며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남프랑스의 25개 도시와 지역을 64일 동안 거닐며 기록한 유랑일지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포르투, 무엇으로부터 매력을 느꼈는가 – 포르투에서 만난 장면들
② 유럽의 땅끝에 가다 – 호카곶과 사그레스 요새
③ 60년의 여정, 건축은 멈추지 않는다 – 레사 조수 풀장 Piscina das Marés
④ 시민에게 사랑받는 축구 클럽과 채석장 위에 세워진 경기장 – 브라가 시립 경기장 Estádio Municipal de Braga
⑤ 미술관 곁에는 늘 정원이 있었다 – 세할브스Serralves, 굴벤키안Gulbenkian, 파울라 헤구Paula Rego 미술관


여행 버킷리스트는 바다 수영!

최근 몇 해 동안 바다 수영을 하지 못했다. 국내에 있을 때는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해서 이번 여행 중 버킷리스트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유럽의 여름에서 ‘바다에서 수영하기’, ‘해변에 누워있기’라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게다가 포르투갈 대표 건축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1933~)의 건축답사까지 가능하다면 어떨까.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피시나 다시 마레쉬Piscina das Marés(이하, 조수 풀장)에 꼭 가야만 했다. 포르투 시내에서 거리가 있었음에도, 외국에서 수영장 시설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라 특별히 사전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야외 활동은 기상 조건에 크게 좌우되므로 방문 날짜를 결정하는 부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레사 조수 풀장에 둥둥 떠서 ©Sungwoo Choi

 

포르투의 북서쪽, 마투지뉴스 시의 레사 다 팔메이라로 가는 길

조수 풀장은 포르투의 북서쪽 마투지뉴스Matosinhos 시 레사 다 팔메이라Leça da Palmeira(이하 레사)에 있다. 포르투 시내에 있는 상 벤투São Bento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산정하면, 이동 시간은 차량을 이용하면 26분, 메트로와 버스(1~2번 환승)를 이용하면 도보까지 포함해 최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개인적 선호로 대중교통 이용을 지향하는 편이므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메트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메트로 트린다드Trindade 역에서 출발해 메르카두Mercado 역에 도착하기까지 변수는 없었다. 버스 환승에서부터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시간대로 버스가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130번 버스에 올라 강 건너 마을 초입에서 풀장까지 걷는 경로를 개척했다. 사전 답사 때는 메르카두 역에서 풀장까지 걷는 방법을 택했는데,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동네(도시)에 도착하면 거닐며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나만의 여행 방식 덕분에 오히려 즐거운 일이었다.

 

메르카두 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Sungwoo Choi

 

바닷가에 수영장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조수 풀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다는 강한 조류, 예측이 어려운 파도, 갑작스러운 수온 변화, 해양 생물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환경이다. 이러한 자연적 요소를 극복해 온 가족이 함께 안전한 환경에서 바닷물을 활용한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조수 풀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해수욕을 건강 치료의 일환으로 권장해 왔다. 바닷물이 피부 질환, 정신 안정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귀족과 중산층 사이에 유행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도 공공 수영장은 치료의 의미를 넘어서 공공복지와 건강 증진 정책 차원에서 시민을 위한 복지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레사 조수 풀장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알려졌지만, 마투지뉴스 시민들에게는 매우 일상적인 장소다. 풀장이 개장하는 6월부터 9월이 되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기는 장면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레사Leça 해변에 조수 풀장을 조성하는 것은 마투지뉴스 시의회의 숙원 사업이었다. 시의회는 1960년 해수욕 시즌 개장을 목표로 조수풀장 조성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부지는 레사 해변 인근, 대서양을 따라 조성된 해안대로인 ‘아베니다 센테나리우스Avenida Centenários’ 옆에 있는 암반으로 둘러싸인 만이 선정되었으며, 해당 지역에는 ‘마이아 라랑자Meia-laranja’*라 불리는 구조물이 설치된 장소이기도 했다. 시의회는 엔지니어 베르나르두 페랑Bernardo Ferrão으로부터 설계안을 받아 검토해 본 결과, 조수만으로 수영장에 물을 충분히 공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논의를 거듭할수록 수처리 등 설비 시설의 추가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 건축 프로그램의 복잡성과 더불어 도시의 구조와 배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의견이 수렴되었다. 이에 따라 건축가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이루어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프로젝트에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마이아 라랑자Meia-laranja: 직역하면, ‘반쪽짜리 오렌지’라는 뜻으로, 하늘에서 평면으로 보면 반구형의 둥근 모양의 구조물, 해안의 전망대, 쉼터 등으로 활용되는 돌출 구조물을 말한다.

 

아베니다 센테나리우스 대로에서 레사 조수 풀장이 보인다. ©Sungwoo Choi

 

입구에 들어서면 서서히 스며들듯, 그러나 분명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해변을 보고자 한다면, 가능한 길 가장자리로 바짝 붙어서 걸어야 한다. 조수 풀장의 양옆 해변에 있는 카페테리아가 우뚝 솟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붕 선이 거의 도로와 일치해 건축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자칫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외관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건축물이었다.

레사 조수 풀장 입구에 도착해서 보이는 수영장으로 돌입하는 경사로(Ramp)의 끝에서 시선은 콘크리트 벽에 의해 막힌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 매표소 직원에게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상에선 보이지 않던 입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다시금 방향 감각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콘크리트 벽이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을 뿐, 여전히 해변도, 수영장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확신은 없었지만, 벽을 따라 걸어가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계획 초기만 하더라도 레사 다 팔메이라 지역에는 고층 건물이 없었다. 당시 수영장에서 도시 쪽을 바라보면 오직 하늘만 보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감각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 ©Sungwoo Choi
지붕만 보일 뿐, 바다를 가리지 않고 풀장으로 통하는 길도 숨겼다. ©Sungwoo Choi

 

건축 비평가 페드루 비에이라 다 알메이다Pedro Vieria da Almeidas는 1967년 건축 매거진 ‘아르키테뚜라Arquitectura’에 기고한 글에서, 레사 조수 풀장에서의 경험을 ‘시간 속에 펼쳐지는 연속(succession of an unfolding in time)’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는 건축적 경험을 영화적 사고로 기반한 숏(Shot, 장면)에 비유한 것으로, 건축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퀀스Sequence’ 개념과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장면만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이동하거나 움직이면서 겪게 되는 경험의 연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레사 조수 풀장으로 입장하기 위해 경사로를 내려오고, 입구를 지나 환복하고 수영장으로 도달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알바루 시자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예이다. 도로 높이에서 이미 풀장 일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환경을 지나 완전히 열려 있는 자연의 일부로 있는 수영장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더욱 극대화된다.

조수 풀장으로 진입하는 경로는 건축물 중정을 거쳐 돌입하는 메인 동선 외에도 2가지가 더 존재한다. 하나는 경사로를 따라 내려와 정면에 보이는 북측 플랫폼을 향해 직진하는 경로이며, 다른 하나는 그 옆에 있는 좁은 통로를 콘크리트 벽을 따라 테라스 스낵바를 통해 진입하는 경로이다. 실제 필자는 탈의실을 거치는 건축적 경험을 하지 못하고 스낵바 테라스를 통과하는 3번째 경로를 통해 조수 풀장의 장면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경사로를 내려가며 여정이 시작된다. ©Sungwoo Choi
건축적 산책(=헤맴)을 제공하는 입구 ©Sungwoo Choi
탈의실을 통해 가는 입구는 아마도 여기, 나오는 길에 남겨둔 사진이 있었다. ©Sungwoo Choi

 

이제 수영하러 갈 시간이다

레사 조수 풀장에는 탈의실과 샤워실은 마련되어 있으나, 라커 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방문한 당시에는 탈의실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방문하기 전, ‘라커룸이 없다’라는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는 건 화장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탈의실’의 존재는 논외였다. 그 존재는 귀국 후, 자료를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 도면을 통해 위치를 확인해 보니 유일하게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곳에 탈의실이 있었다. 샤워기는 화장실과 함께 있는 실내 샤워실과 실외의 경우는 풀장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다. 개인적으로는 샤워기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미 다른 해변에서 익숙하게 접해 온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해변을 찾았을 때 목격했던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백팩을 메고 해변을 찾아와 커다란 비치 타월을 펼쳐 자리를 잡았다. 일상복 차림으로 도착한 그는 비치 타월을 몸에 두른 채 해변 한가운데에서 옷을 갈아입었고, 바다로 들어갔다. 수영을 마친 뒤에는 해변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책을 읽는 등으로 시간을 보낸 뒤, 그는 비치 타월을 탈의실 삼아 환복 후 처음 도착했을 때 모습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이러한 모습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들이 공원 잔디밭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이 일상의 일부임을 보여주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연장선이다.

레사 조수 풀장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다르지 않았다. 바위 곁이나 모래사장에 비치 타월을 펼쳐 자리는 잡고 수영과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가지 옵션이 있다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선베드와 파라솔을 대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해변과는 달리 개인 파라솔을 지참해서 입장할 수 없다.

 

모래사장과 바위가 있는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Sungwoo Choi
스낵바 테라스와 이어지는 북쪽 플랫폼은 콘크리트 바닥에 선베드와 파라솔이 있다. ©Sungwoo Choi
바테라스 앞 선베드 ©Sungwoo Choi
스낵바 ©Sungwoo Choi

 

수영장은 성인용 풀장과 어린이용 풀장, 두 곳이다. 성인용 풀장은 세 가지 구간으로 나뉜다. 가장 얕고 경사가 완만한 1구간은 수심이 0.9m에서 2.5m 사이이고, 2구간은 2.5m에서 4.05m까지 수심이 깊어진다. 3구간은 다이빙 구간으로 계획되었으나, 현재는 다이빙이 금지되어 있다. 운영 초기에는 탈부착할 수 있는 점프대를 설치해 운영했다. 이 구간은 수심 3.8m에서 4.0m 사이, 길이와 너비는 33.33m x 20m로 2.5m 폭의 레인 8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어린이용 풀장은 전면이 곡선 형태의 콘크리트 둑으로 둘러싸인 50cm 정도 깊이의 얕은 풀장이다. 양옆과 후방으로 자연 바위가 감싸고 있어 한쪽 옹벽이 높게 쌓여 있는 성인용 풀장에 비해 훨씬 더 자연에 가까워 보인다.

6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대서양의 바닷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아이들은 차가운 물에도 끊임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성인용 풀장의 깊은 수심의 구간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다이빙은 허용해 주는 분위기였다. 물에 들어갈지 망설이다 보니 샤워기에 물을 축였던 몸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심호흡한 뒤, 마치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듯 다리부터 가슴까지 차례로,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풀장에 설치된 사다리 계단을 다 내려와 한 발을 내딛는데, 발이 닿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때 흥미로운 디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풀장 가장자리를 따라 발을 디딜 수 있는 얇은 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턱 위에 올라서면, 물에 떠 있기 위해 백조처럼 지속적으로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어 지치지 않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레사 조수 풀장에 둥둥 떠서 ©Sungwoo Choi
어린이 풀장 ©Sungwoo Choi
풀장 사다리 계단(왼쪽)과 실외 샤워기 ©Sungwoo Choi

 

‘건축’이라는 여정

레사 조수 풀장은 1966년 개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모습은 완성 단계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이후, 약 60년에 걸쳐 수차례의 보완과 확장 공사가 진행됐다. 시대별로 달라지는 법적 기준에 따라 새로운 시설물이 추가되기도 하고, 노후된 부분은 부분, 전면 보수를 해야 했다. ‘디자인 연대기Design Chronology’를 살펴보면, 1960년 시의회에 제출된 첫 계획안에는 성인용 풀장으로만 그려져 있었다. 이후 알바루 시자가 합류해 1961년과 1962년 계획안에는 현재 건축 프로그램이 대부분 포함된 설계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점에 이미 레사 조수 풀장의 전체 틀이 다 갖추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연도는 실제 시공 시점이 아니라, 계획안이 제출된 해이다.

1965년 북측 플랫폼 확장 계획이 수립되면서, 레스토랑 공간 계획과 배치가 고려되었다. 1973년에는 보다 종합적인 보완 계획이 마련되었다. 이후 19905년 레스토랑에 대한 세부 설계안이 확정되었으나, 결국 지금까지 미완성으로 남았다. 알바루 시자는 2018년 보수 계획을 통해 북쪽으로 길게 뻗은 콘크리트 바닥의 플랫폼의 꺾인 형태로 남겨둔 이유는 “우리에게 계획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최근의 전면 보수와 증축은 2018년 계획안에 따라 2019년부터 2021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2021년 6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해수욕 시즌과 함께 레사 조수 풀장은 재개장했다. 현재 마주한 조수 풀장의 모습은 단기간에 한번에 완성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번의 계약을 통한 설계와 시공, 그리고 해석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푸른 하늘과 반전이 되어도 모르겠다. ©Sungwoo Choi
바다와의 경계는 어딜까? ©Sungwoo Choi
바 테라스에 본 풀장 ©Sungwoo Choi

 

포르투대학교 건축 및 도시 연구센터 테레사 쿠냐 페레이라Teresa Cunha Ferreira 연구원의 접근 방식 중 ‘디자인 고고학Design Archaeology’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흥미롭다. 알바루 시자가 남긴 격언과 같은 말들을 토대로 이 프로젝트를 고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장소도 버려진 곳은 없다”, “아이디어는 장소 안에 있다”, “건축가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변형할 뿐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레사 조수 풀장에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 테레사의 생각이다.

조수 풀장이 만들어지기 이전, 남쪽 레사 해변에는 반원형 암석으로 둘러싸인 자연적으로 형성된 풀장이 있었다. 실제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어렸을 적 물놀이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랍스터 탱크와 마이아 라랑자 구조물이 있었으며, 이곳 해변의 경관은 극도로 수평적이고 하나둘씩 바위가 튀어나온 형태를 띠고 있었다. 시자는 이러한 지형적 조건과 ‘바다가 해변을 만나는 선’, ‘해변이 다시 바다를 만나는 선’, ‘도로 옆 긴 옹벽’이라는 세 개의 평행을 더해, 도로에서 시야를 가리지 않는 단층 구조의 남북 방향으로 긴 건축물을 설계했다. 이 건축물은 마치 바닷가 벽에 닻을 내린 배처럼 보였다. 건축물 규모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시자는 건축적 산책(Architectural Promenade)을 적용해 지그재그 형태의 동선을 만들어 깊이에 대한 감각을 역설적으로 자극하여 점진적인 경험의 전개를 유도했다. 시자 자신은 레사 풀장 설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풀장이 있어야 할 장소도, 길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곳에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라고.

 

바위와 콘크리트 ©Sungwoo Choi
바위와 풀장 ©Sungwoo Choi

 

여전히 완성되어 가는 중

근대건축 또한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대다. 레사 조수 풀장 역시 그러한 맥락 속에서 2011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1960년대에 조성된 이 구조물은 60년이란 세월 동안 강력한 해풍과 해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곳곳에서 부식과 결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알바루 시자는 보존과 보수 작업을 맡으면서 젊은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순간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일부 건축가는 이전 작업을 과감히 변형하는 데에 개방적인 입장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시자는 1958년 준공된 보아 노바 티하우스 앤 레스토랑Boa Nova Tea House and Restaurant를 1992년에 다시 작업해야 할 상황에서 과감한 변화는 프로젝트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작업을 수정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저항하고, 이미 구축된 완결성을 존중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북쪽 플랫폼, 왼쪽으로 레스토랑 건물이 계획되어 있었다. ©Sungwoo Choi
북쪽 플랫폼을 도로 높이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 ©Sungwoo Choi
남쪽 플랫폼, 왼쪽으로 가면 화장실, 탈의실 등 건축물과 연결, 앞으로 이동하면 레사 해변과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Sungwoo Choi
바위에 놓인 콘크리트 계단 ©Sungwoo Choi

 

2018년 레사 조수 풀장 프로젝트의 보수를 맡게 되었을 때도 그는 동일한 태도를 고수했다. 기존 건축물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개보수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노출콘크리트를 다루면서 보여준 태도가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시자는 콘크리트의 전체적인 교체보다는 국소적인 수리를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덧댄 흔적’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시간의 흐름이 만든 흔적을 감추고 싶지도, 감출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패치Patch’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시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브루탈리스트적’ 태도이며, 최초 설계 과정에서부터 주장했던 ‘소재의 진실성’이라는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최초 설계 기획에서부터 계획되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보류되었던 레스토랑의 부재를 ‘완결되지 않은 작업’으로써 마무리하는 선택을 했다.

어쩌면 건축의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건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과 시간 속에서 여러 층위가 쌓이고 계속해서 새롭게 쓰는 영속적인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시간 차로 콘크리트의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 하나씩 채워 나간 레사 풀장의 히스토리가 남아 있다. ©Sungwoo Choi
시간의 흔적 ©Sungwoo Choi
주요 건축 재료 – 콘크리트, 목재, 금속 ©Sungwoo Choi
실내 샤워실 ©Sungwoo Choi
샤워실로 목조 지붕과 보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 ©Sungwoo Choi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떠나온 길

강렬한 햇살 아래, 오랜만의 물놀이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오후였다. 여행의 공간 ‘조수 풀장’에서 현실의 공간 ‘도로’로 되돌아온 그 자리에는 여전히 느리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둑에 앉아서 짐을 정리하는 사람, 바다를 바라보며 여운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도 필자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지 혼자 웃음을 지어 본다. 포르투갈의 여름은 낮이 길다. 오후 7시, 한국에서는 햇살이 길게 드리울 시간이지만 여전히 한낮처럼 밝다. 나 또한 여운을 조금 더 느끼기 위해, 그리고 마르지 않은 옷을 말릴 겸, 귀갓길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건축물에서 남쪽 플랫폼으로나오는 출입구 ©Sungwoo Choi
기다리는 마음 ©Sungwoo Choi
이제는 떠나야할 시간,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 ©Sungwoo Choi
귀가하기 전 돗자리도 털고 짐도 재정비한다. ©Sungwoo Choi
포르투로 되돌아 가는 길 ©Sungwoo Choi

 

최성우 Sungwoo Choi
거닐고 쓰는 사람. 공간, 커뮤니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고 잇는 기획자이자 에디터. 브리크매거진, 한칸, 033강릉, 콘텐츠가 리드하는 도시 등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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