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나라 건축가가 설계했나요?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가상-건축> 대표 편저자
“와! 건축물이 너무 멋지네요! 어느 나라 건축가가 설계했나요?”
만약 이 질문을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인생작, 서울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들이댄다면 그 대답은 막상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치퍼필드는 영국 사람인데, 이 건물을 설계한 오피스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해 있으며, 주로 독일어를 구사하는 독일 출신 건축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영국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상은 독일의 전문 인력들이 설계한 건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는 무어라고 답해야 할까. 영국일까, 독일일까.
언뜻 보면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정체성의 함정에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조차 빠진 적이 있다. 치퍼필드는 독일의 역사 문화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베를린 박물관 섬(Museum Island in Berlin)의 ‘신박물관(Neues Museum)’ 리노베이션과 ‘제임스 사이먼 갤러리(James Simon Galerie)’의 신축을 맡아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일대를 한 건축가가 도맡은 것과 맞먹는 문화적 영향력이다. 이처럼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기 때문인지, 독일인들은 치퍼필드를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건축가로 여긴 모양이다. 메르켈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영국 총리에게 치퍼필드를 ‘우리 독일의 유명 건축가’라고 소개해 화제가 됐던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치퍼필드의 행적은 토트넘의 히어로로 활동하는 손흥민처럼 타국의 리그에서 활동하게 된 어느 탁월한 개인의 해외 활동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런던에도 오피스가 있기 때문이다. 런던 오피스는 베를린 오피스와 별개로 수많은 건축물을 활발하게 설계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경우가 바로 서울 성수동의 크래프톤 신사옥, K-프로젝트이다. 이 건물의 설계는 베를린 오피스와 무관하다. 이 경우에는 설계 건축가의 국적 논란은 없을 것이다. 영국 건축가와 영국 실무진들(외국인 직원이 물론 있겠지만)으로부터 나온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대신 여기엔 다른 질문이 가능하다. “그럼, 이 건물과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설계 주체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이 질문조차 답은 간단하지 않다. 헷갈림의 주범은 치퍼필드의 국경을 뛰어넘는 왕성한 활동이다. 영국인인 그는 1985년 런던에서 첫 오피스를 시작했지만, 이후에 해당 지역 공모전 당선을 계기로 밀라노와 베를린에 오피스를 열고, 이후에는 상하이와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확장, 현재 총 5개국에서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체 인원은 약 300명 정도가 넘는다. 건축가의 이름을 건 설계사무실로는 상당한 규모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다섯 개의 오피스가 모두 ‘독립적’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본사-지사의 구조를 갖는 오피스는 지사의 모든 활동이 본사가 지시하는 방향에 종속되어 있거나, 지사가 본사의 로컬 생산기지 역할을 하지만 치퍼필드 오피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로 인해, 우리가 한국에서 마주하는 그의 설계 작품에는 같은 건축가의 이름 하에 서로 다른 국가의 생산 주체가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 명의 건축가가 운영하는 다국적 오피스 구조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여기에는 유럽 내 국가 간의 낮은 장벽이 하나의 배경일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건축이라는 문화 자체에 은밀하게 작동하는 제국주의적 구조가 바탕에 깔린다. 그 구조란, 문화적 주도권을 가진 중심부가 주변부의 인적 자원을 흡수하거나, 타 문화권에 개입하는 것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많은 경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은 이러한 국제적인 주도권 행사에 익숙하며, 이를 자연스러운 발전 방향으로 간주한다. 동시에 많은 추종자들이 선진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중심부로 몰려들기도 한다. 이러한 양방향 흐름 속에서, 오늘날 건축이라는 가치 체계는 암묵적인 문화적 중심성을 두고, 위계가 은연중에 내재하는 상태로 작동한다.
치퍼필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주변 국가의 뛰어난 인재들이 런던에 모여들어 그의 오피스에서 일하다가,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지사를 설립하는 과정의 반복이 있었다. 당시에 뛰어난 유럽의 젊은 건축 인재들은 왜 런던으로 모였을까. 한편으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것은, 전 세계의 유능한 건축 인재들은 지금도 런던으로 유학을 간다. 이러한 흐름을 놓고 보면, 치퍼필드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사소한 배경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이 구조가 작동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일지도 모른다. 그가 영국인이 아니었다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일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치퍼필드 오피스가 각국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내밀한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박물관 섬을 도배하다시피 하며 도시의 역사적 심장부를 재구성했고, 이탈리아의 경우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500년 된 과거 관청 건물인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Procuratie Vecchie’를 리노베이션하며 국가적 상징물에 깊게 개입했다. 또한 치퍼필드는 각국의 산업적 인프라의 장점을 활용하는 데에도 능숙하다. 이를테면, 밀라노 오피스를 통해 이탈리아의 탁월한 가구 및 조명 제작 업체나 패션 브랜드들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해 왔다. 참고로 치퍼필드가 설계한 공간에 들어간 조명은 그가 이탈리아 조명업체 ‘비아비주노’와 협력해 직접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이것은 모두 각국의 오피스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국 내 활동을 이어 나갔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처럼 여러 나라의 문화적 중심부에 뿌리를 내리는 일 앞에서 치퍼필드는 왜 거리낌이 없어 보일까.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실력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느 한국 건축가가 이웃 아시아 국가의 문화적 상징부에 깊이 개입한다면 왠지 모르는 마찰이 내외부적으로 생길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확장과 개입을 어렵게 느끼는 태도는 건축 문화의 변방이자 비서구권에서 살아가는 건축인들만이 갖는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말하면, 혹시 치퍼필드는 이러한 일에 심리적 장벽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달리 표현하자면 무의식적인 주저함이 없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인프라다.
이 방정식은 치퍼필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성공 신화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건축가들 대다수가 비슷한 태도와 구조 위에서 전 지구적 디자인 활동을 이어간다. 그들은 다국적 인프라에서 오는 이점들을 조합해 초국적인 건축적 영향력을 행사 중이며, 그 역량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간다. 특히 이 구조는 경쟁적으로 이들의 디자인을 수입해 주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또한 이들은 더 이상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현실 속에 깊숙이 개입하는 친숙한 협력자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역적이면서도 동시에 초국적인 디자인 주체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아마도 가장 먼저 받아들여져야 할 것은, 여기에 해당하는 유명 건축가들이 더 이상 한 명의 탁월한 단일국적 작가-건축가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동시대의 범국가적 건축 프랙티스 시스템을 총괄하는 운영자다. 이 시각은 스타아키텍트들의 이름을 등에 업고 전 세계 곳곳에, 특히 서울에 뿌려지는 디자인에 관한 입체적 이해를 돕는 첫 단추가 된다. 왜냐하면 작가적 환상에 기대어 건축가의 이름을 브랜드로 삼아 치적이나 이득을 얻으려는 얄팍한 프레임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를 명확히 인식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에 의해 쉽게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어느 나라 건축가가 설계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