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 다다오 건축에 없는 것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가상-건축> 대표 편저자
안도 다다오, 그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로,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1941년생인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1995년에는 프리츠커 상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상했다. 유명세가 오래된 만큼 국내에는 그가 설계한 건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뮤지엄 산, LG아트센터 서울,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글라스하우스 등이 있다. 그의 건축관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면 도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과감한 건축적 시도, 모더니즘과 동양적(일본적) 특성이 교차하는 독특한 공간감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를 드러내는 가장 눈에 띄는 트레이드 마크는 ‘노출콘크리트’다. 한 종류의 마감을 모든 프로젝트의 내외부에 일관되게 반복 적용한 건축가가 지구상에 안도 말고 또 있을까.
사실 노출콘크리트는 현대 건축에서 자주 활용되는 재료이고 특별한 재료도 아니다. 아주 많은 근현대 건축가들이 노출콘크리트를 애용했다. 구조체와 마감재가 일치함으로써 마감재의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공간을 장식적 꾸밈 대신 구축적인 순수함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측면 때문이다. 이는 특히 최근 개봉했던 영화로 잘 알려진 부르탈리즘 사조의 건축물이 노출콘크리트 마감을 애용하게 되는 건축적 근거이기도 하다.

안도는 처음에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 마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초기작 ‘스미요시 주택’에서 마감재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내외부를 모두 콘크리트 노출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런데 안도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브루탈리즘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대리석처럼 매끈하고 반짝이는 표면 위 콘 자국(거푸집 조임용 폼 타이에 의해 남는 둥근 구멍)을 등간격으로 만들어 이 마감을 미니멀한 패턴의 감각적인 건축 표면으로 격상시킨다. 이 콘크리트 표면은 안도의 활발한 건축 활동에 의해 세계적으로 대중화된다. 그 결과, 안도가 노출콘크리트의 원조가 아님에도, 대중들은 여러 가지 노출콘크리트 마감 중에서 안도의 것을 가장 전형적인 노출콘크리트라고 인식하게 된다. 심지어 이 패턴은 벽지로 인쇄돼 생산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노출콘크리트는 그 물성이 짙고 깊다는 인식이 있다. 왜냐하면 중량감이나 깊이감이 단순히 표면에 덧발라지는 여타 마감 재료와 대비하여 확연하게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벽이 스터코 같은 얇은 피막 형식의 마감일 경우, 스크래치가 나면 금세 바탕에 있는 다른 재료가 드러나 버릴 것이다. 하지만 노출콘크리트는 그 속까지 하나의 재료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한참을 긁어내도 계속 같은 재료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실제로 벽을 긁어내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인 감각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콘크리트 벽은 바라만 보아도 속이 꽉 찬 육중한 느낌이 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노출콘크리트의 물성은 두꺼운 두께, 두툼한 덩어리의 볼륨감 등과 같은 3차원적 감각과 맞닿아 있으며, 반대로 얇고 가벼우며 경쾌한 느낌이나 선적이거나 평면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안도가 이 재료를 가능한 한 얇고 가볍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콘크리트의 물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거스르는 방식을 택한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빛의 교회’를 보면 콘크리트 벽을 칼로 종이를 베듯이 절개한다. 이 틈에 의해 빛은 멋지게 흘러들어오지만, 콘크리트는 오히려 얇은 외피처럼 인식되면서 무게감과 두께감을 잃는다. 한국에서 유명한 그의 건물 ‘뮤지엄 산’에 있는 삼각형의 중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중정을 둘러싼 삼면의 콘크리트가 종이에 칼질한 것처럼 얇고 길게 가로로 끝없이 절개되어 있다. 이것은 떨어져 있는 위쪽의 콘크리트가 어떻게 떠 있는지 신기함을 유발하는데, 이것은 그가 재료를 무겁지 않게 인식시키고자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안도는 콘크리트 벽체를 가볍게 대하려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콘크리트 벽체가 볼륨 덩어리가 아니라 종이와 같은 2차원의 면을 접거나 구부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뮤지엄 산 중정의 경우 절개된 틈은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지나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콘크리트가 드러내는 얇은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공간 경험 과정에서 콘크리트 벽이 단순히 ‘벽면’ 그 자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안도는 콘크리트 벽체의 Z축이 적절히 통제되거나 가려졌을 때 생성되는 입체적 공간성에 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2차원적 감각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의 건축적 의도로 읽힌다.



이러한 안도의 설계법은 그가 그린 도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저 선을 긋는다. 입면에다가 선을 주욱 그으면 벽체의 절개선이 되고, 평면에다가 선을 주욱 그으면 안도의 장기인 프로미나드의 담장이 되는 식이다. 벽체의 단면이 갖는 복잡한 형상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성해 보는 포셰같은 건 없다. 도면에 선을 긋고 그것을 면으로 압출(extrude)만 하면 곧바로 건물이 된다. 다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안도의 건축 특징들은 놀랍게도 상당수가 이 선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네모와 세모가 흩뿌려진 아주 직관적 평면을 갖는데 모두 뚜렷한 경계선으로 안팎이 구분된다. 마치 도면에 그린 도형의 외곽선이 곧 콘크리트 벽의 단면으로 치환된 듯하다. ‘본태박물관’의 처마도 마찬가지다. 입면에서 ‘ㄱ’자로 그은 선이 그대로 돌출된 처마와 그 끝의 벽이 된다. 여기서도 선은 얇은 면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도면 위에 그려진 선을 보며 그 선의 질감보다는 그 선이 지시하는 형상을 더 중시하듯, 안도는 자신의 벽이 특정한 형태를 지시하고 나면, 그것이 노출하는 앙상한 단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쯤 되면 콘크리트는 그가 그린 선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보조 도구다. 아니면, 종이를 꺾고 휘거나 잘라서 만든 모양을 건물의 스케일에서 흉내 내줄 수 있는 수단처럼 보인다. 자기가 상상하는 선과 면의 대체재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건축에서 콘크리트 벽이 자신의 물성 너머에서 건축가의 선과 면을 끊임없이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콘크리트는 안도의 건축적 이상향을 위해 자신의 성질을 다소 내려놓는다. 달리 말하면, 안도는 노출콘크리트를 애용하지만, 콘크리트 고유의 속성이 불러일으키는 리얼리티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왜 안도에게 건축은 속이 꽉 찬 덩어리(solid)가 아니라 선과 면(surface)의 집합인 걸까. 여기엔 동양 전통의 목조 건축 감각이 더 많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동양에서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전통 건물에서 벽체에는 그 어디에도 덩어리가 없다. 목조 기둥 사이를 얇은 면으로 이어서 막아버리면 곧 벽이기 때문이다. 내외부를 구분하는 낮고 기다란 담장도 그 속성은 매우 선(line)적이다. 로마네스크 시절부터 석조로 두꺼운 벽을 쌓아온 서구 건축의 덩어리 감각은 동양인의 무의식에서는 매우 낯설다. 그러니 안도는 애초에 솔리드한 건축·공간을 체화해 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토양 위에서 건축을 열심히 하고 싶어졌을 때면, 평면도 상에서 선을 이리저리 열심히 긋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20세기 초반 서구의 모더니즘이 꿈꾸던 건축의 방향과 길이 겹쳤다. 모더니즘은 서구에서 수천 년을 넘도록 이어져 온 석조 건물의 입체감을 산업화된 재료인 유리와 콘크리트 등으로 납작하고 미끈하게 변환하려는 미학적 시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구 모더니즘의 측면에서 안도의 건축은 얼마나 흥미로웠을지 그 반가움이 사뭇 짐작이 간다. 그 결과, 안도가 벽체를 2차원적으로 다루려 하는 충동은, 모더니즘과 동양 전통의 교묘한 접점을 만들며 안도가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해 주었다. 이것은 우연히 맞물린 것일까, 아니면 집요한 의도의 산물일까. 안도는 어디까지 내다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