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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콘셉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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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가상-건축> 대표 편저자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건물이 있다.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강남 도산대로 한복판, 주소만으로도 무게감을 지닌 ‘청담동 1번지’에 세워진 백색의 타워다. 이곳은 가장 화려하고 아이코닉한 랜드마크가 들어설 법한 자리였다.

그러나 드러난 외관은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크기만 조금 줄이면 전국 어느 번화가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을 듯한 익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세간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는지, 이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다. 물론 특별함이나 화려함이 반드시 건물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사람들이 유독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지어진 건물과 처음 공개된 조감도 사이에 놓인 현격한 괴리였다.

조감도와 현실의 차이는 원래 어느 정도 용인 되는 관행이 있지만, 이번에는 둘 사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청담동 1번지’ 초기 조감도 <이미지 출처 = 시행사가 홍보용으로 내건 광고>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정도의 차이라면, 혹시 조감도가 애초부터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꾸며낸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초창기 크레딧에서 유명 건축가를 마주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ECC’로 잘 알려진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파리 국립도서관’ 설계 공모에 당선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ECC 또한 국내에서 늘 손꼽히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이런 그가 초안을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화려한 조감도가 그냥 포장용 이미지가 아니라, 베테랑 건축가의 고심이 들어간 디자인 초기 단계임을 나타낸다.

지금 페로는 자신의 크레딧을 이 건물에서 빼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다. 왜냐하면 지어진 결과가 자신의 디자인으로부터 지나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로는 후속 개발 과정에서, 초안보다 단순해진 다른 디자인을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지금 지어진 건물은 그 수정안보다도 훨씬 달라져 있는 상태다.)

 

완공된 ‘청담동 1번지’ 건물 모습 ©Haewook Jeong

 

뭔가 이상하다. 이것은 다른 창작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화가가 자기 그림 앞에서 ‘이건 내 그림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셰프가 자기 음식이 담긴 접시를 두고 ‘이건 내 요리가 아니야’라고 하거나, 작곡가가 녹음된 자신의 곡을 두고 ‘이건 내 노래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 의도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규범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페로는 ‘이건 (더 이상) 내 디자인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누가봐도 지어진 건물은 페로의 (초기) 디자인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초안에서 출발한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반면에 페로가 저렇게 말하는 함의는 (자기가 허락하는) 특정한 한도 내에서 지어졌다면 그것을 자신의 디자인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더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창작물임을 결정하는 열쇠가 자기 손안에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페로의 발언 앞뒤 맥락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는 자신의 (초기) 디자인이 향후에 잘 지어질 거라 믿고 일을 시작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디자인 이후의 과정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대형 건물에 관한 건축 산업 시스템에서 건축가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지를 나타낸다.

대형 프로젝트에서 건축가는 자기 스스로 프로젝트의 시공과 완성을 직접 해낼 수 없으며, 하더라도 감리 권한을 위임 받는 정도가 최선이다. 이로 인해 건축가는 언제나 건축 산업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좋든 싫든 건축가는 시공사가 건물을 도면대로 잘 지어줄 거라 믿어야 한다. 초기 디자인만 제안하게 될 경우에는, 로컬 건축가가 자신의 디자인을 좋은 실행 도면으로 잘 번역해 줄 것이라 믿어야 할 때도 있다. 이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의심만 가득하다면 건축가는 현대 사회에서 커다란 건물의 디자인을 애초에 시작할 수 없다.

이러한 경위로 오늘날의 건축가는 (세계적인 거장을 포함하여) 모두 산업 시스템에 기대어 디자인을 수행한다. 건축 선진국일수록 시스템 안에서 건축가를 포함한 여러 참여 주체들의 역할과 디자인의 단계가 굉장히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건축가 협회에서 스스로 건축 프로세스의 단계를 상세하게 구체화해 놓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업적으로도 각 역할별로 집중된 별도의 전문가 집단이 존재한다. 전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가 구체적으로 제시해 둔 건축 설계 프로세스 탬플릿이 있다.

 

[표] 영국왕립건축가협회의 건축설계 단계

 

후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독일에 있는 ‘Wenzel + Wenzel’이라는 실시설계 및 샵드로잉 전문 회사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들의 수많은 디자인을 뛰어난 퀄리티로 현실화해 낸 곳이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에 대놓고 이렇게 써두고 있다.

 

“우리의 능력은 건축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발주처와 엔지니어와 건축가와의 성공적인 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 Wenzel + Wenzel

 

‘Wenzel und Wenzel’ 홈페이지 캡쳐 화면

 

이것은 건축 프로젝트가 건축가 또는 시공사가 혼자서 모든 것을 견인하거나, 혹은 발주처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프로세스가 아님을 암시한다. 규모가 큰 만큼, 여기엔 중재와 관리를 위한 별도의 전문 영역도 존재한다. 바로 ‘프로젝트 매니저(PM)’이다. 소형·개인 프로젝트이거나 건축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곳에서는 보통 발주처의 대리인이 PM을 겸한다. 이 경우에 PM은 발주처의 하수인 역할만 하게 된다.

하지만 시스템이 발전하게 되면 PM은 각 참여자들의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주는 역할로 독립한다. 발주처가 디자인적으로 바보 같은 의사결정을 하거나, 혹은 디자인 건축가와 시공자 혹은 실시 설계자 사이에 이견이 있을 때 이를 조율하는 존재다. 반대로 디자인 건축가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제안을 타이르는 일도 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 결정 체계는 대형 프로젝트가 길을 잃지 않고 디자인 퀄리티를 유지하는 주요한 안전장치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디자인 건축가’와 이후 단계의 ‘구체적 설계 업역’이 별도의 산업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건축 설계라고 하면 대개 후자의 역할을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건축가들은 대부분 전자에서 특화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설계 과정 중에서도 특히 가장 앞 순서인 ‘콘셉트 디자인’ 단계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뽐낸다.

콘셉트 디자인 단계란 건축가에게 건축물의 근본적인 디자인 방향을 연구할 기회를 주는 과정이다. 건축적 사유가 깊거나 작가적 독자성이 특출할수록 이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성은 잠시 미뤄두고 콘셉트 그 자체만 탐구하게 된다. 이들에겐 그럴 시간이 창작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작자로서의 건축가를 문화적으로 인정하고 산업적으로 존중하며, 그 독창성에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가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청담동 1번지’ 신축 건물 저층부 ©Haewook Jeong

 

반대로 사유가 깊지는 않지만 디자인의 속도가 빠른 건축가의 경우, 콘셉트 디자인 때부터 법규와 면적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기술적인 도면을 곧바로 생산해 내기도 한다. 그럴듯한 모양은 필요하지만 작품성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 대다수의 건축 프로젝트는 (디자인 비용 절감 차원에서라도) 이렇게 납작해진 콘셉트 디자인 단계를 선호하고 또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건축가는 레퍼런스 이미지로 점철된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을 콘셉트로 제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콘셉트란 건축적 고민들이 조직된 결과이기보단 모티프를 표면적으로 끼워 맞춘 정도의 수준에 머무른다.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원래 콘셉트 디자인이 그런 것 아니냐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그것은 가장 슬픈 일일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페로가 고장난 시스템을 전제로 두고 작업을 시작할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그는 분업과 협력의 체계가 원활히 작동할 거라 믿고 콘셉트 디자인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맡은 업무의 범위를 알 수는 없지만, 이후 단계에서도 그는 ‘계약된 용역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가 의지했던 시스템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당혹스러움과 황당함이 눈에 선하다. 물론 예산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시스템이 뒷받침 되었다면 줄어든 예산 안에서도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의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 건축 산업의 예외적 해프닝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요즘 한국에서는 비용은 아끼면서 디자인 아이디어와 이름만 얻기 위해 콘셉트 디자인만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하는 일이 꽤 자주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한 후속 산업 시스템도 제대로 맞물려 있는지는 참여자의 역량에서부터 많은 의구심이 든다. 콘셉트 디자인이란 정교한 협력 체계를 전제로만 의미를 갖는 연약한 출발점이다. 이것은 전체 프로세스를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축적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이 단계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건축은 언제고 또다시 허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놀림감 정도로 무너져버릴 수 있다. 그 마음 아픈 현실은 누구도 바라는 건축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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