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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술관에서 바라본 창동의 시간

사진미술관에서 바라본 창동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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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태진 자료. SeMA, 1990uao, JADRIC ARCHITEKTUR

 

정지의 공간, 창동에 깃든 사진 미술관

서울 도봉구 창동에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들어섰다. 이 일대는 한때 철도차량기지와 공업고등학교가 있던 지역으로, 산업시설이 떠난 이후 오랫동안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미술관은 이러한 지역에 조성된 공공문화시설로, 도심 외곽의 문화 인프라 확충과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공공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사진은 기록과 예술, 기술과 매체 사이에 있는 독자적인 장르이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기관은 그동안 부재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앞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 전시와 교육, 연구, 보존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각도로 다룰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립사진미술관(좌)은 흑색 매스로,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우)의 백색 곡면 매스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나란히 놓인 두 건물은 바둑판 위 흑돌과 백돌처럼 각기 다른 조형 언어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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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감싸는 암실 같은 건축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은 도시의 공백을 감싸 안는 암실과 같은 건축을 지향한다. 외관은 짙은 흑색의 매스로 구성되어 있어 존재감이 뚜렷하다. 때문에 창동역을 나오자마자 곧장 시야에 인식될 정도로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반면 낮에는 주변 풍경과 분리된 오브제로 작동하는데, 오히려 밤이 되면 어둠에 스며들어 조용히 존재를 감출 것 같아 그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러한 특성은 빛을 받아야 존재가 드러나는 사진 매체의 특성과 유사한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

미술관 바로 옆에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이 위치한다. 흰색의 곡면 형태로 설계된 이 건물은 미술관과 대비되는 조형 언어를 지닌다. 두 건물을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면 바둑판 위 흑돌과 백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처럼 대조적인 외형은 각자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며 상호 보완을 한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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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건축은 마치 고급 식당에서 냅킨이 층층이 정돈된 구조를 연상시킨다. 건물은 층층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회전하듯 쌓아올려져, 상부로 갈수록 형태가 정제되며 수직으로 뻗는다. 이 회전과 적층의 구조는 내부 공간의 흐름과도 연결되며, 관람 동선에 따라 점진적으로 시선을 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외형은 단순한 시각적 조형을 넘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매트하고 밀도 있는 질감을 갖는다. 건축은 시각적 수용체가 아니라, 미술관의 성격을 외부에 전달하는 하나의 매체로 작동한다.

개관 기념 전시로는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동시대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스토리지 스토리’, 한국 예술사진의 기원을 조망하는 ‘광채 光彩: 시작의 순간들’이 열리고 있으며, 세 번째 특별전은 12월 공개 예정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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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프라 재편과 도시 재생의 거점

서울시는 2015년부터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으며,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은 그 일환으로 조성된 공공 문화시설이다. 향후 창동에 조성될 서울아레나, 이미 조성된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등과 함께 이 일대는 서울 동북권의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기능하게 될 예정이다. 이는 서울 전역으로 문화 기반을 분산해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도봉구 창동 인근에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그리고 가까이 초안산이 자리하고 있다. 방문 당일, 등산을 마친 한 어르신 일행이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을 찾았다. 하산길에 들른 미술관은 도심 속 여유와 낭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BRIQUE Magazine

서울시는 이곳을 한국 사진사 140년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공공 사진미술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술관은 근현대 사진예술사의 정립, 시각문화 유산의 보존, 그리고 미디어 교육을 위한 플랫폼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곳에서 다루는 사진은 다큐멘터리,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이에 따라 미술관의 내부 공간 또한 이러한 경계 없는 실천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단순한 물리적 개보수를 넘어, 과거의 기억 위에 새로운 문화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때 단절되었던 철도 위에 이미지를 매개로 한 새로운 흐름을 더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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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사진미술관 개관은 앞으로 도시의 문화 지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SNS에 떠다니는 다양한 후기를 살펴본다. 미술관임에도 공간의 규모가 작다는 의견, 전시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진이라는 장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는 이들도 많았다. 오랜 시간 비교적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작업을 이어온 사진가들에게 보내는 축하와 격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사진계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고 교류하며 발전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물리적 거점이 비로소 생긴 셈이다.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사진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는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 시공간을 박제하는 사진처럼, 서울시립사진미술관 역시 오늘의 이 모습이 훗날 어떤 영감과 방향성을 제시할지 사뭇 기대된다. 완성된 결과물을 흠잡기보다 이제 막 첫 셔터를 누른 공간, 앞으로 그곳에 채워질 시간에 더 주목하고 싶다.


설계.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1990uao

책임 건축가.
윤근주 Guenju Yoon

시공.
2021.11 ~ 2024.09

대지면적.
3,166.80㎡

연면적.
7,048.52㎡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공동수행.
Jadric Architektur

구조.
이든구조

기계 전기 통신 소방.
하나기연

조경.
얼라이브어스

파사드엔지니어링.
익스펌

친환경설계.
에코넥스

업무담당.
나지혜, 이수정, 한호림, 신다움, 민경주, 최형순, 민경현, 이지은, 이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