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라야마의 일상과 공공 건축의 미학
글. 김태진 자료. 일본재단 The Nippon Foundation
영화 ‘퍼펙트 데이즈 Perfectdays(2023)’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다. 그의 일상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영화는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매일의 특별함을 포착한다. 해 뜰 무렵 이웃집 아주머니가 마당을 쓸 때 히라야마는 눈을 뜨고, 평일에는 동일한 루틴으로 출퇴근한다. 주말에는 빨래를 하고 필름 사진을 현상하며 요정에 들르는 등 반복적인 일상을 이어간다. 겉으로 보기엔 매일 같은 날들의 연속일지라도 히라야마를 감싸는 빛이 매일 조금씩 다른 빛깔을 띤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며, 모든 날이 고유한 순간으로 주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서 히라야마의 일상은 그의 일터인 공공 화장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 화장실은 그의 단순한 일상과 대비될 정도로 저마다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극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시부야의 아름다운 화장실 디자인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낄 정도다.
영화를 본 후에 찾아보았는데, 영화 속 화장실은 실제로 시부야에서 운영 중인 공공 화장실 17곳으로, 유명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 안도 다다오Tadao Ando, 이토 토요Toyo Ito 등 16개 팀의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해 설계한 것이었다.




시부야에 이처럼 아름다운 공공 화장실이 건설될 수 있었던 계기는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앞두고 시부야구와 일본재단(The Nippon Foundation)은 공공 화장실을 개선하기 위해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he Tokyo Toilet Project)’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올림픽에 앞서 공공 화장실이 가지고 있던 ‘어둡고, 더럽고, 무섭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들의 주도로 도시 17개의 공공 화장실은 모두에게 편리하고 아름다운 공공 공간으로 거듭났고, 공공시설이 진정으로 ‘공공’에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는 성별, 나이, 장애 여부에 상관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각 공간의 설계 상황에 맞도록 휠체어 접근을 위한 슬로프를 설치하고, 인공 배설관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생 시설을 갖췄다. 또한 아기 의자와 기저귀 테이블 등을 설치했다.
재단은 프로젝트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관리 인력도 확보하였는데, 주인공 히라야마는 그 관리 인력 중 한 명이다.


눈 여겨볼 프로젝트는 사카쿠라 다케노스케Takenosuke Sakakura가 설계한 니시하라 이초메 공원의 화장실이다. 이 공간은 성중립 화장실 세 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이러한 디자인은 성평등을 지향하면서도, 줄 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 편리성까지 고려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니시하라 이초메 공원의 화장실은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뛰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설계됐다. 외벽은 일본 전통 등불인 ‘안돈Andon’에서 영감 받아 불투명한 유리벽을 둘렀다. 이로 인해 화장실은 내부는 밝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며, 밤에는 부드러운 조명을 통해 공원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안정감을 전한다.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 공공 화장실의 이용률은 각각 5~7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용자 만족도도 2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한다. 특히 이전에 공공 화장실 사용을 기피하던 여성들의 사용 빈도가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올림픽 개최를 기회로 삼은 시부야 구는 공공 화장실의 인식 개선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6개 팀의 디자인 요소가 반영된 각각의 화장실은 단순한 공공시설을 넘어 공원 전체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