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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건축계의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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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태진 자료. Villa Savoye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났던 파리 여행. 멀어진 만큼 그리움이 깊어진다고 했던가요. 열흘간 마음 편히 파리를 누비다 보니, 되레 기록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라 귀국 후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인 ‘퐁피두 센터’ 앞에서는 현대성의 의미를, 재개장했지만 여전히 수리가 진행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건축의 주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다들 한번 쯤 들어봤을 ‘빌라 사보아’를 찾아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되새겨 봤습니다.
사사로운 여행 기록과 고민의 흔적들이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작은 물음과 새로운 느낌을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파리 건축 여행

① 리노베이션으로 재탄생할 공공문화공간,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② 건축은 건축가만 하는 게 아니다, ‘노트르담 대성당Notre dame de paris’
③ 르 코르뷔지에를 생각하다,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인물은 건축계에 종사하고 있지 않더라도, 건축에 관심을 두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존재다. 즉, ‘건축계의 유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이름과 대표 교향곡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처럼, 건축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 분야를 넘어 교양의 수준에 도달한 건축가라 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 <사진 제공 = 르코르뷔지에 재단>

 

그에게 부여된 수식어를 정리하자면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활용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을 정립한 인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명성을 살펴보면, 그의 건축물 중 ‘롱샹 성당(Chapelle Notre-Dame du Haut)’,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 d’Habitation)’ 등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빛나는 도시(Radiant City)’ 개념을 통해 현대 도시 설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모듈러 Modulor’라는 인간 중심의 비례 체계를 개발하는 등 예술과 건축을 넘나든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절대적인 찬사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그의 건축이 실용성과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르 코르뷔지에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를 이번 여행에서 직접 경험해보았다. 그의 명성을 떠올리며 감탄할 점도 있었고 비판할 점도 발견했다. 그동안 접했던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파편적인 비판들이 머릿속을 스쳤고 그의 작업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그는 건축의 교양적 영역을 넘어, 베토벤과 모차르트처럼 클래식한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혹은 가우디처럼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사랑받는 건축가로 남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빌라 사보아에서 그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BRIQUE Magazine

 

건축과 기계, 그리고 새로운 시대

빌라 사보아는 건축 순례자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다. 100년 전 지어진 건물이지만,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된 공간감을 자랑한다. 물론, 창틀이나 수도꼭지 등은 당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공간을 직접 경험해 보면 르 코르뷔지에가 꿈꿨던 ‘기계 같은 집’이 어떤 의미인지 체감할 수 있다.

오늘날 빌라 사보아를 방문하면, 그것이 단순한 개인주택이 아니라 자동차 시대를 위한 첫 번째 모델 주택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1층에는 차고가 있으며, 자동차를 고려한 진입 동선이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다. 마치 지금의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처럼 차고와 주택이 하나로 연결되는 시기의 출발점이었다. 빌라 사보아는 근대 건축의 아이콘이자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건축 개념들이 처음으로 실험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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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근대 건축 5원칙 중 하나인 ‘필로티’ 구조 ©BRIQUE Magazine
차고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 ©BRIQUE Magazine

 

빌라 사보아의 설계는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연속적인 공간감을 조성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이후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설계 개념이 되었으며, 오늘날 ‘오픈 플로어 플랜Open Floor Plan’, 대형 창호를 통한 개방감 극대화, 자연과의 연결성 강조 등의 현대 건축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후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와 같은 건축가들이 실용성과 조형미를 결합한 건축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빌라 사보아는 전 세계적으로 현대 건축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도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방치되어 있던 빌라 사보아는 프랑스 정부와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철거 위기를 넘기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는 현대 건축을 보존하기 위한 선구적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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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에 대한 반작용

빌라 사보아는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였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겨울철 단열 부족과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한 균열 등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으며,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방수였다. 당시 콘크리트는 아직 널리 사용되지 않은 신소재였고 방수 기술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도입한 평평한 지붕은 물이 고이기 쉬운 구조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다소 빈약한 창틀 마감 앞에서 상상했다. 비가 오는 날, 물이 새고 있을 빌라 사보아에서 당황했을 건축주의 얼굴을. ©BRIQUE Magazine

건축주 ‘유제니 사보아Eugénie Savoye’는 빗물 누수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으며 이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복도에서 비가 내리고 있고, 경사로와 차고의 벽도 완전히 젖어 있습니다 [….] 제 욕실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비가 내리면 홍수처럼 물이 들어와 창문을 통해 물이 샙니다. 정원사의 벽도 마찬가지로 젖어 있습니다.

– 유제니 사보아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보낸 편지

빌라 사보아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과 미군이 차례로 점령하며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유제니 사보아는 다시 빌라 사보아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대로 상상해 보았다. 비가 샌다는 건축주의 편지를 받은 당황한 건축가의 표정을. ©BRIQUE Magazine

‘건축은 물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어느 건축가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빌라 사보아는 이를 몸소 증명했다. 건축은 단순한 형태적 아름다움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실용성과 기술적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사례가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이상을 실험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의 부담을 건축주가 떠안도록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작업이 무조건적인 찬사를 받을 수 없는 이유는 건축가의 이상이 실사용자의 삶보다 우선시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자신의 설계를 완벽한 이론으로 밀고 나갔지만, 실제 거주자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에 대한 검토는 부족했다. 빌라 사보아는 현대 건축의 한 전환점이었지만 동시에 거주 환경과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건축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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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 있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 속에서 필요한 혁신을 실현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놓친 부분들이 새로운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혁신에는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천착했던 효율성, 즉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라는 선언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기계적이고 표준화된 주거 공간이 과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 그가 강조했던 합리성과 기능주의는 21세기 건축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그의 혁신적인 모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될 것이다. 그의 숨겨진 가치가 재발견되어 건축계의 클래식한 인물로 자리 잡게 될 것인지, 아니면 그의 한계와 반작용이 더욱 부각되며 현재의 평가에 머무르게 될 것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르 코르뷔지에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여전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건축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빌라 사보아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건축이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대화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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