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를 관통하는 건축ㆍ공간ㆍ사람의 문장들
글. 김태진 자료. 출판사 개별 표기
<브리크brique>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22권의 건축·도시 관련 신간을 소개했다. 같은 기간 발행한 뉴스 가운데 약 30%가 책 소식이었다. 그만큼 ‘읽는 건축’의 중요성을 꾸준히 다뤄왔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소개된 책들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공통적으로 ‘공간과 삶’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평균 독서량은 어떨까.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종이책 독서량은 5.4권, 두 달에 한 권이 조금 모자란 수준이다. 이와 비교하면 브리크 독자들의 독서량은 분명 평균을 너머 있을 것이다.
올해 우리가 다룬 신간 가운데 독자와 편집팀 모두에게 유독 오래 남은 다섯 권을 골라 다시 소개한다. 이미 읽어본 책이 있다면, 그 공통의 선택 자체가 반가운 순간이 될 것이다.

국형걸 ‘요즈음 건축 2.0’: 요즈음 시대의 건축가를 다시 묻다
국형걸 건축가는 ‘요즈음 건축’이라는 화두로 오랫동안 한국 건축의 현재를 짚어왔다. 그의 저서 ‘요즈음 건축 2.0’은 업계에 몸담고 있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누구도 선뜻 말하지 않는 어떤 진실들을 정면으로 꺼내 보인다. 기술과 자본, 제도에 기대온 관성, 친환경 담론의 위선, 사대주의적 태도, 공모제도의 구조적 문제까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불편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을 더 듣고 싶어 북토크 현장을 찾았다. 처음 대면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말은 단정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 사이마다 눈빛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읽혀졌다. 특히 AI가 설계 과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지금에 던진 ‘도구의 변화가 건축의 본질을 바꾸는가’라는 질문은 현실적이었다. 그는 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도 막연한 불안도 경계하며 건축가의 고유한 역할 – 맥락을 해석하는 힘, 문제를 발견하는 감각,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태도 – 을 또렷이 짚어낸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직업적 태도를 다시 묻는 이 책은 조용하지만 대담한 문제 제기다.
도서명.
요즈음 건축 2.0
출판사.
효형출판
저자.
국형걸
민현준 ‘셰이프리스 미술관’: 10년간의 실험과 기록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외국인이 더 많을 정도라고. 가끔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보며 걷다보면, 서울에도 이렇게 훌륭한 공공건축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바로 이 건축물이 담고 있는 설계의 배경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철학을 차분히 풀어낸 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프로젝트 ‘형상 없는 미술관’은 한국 공공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민현준 건축가는 이 10년의 과정을 완공된 결과보다 ‘과정’ 자체에 집중해 ‘셰이프리스 미술관’이라는 책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건축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조정하는지 질문한다. 이러한 질문들을 실제 협업 과정과 설계 변경, 제도적 제약, 기관의 요구와 충돌 같은 생생한 사례로 나타난다.
이 책은 한 건축이 시대와 행정과 예술적 비전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다시 세워지는 지를 드러내는 드문 기록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각자의 기억 속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도서명.
셰이프리스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축 십 년 후의 기록
출판사.
열화당
저자.
민현준
홍창성 ‘그냥, 계단’: 그냥이라고 하기엔 즐거운 이야기
필자는 수많은 덕후들의 집요함이 남긴 유산 위에서 새로운 창작을 이어간다. ‘그냥, 계단’은 그 집요함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홍창성 건축가는 건축에서 늘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계단을 전면에 불러내 가장 조연 같던 요소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 책은 익숙해 보지 않게 되었던 구조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이야기와 가능성을 차분히 끌어올린다.

이 책은 일러스트와 말풍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글과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다. 가볍게 읽히지만 계단이 공간을 만들고 경험을 바꾸는 방식은 또렷하게 남는다. 어른에게는 익숙한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건축이나 공간에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는 놀이처럼 건축을 만나는 입구가 된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나면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오르는 대신 호기심이 차오를 것이다.

도서명.
그냥, 계단
출판사.
바이블랭크
저자.
홍창성
야마모토 리켄 ‘탈 주택’: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Riken Yamamoto은 올 한 해 만난 건축가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지난 9월 ‘언형세미나’를 통해 마주한 그는 여든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또렷한 걸음걸이와 안광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말보다 태도가 먼저 기억에 남는다.
에디터의 일은 대상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려 문장으로 옮기는 작업의 반복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축적이 과해져 멋있는 것을 멋있다고 말하는 일이 오히려 가장 어려워진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장면을 의미로 포장해야 한다는 관성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야마모토 리켄은 오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건축가였다.
이 책은 그의 건축과 태도를 충분히 말하고 있다.

도서명.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출판사.
안그라픽스
참여.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공저
박창현 감수
이정환 옮김
박찬용, ‘서울의 어느 집’: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일의 기술과 감각

필자의 이전 직장 팀장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디자이너의 포스터 시안을 함께 보다가 “이 선이 다른 선보다 0.5포인트 정도 더 큰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디자이너가 파일을 열어 확인했다. 그의 말은 정확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차이로 감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어떤 사람은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차이에 민감해서 그 차이를 끝내 그냥 두지 못한다. 저자 박찬용은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서울의 어느 집’은 건축가가 아닌 에디터가 오래된 공동주택을 직접 고쳐 살며 겪은 과정을 기록한 보기 드문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브리크에서 소개해 온 수많은 설계사무소들이 떠올랐다. ‘그냥 전문가에게 맡기지….’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끝에 이르렀을 때, 문득 그 옛 팀장이 떠올랐다. 나는 이 집수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저자를 응원하게 되었다.
도서명.
서울의 어느 집 a small home in seoul
출판사.
에이치비 프레스 HB PRESS
저자.
박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