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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결함을 수선하는 거리의 건축가

도시의 결함을 수선하는 거리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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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진 자료. 무턱대고 Moo.bump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제도’는 건축의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법과 제도의 영향력은 대로변의 대형 빌딩이나 신축 공공시설에 머물기 일쑤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네의 작은 골목과 오래된 상점들의 문턱까지 제도의 손길이 닿기란 쉽지 않다. 여기 그 사각지대를 스스로 발견하고 직접 경사로를 설계하며 도시의 환대를 넓혀가는 청소년 팀이 있다. ‘무턱대고(Moo.bump)’의 이야기다.

 

부상이 남긴 뜻밖의 체험. 무턱대고 팀의 (왼쪽부터) 정수민, 박서현, 이은빈 씨가 휠체어 체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빌린 휠체어는 당시 다리를 다쳤던 서현 양 덕분에(?) 확보할 수 있었고, 이 ‘불편한 이동’은 성북구 골목의 턱을 낮추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이미지 제공 = moo.bump>

무턱대고 나선 길에서 마주한 진짜 ‘턱’

팀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서 만난 이들은 혜화역 인근에서 반복되는 이동권 시위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왜 저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들은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어 보기로 결심했다.

작년 8월, 팀원들은 주민센터에서 수동 휠체어를 대여해 한 달간 성북구 일대를 누볐다. 이동 약자로서의 경험이 없던 이들에게 공감보다 우선했던 것은 ‘체험’이었다. 휠체어에 앉자마자 익숙했던 풍경은 장벽으로 변했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보도블록의 요철과 작은 문턱들이 사방에서 바퀴를 멈춰 세웠다.

“평소 걸어서 10분이면 가던 거리를 1시간이 걸려서야 이동할 수 있었어요.”

이들은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방향을 잡기조차 힘든 수동 휠체어 위에서 도시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환경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이동은 자유가 아니라 사투에 가까웠다.

진짜 장벽은 길 위에만 있지 않았다. 경사로 설치를 제안하려 방문한 상점에서 이들은 물리적 장벽보다 견고한 ‘인식의 문턱’을 마주해야 했다. 점주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우리 가게에는 장애인이 안 온다”는 차가운 말이 돌아왔다. 장애인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올 수 없는 환경’이었음을 설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리적인 턱을 깎아내기에 앞서서 보이지 않는 인식의 벽을 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더 큰 과제였다.

 

무턱대고 팀에서 설치한 이동 경사로. 성신여대 인근 약국에 설치되어 있다. ©BRIQUE Magazine
매장 입구와 가로(街路) 사이, 이중으로 놓여 있던 문턱. 맞춤 설치된 경사로가 이 단절된 경계를 넘어 길을 잇는다. ©BRIQUE Magazine

 

물리적 턱보다 높은 ‘인식의 문턱’을 마주하다

점주들의 거절을 단순히 개인의 배려 부족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 이면에는 복잡한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건물과 도로의 경계에 설치된 시설물은 관리 책임은 물론 사고 발생 시 법적 부담으로 직결된다. 매일의 생업에 매진하는 점주들에게 이는 실질적인 심리적·법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경제적 문턱 역시 실재한다. 소형 경사로 설치에 드는 약 10만~30만 원의 비용과 현장 맞춤 시공에 따른 추가 지출은 개인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감당하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이다.

여기에 제도의 사각지대가 문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현재 국내 장애인 권리는 보건복지부의 ‘건축물 접근권’과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권’으로 이원화되어 관리된다. 부처 간의 칸막이 행정 탓에 건물 입구와 보도가 맞닿은 그 짧은 문턱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채 방치되기 일쑤다. 50㎡(약 15평)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설치 의무 면제와 2022년 개정 기준의 소급 적용 불가 방침 또한 노후 상점들을 여전히 법적 테두리 밖에 머물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설치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무턱대고 팀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완성한 경사로 위에 인증 스티커를 더하고 있다. 이 작은 증표는 이제 도시의 새로운 환대 지도가 된다. ©BRIQUE Magazine

행정과 현장을 잇는 가교

무턱대고는 이 지점에서 행정과 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은 이동권 문제를 탐구하던 중 복지관의 ‘생활밀착형 소규모 상점 경사로 설치 지원사업’ 현수막을 발견했다. 절실히 필요로 하던 정보가 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이들은 곧장 복지관에 협업을 제안했다. 학생들이 현장을 발로 뛰며 점주를 설득해 명단을 확보하면 복지관은 예산과 전문 시공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점주의 동의만 있다면 전액 무료로 설치가 가능한 모델이었다. 이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질적인 운영 체계를 건드린 ‘민관학 협력’의 표본이었다.

설치가 완료된 가게에는 인증 스티커를 부착하고 SNS를 통해 이곳이 유아차나 휠체어 동반 이웃들에게 ‘열린 공간’임을 알린다. 이들의 활동은 잠자고 있던 행정 예산을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끄는 매개체가 되었다.

성신여대입구역 인근 상점에 설치된 경사로. 번화가의 복잡한 동선 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통로’가 확보된 장면이다. ©BRIQUE Magazine

건축은 ‘관계’를 짓는 일

팀의 활동으로 현재까지 성북구 일대에 설치된 경사로는 총 17곳. 이 과정을 거치며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직업병’이 생겼다. 가게 입구만 봐도 견적을 가늠하고 턱의 높이를 관찰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경사로가 설치된 가게를 보면 누구나 환영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공간으로 읽혀요. 입구의 턱 높이를 보면서 ‘여기도 설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본능적으로 고민하게 되죠.” -팀원 정수민 씨

입시와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도 팀은 이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 작업이 개인의 일시적인 선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시스템과 시민의 관심이 맞물려 돌아가는 지속 가능한 구조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에 속해 있으나 소외되었던 이들을 위해 소통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은 그 자체로 훌륭한 건축적 개입이다. 이들이 설치한 15도 남짓한 완만한 경사로는 도시의 거친 표면을 수정하는 동시에 우리 마음속의 차가운 경계선을 허문다. 이들을 ‘건축가’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저희의 활동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궁금함이 생기면 응원해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이 있어야 지원사업이 계속 열리고 점주분들도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팀원 이은빈 씨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본 이들이 전하는 이 담담한 요청은 결코 뻔하게 들리지 않는다. 10cm의 턱을 낮추는 일은 결국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제공 = 무턱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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