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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좋아서 합니다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좋아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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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자료. 소다건축사사무소

<브리크brique>가 그동안 기록해 온 1000여 곳의 공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공간을 지탱하고 있을까? 아카이브에 쌓인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꺼내 다시금 살펴보는 과정에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사진 속 공간은 티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웠지만 시간이 멈춘 듯했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은 지금까지 브리크가 기록했던 공간을 다시 찾아 안녕을 묻고, 기획자인 건축주와 실제 공간 사용자를 만나 시간의 켜가 쌓이면서 가져다준 지혜를 담고자 하는 기획이다. 공간에서 누적한 시간이 건축주 또는 사용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당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 발견하게 된 공간의 보물 같은 쓸모가 있었는지, 만약 다시 공간을 만든다면 줄이고 싶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등 솔직한 사용자 경험을 담아볼 예정이다.

이 기록이 각자가 사용하는, 나아가 미래에 꿈꾸는 공간을 조금 더 입체적이고 밀도 높게 바라보고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조금의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글 싣는 순서.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
② 여주시 목공방 ‘수연목서’ 최수연 대표
③ 동대문구 단독주택 ‘죠죠하우스’ 김정민, 최지미 건축주
④ 춘천시 동네서점 ‘책방 바라타리아’ 강은영, 장남운 대표
⑤ 화성시 사립미술관 ‘소다미술관’ 장동선 관장
⑥ 부산 광안리 복합문화공간 ‘밀락더마켓’ 박지만 대표
⑦ 충청남도 예산군 정원 카페 ‘백설농부’ 권혁철 대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은 순전히 낭만적인 선택만은 아니다. 그 일에 대한 최소한의 확신이 필요하며, 하기 싫은 일까지 감수해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일에 근접할 수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자리한 정원 카페 ‘백설농부’의 권혁철 대표는 그러한 과정을 한 걸음씩 밟아온 사람이다. 건축을 전공하다 2학년 때 과를 바꾸어 환경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모 화학 회사의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과 농사의 세계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는 카페 운영이나 건축 이야기보다 식물과 농사 이야기를 할 때 더 깊고 생생한 언어를 꺼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말이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 말미, 좋아하는 국내 정원이 어디냐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주도 베케와 남해 섬이정원”이라고 주저 없이 답하던 그는, 꾸밈없이 솔직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사람. 예산의 정원 한가운데서 권혁철 대표를 만났다.

 

권혁철 백설농부 대표가 카페 앞 정원을 둘러 보고 있다. ©BRIQUE Magazine

 

좋아하는 일 앞에서 솔직해지기

백설농부를 오픈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계기는 특별하진 않습니다. 그냥 좋아서요. 좋아서 해보고 싶었던 게 유일한 계기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솔직하고 명료한 답변이네요. 그런데 이처럼 명료한 결론을 내기까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같은 고민을 해왔고, 지금은 사십 대가 되었지만 서른 살이 넘도록 그 고민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저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굳이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좋아하는 게 좋아하는 일인 거죠. 저에게는 정원과 농사가 그랬습니다.

소다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백설농부.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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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어떤 확신이 느껴집니다.

네,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의 길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꼭 ‘정원’만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정원은 제 인생의 2순위고, 1순위는 여행이에요. 이 두 가지가 제 인생에서 꼭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죠. 저는 이 두 가지만 잘하면 평생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그게 제 안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어떤 유혹이나 흔들림도 별로 없는 편이에요.

잠을 자면 가끔 꿈을 꿔요. 회사에 다시 들어가는 꿈,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다시 일하고 있는 꿈 같은 거요. 그런데 제가 꿈속에서 또 회사를 그만둘 궁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깼을 때 ‘아, 내가 지금 정원을 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더 확신이 들어요.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요.

권 대표가 정원을 설명하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있다. ©BRIQUE Magazine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백설농부가 대표님에게 종착역이 될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백설농부에서 제가 구상했던 아이디어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한 상태라, 이곳에 더 힘을 쏟을지 다른 정원을 하나 더 꾸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다른 정원을 생각하는 이유는 이 공간만으로는 제가 원하는 모든 목표를 실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하나를 더 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은 제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지나 자원도 필요하니까 훨씬 복잡해질 거고요.

그래도 자신 있습니다. 두 번째 정원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요. 그래서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까, 아니면 한 번 더 도전해 볼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키드니 가든과 건축물의 조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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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뒤에 따라오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뒤따르는 힘든 일도 있을 텐데요.

물론이죠.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었을 때는 스트레스도 따라오기 마련이죠. 재미없는 일이 함께 따라온다고 할까요. 실제로 제가 이곳에서 하는 일 중에도 정말 손이 안 가는 일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컴퓨터로 해야 하는 모든 일이 그래요. 저는 오타도 굉장히 많이 내는 편이고, 행정업무도 잘 못해요. 손이 잘 가지 않다 보니 일들이 자꾸 밀리게 되고요. 맨날 해도 틀리고, 재미도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요. 이 공간을 운영하는 데 반드시 따라오는 일들이니까요.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든 부분은 여전히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주방과 바가 있는 A동 ©BRIQUE Magazine
A동 건물에 앉아 북쪽을 바라보면 키드니 가든이 보인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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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화학 회사 연구원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회사는 좋아하는 일이었나요?

회사 생활은 괜찮았어요. 다만 제가 다니던 회사는 ‘관리’를 하는 조직이지, 세세한 기술을 다루는 곳이 아니었어요. 실제 기술은 외부 전문 업체들이 맡고, 우리는 그걸 총괄하고 조율하는 일을 많이 했죠.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제가 연구원으로 들어갔으니까 ‘화학을 직접 다뤄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정작 화학을 써먹을 일은 거의 없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농사를 지으면서 예전에 일하면서 공부했던 걸 정말 많이 써먹게 됐어요.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인가요?

농약을 하나 뿌리더라도, 비료를 하나 쓰더라도, 나무를 하나 심더라도 전부 화학이고 생물학이에요. 제가 대학 시절에 좋아했던 과목들이 다 그쪽이었거든요.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 모든 일이 제가 공부한 것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제 전공이 나중에야 실제로 쓰이기 시작한 거죠.

 

이 부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발견하게 된 쓰임새겠군요.

그렇죠, 그렇죠. 농사를 시작할 때 ‘내가 예전에 공부했던 것들이 정말 쓸모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해보니까 농사는 결국 과학이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의사와도 비슷해요. 식물도 생명이니까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기본원리는 비슷한데, 다만 식물은 죽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결국 농사도 화학이에요.

나중에 농약을 사용할 때도 그 농약이 어떤 성분이고 어떤 작용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남들보다 쉽게 알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B동 내부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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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예산으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기밖에 할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별다른 옵션이 없었죠.

한 번 더 명료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사실 무언가를 화려하게 설명하는 걸 낯간지러워하는 편이에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굳이 어떤 일에 특별한 이유를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건축을 전공하다가 그만둔 것도 결국 그런 이유였어요.

학부 시절, 건축은 뭔가 대단한 의미를 자꾸 붙이는 분야처럼 느껴졌어요. 그땐 책이나 논문에서 쓰이는 어려운 말들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공부하면 그 분야가 과학처럼 명확히 이해될 줄 알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예술이나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그런 성격을 지녔기 때문일 테죠. 그래서 저랑은 좀 안 맞는다고 느꼈어요.

백설농부도 마찬가지예요. 왜 하게 됐냐고 물으시면, 그냥 해보고 싶어서 했고, 이 장소밖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하게 된 거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사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저는 굳이 대단한 의미를 붙이기보다 그냥 마음이 움직일 때 행동하는 편이에요.

 

©BRIQUE Magazine

건축의 완성, 사람

 

건축가에게 백설농부를 요청할 때도 대표님 명료함이 반영됐겠어요.

네, 제가 소다건축사사무소 정대호 건축가에게 제시했던 내용은 한마디로 ‘예뻐야 한다’였어요. 말로 멋진 이유를 붙이기보다, 실제로 예쁜 걸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이 대지는 제가 태어났던 집이 있던 곳이었고, 제가 운영하는 카페이자 정원이 될 곳이니까 제가 보기에도, 방문할 손님이 보기에도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예쁜지, 왜 예쁜지 보는 눈은 디자이너의 몫으로 남겨두되, 함께 그렸던 큰 그림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잘 가리자’는 전제였어요. 그래서 감추고 싶은 부분을 담이나 건물로 가렸어요. 어디를 열고 어디를 닫을지, 세부적으로는 이 부분을 논의했어요.

건축가와 소통하면서 이 부분이 잘 합의됐나요?

네, 마스터플랜을 논의할 때는 큰 이견이 없었어요. 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죠.

초반에 건축가가 스케치를 보여줬을 때,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조금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처마’ 문제요. 저는 원래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처마 없는 건물을 원했거든요. 그런데 건축가가 처마를 적극적으로 제안하셨어요. 지금 와서 보면 정말 다행이에요. 처마가 없었으면 여름 햇볕이 그대로 들어와서 내부가 너무 더웠을 거고, 유리 관리도 훨씬 어려웠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건축가의 조언을 받아들인 게 맞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정원에 있는 길도 기억에 남아요. 위에서 보면 신장(Kidney)처럼 생겼는데, 건축가의 아이디어였어요. 저는 그 길을 ‘키드니 가든’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리고 함께 소통하면서 부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지형을 거의 손대지 않기로 했어요. 포크레인으로 흙을 살짝 걷어내는 정도만 했고, 따로 흙을 들여오지도 않았습니다. 원래 있던 지형 그대로예요.

정대호 건축가는 소통을 잘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늘 ‘된다’는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주시거든요. 가끔은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닌가?’ 싶어 걱정할 때도 있었는데, 결국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다 괜찮았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 위에서 서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정원’과 ‘여행’이야기를 할 때마다 권 대표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한다. ©BRIQUE Magazine

 

완공 이후, 운영하면서 발견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요?

아쉬운 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도 제 성격 탓에 군데군데 사소한 것들은 신경이 쓰이긴 해요. ‘아 저건 좀 더 가려야 했는데’ 같은 거요. 그래도 질문을 이렇게 받아보니까, 전체적으로는 만족도가 꽤 높은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가장 가리고 싶으셨나요?

제일 대표적인 건 자동차예요.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주차된 차죠. 저는 그게 제일 보기 싫더라고요. 그냥 감각적으로 자동차와 정원이 함께 보이면 정원의 아름다움이 반감돼요. 만약 입구 앞에 최소한의 담벼락이 없어서 주차된 차량과 종종 지나는 덤프트럭이 보였다면 심어놓은 수선화가 아무 소용 없었을 거예요.

시공에 함께 참여한 권혁철 대표 ©SODA Architects
©SODA Architects
©SODA Architects

 

시공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건축가가 함께하기를 바랐고, 저 역시 돈을 아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시공은 목수한테 맡기면 훨씬 깔끔하다는 걸 알지만 일이 진행되면 바뀐 생각을 반영하기 힘들 것 같았어요. 빠른 작업 속도 탓에 바꾸고 싶은 걸 반영하기도 힘들 테고요. 시공에 참여한 덕분에 웬만한 공구는 다 있어요. 타카, 톱도 있고, 최근에는 울타리 보수공사도 직접 했어요. 앞으로도 웬만한 수리와 보수는 직접 할 생각입니다.

백설농부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세요?

글쎄요, 그건 딱 정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1년 내내 예쁘기만 한 공간은 없거든요. 계절마다 바뀌어요. 3월부터 6월까진 여기가 예쁘고, 7~8월엔 저기가 예쁘고… 지금 금영화가 심어져 있는 틀밭은 또 1년에 세 번쯤 예쁘고요. 계절 따라 마음이 계속 바뀌어요. 그래서 딱 하나를 꼽기 어렵더라고요.

지금 대표님의 열정은 어디로 가장 많이 향해 있나요?

딱 하나예요. 이 정원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불필요한 곳에 쓸 시간도 없고, 쓸 마음도 없어요. 지금은 이곳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BRIQUE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