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자료. 구보건축 GUBO Architects
[사사로운 공공건축]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나름의 다름을 추구한 공공건축물을 소개합니다. 공익과 합리라는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낭만과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건축가들. 이로써 전에 없던 공공건축물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이야기. ‘공공건축’과 ‘좋은 건축’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엿보는 일은 우리를 더 깊은 공간 경험,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흔한 도서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변화 – 푸하하하프렌즈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② ‘유스Youth’를 위한 복합문화공간 – 신아키텍츠가 말하는 ‘펀그라운드 진접’
③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 SOAP의 ‘여의롤장’
④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 구보건축 ‘연의생태학습관’
공공건축은 종종 ‘누구의 것도 아닌’ 상태에서 출발한다. 건축주의 뚜렷한 의지도 부족하고, 무엇을 더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흐릿해지는 구조 속에서 주어진 예산과 시간 안에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일들이 반복된다.
‘연의생태학습관’도 그와 같은 흐름 속에서 그저 그런 결과물로 남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설계를 맡은 조윤희 건축가(구보건축 대표)는 빠르게 흘러가는 과정에 멈춰 서서 다시 묻고, 한 번 더 확인하며 책임 있는 결정을 이어갔다. 그 원동력은 ‘건축만을 위한 건축’이 아닌, 도시와 사람, 사회라는 거대한 맥락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태도를 꾸준히 성찰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프로젝트를 끝내 적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고, 마침내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인터뷰는 연의생태학습관을 통해 조윤희 건축가가 말하는 공공건축의 ‘적정함’, 그리고 그 안에서 건축가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차분히 나눈 이야기다.

미루나무를 지키며 시작된 건축
이번 프로젝트에서 미루나무 다섯 그루의 보존이 중요한 출발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초는 현재 미루나무가 있던 위치에 건축물을 배치하려 했어요. 공원 진입로와의 거리 등을 고려하면 가장 적합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공원이 너무 아름다웠고, 나무를 베면서까지 건축물을 짓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발주처인 ‘공원녹지과’와 협의했고, 자연친화적인 마인드를 가진 부서였기에 계획 변경에 적극 공감해 주셨어요. 결국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동선이 다소 불편해지더라도 건축물의 위치를 뒤로 물렸어요. 공원 안의 건축물이 공원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지를 가장 중요하게 살폈고, 그 출발점이 바로 ‘나무를 남기는 선택’이었어요.

내부 공간을 걸을 때 야외에 있는 듯한 감각이 인상 깊었습니다.
‘연의생태공원’은 유수지 공원이에요. 장마철에 물이 차기 때문에 건축물의 1층 레벨이 일반적으로 2층 높이 정도로 설정돼야 했죠. 사실은 건축물을 더 낮게 짓고 싶었지만, 이 조건을 공원을 조망하는 기회로 삼았어요.
특히 미루나무를 다양한 높이에서 바라보며 그 너머의 공원까지 조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이 과정에서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떠올렸어요. 처마 아래에 앉아 외부와 내부 사이 공간에서 경관을 프레임처럼 바라보는 감각을 설계에 담고 싶었어요.





연의생태학습관을 짓는 과정에서 미루나무는 어떤 역할을 하였나요?
미루나무가 공사에 직접적인 방해가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서 시공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골조가 올라가면서 건물의 다양한 레벨에서 나무를 바라보는 경험이 새로웠고, 공사 기간 사계절을 현장에서 지내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미루나무의 모습도 함께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게 공간에 대한 감각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고, 개관 후 사람들도 이 건축물과 공원, 나무가 함께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연의생태학습관은 저희에게 정말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과정에서 마찰도 많았고 어려움도 컸어요. 도중에 이 프로젝트가 완공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예요.
무엇보다 입찰로 선정된 시공사의 규모가 작아 섬세한 설계를 구현하기 어려웠어요. 긴밀한 협의가 필요했지만 시공사는 소통할 여유가 없었고, 발주처도 건축 경험이 많지 않아 조율은 대부분 저희 몫이었죠.
예산 문제로 외벽에 계획했던 목재 마감도 제외하게 되었고, 노출 콘크리트 공사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어요. 바이브레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에 기포가 생겼고, 저희와 상의 없이 미장을 덧발라 다시 갈아내야 했죠.
또, 미루나무의 줄기처럼 가볍고 세장한 기둥 느낌을 주기 위해 철골 구조로 변경하고 ø250~ø300 정도의 얇은 기둥을 계획했는데, 이 역시 마감과 무근 두께 등 정밀한 시공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존 방식대로 러프하게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조율에 에너지가 많이 들었죠.

이러한 문제는 공공건축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 같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요?
공공건축은 ‘공정성’에 초점이 맞춰진 구조라서, 시공 품질과 무관하게 다음 프로젝트에 똑같이 입찰 기회를 줘요. 잘하든 못하든 결과가 동일하니 시공사 입장에선 굳이 열심히 할 이유가 없는 구조죠.
물론 입찰로 들어오는 시공사 중에도 진짜 좋은 분들 계세요. 하지만 시공사를 대부분 무작위로 뽑는 구조다 보니까 어떤 시공사가 아무리 잘해도 다음 공사에서 그에 따른 이익이나 가산점이 없어요. 그러니 시공사 이름만 바꾸거나, 이름조차 바꾸지 않고도 다시 입찰을 따낼 수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반복되는 경우도 많고요. 성실한 시공사에 인센티브나 계약 우선권을 줄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한 것도 문제예요.
결국 상벌체계라든지 구조의 문제일까요?
맞아요. 좋은 시공사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가산제도라든가, 계약의 우선권 등 변별력을 키워 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공공건축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시공사들은 거의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셈이에요. 그런 분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선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장님께서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공공건축가 활동을 하면서 인식하게 된 문제들을 실제로 교정해 나갈 수 있는 권한이 있나요?
현실적으로는 없다고 봐요. 초창기에는 공공건축가가 검증된 건축가에게 수의계약을 통해 소규모 프로젝트를 맡길 수 있었지만, ‘왜 특정 건축가에게만 일감을 주냐’는 공정성 논란이 생기면서 역할이 ‘자문’으로 축소됐어요.
좋은 건축이 나오려면 많은 자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책임과 권한이 있는 건축가 한 명이 더 필요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제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모으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실제로 체감하시나요?
노력은 있지만 쉽지 않아요. 모두 생업에 바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도 개선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죠. 제가 아는 분 중에 협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보통 그런 분들은 공동 소장 체제일 때 한 분이 협회 활동에 전념하는 방식으로 활동하세요. 단독 소장이면서 제도적인 활동까지 병행하는 건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이죠.
저도 그간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못했어요. 다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요.
브리크와 5년 전 인터뷰에서도 공공건축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저희는 여전히 민간 프로젝트와 공공 프로젝트를 반반씩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2020년 당시와 비교해도 지금 공공건축의 상황은 신기할 정도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시공사를 탓하기보다는 어떤 시공사와도 구현할 수 있는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A급 시공사만 가능한 디테일이 아니라 평범한 재료와 방식으로도 좋은 건축을 만들어내는 방법, 그런 설계가 뭘까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공공건축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들
요즘 서울시 등에서 외국 건축가들에게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외국 건축가를 초청하는 흐름은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설계자의 역량이나 브랜드, 역할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누가 설계했는가?’가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결과물에 따라 설계자의 영향력을 체감하게 되죠.
또 하나는 화제성이에요. 대형 공공 프로젝트는 주목도가 높아야 추진력을 얻는데, 유명 건축가가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고 담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비판적인 시선도 분명히 있어요. 선별 과정이 다소 차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죠. 한국 건축가들이 실력 문제가 아닌 비교적 브랜드 파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인데, 결국 지금처럼 기회를 가질 구조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국내 건축가들은 성장하기도, 스스로 힘을 기르기도 어려워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앞으로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 용도 변경, 증축 등 기존 건축물을 변형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노베이션은 제약 조건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신축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설계자로서 분명한 도전 과제가 있어 저는 고치는 일을 굉장히 즐겁게 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많아지는 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건축물 철거 현장에 가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폐기물이 발생한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완전 철거가 아니더라도 마감만 철거해도 폐기물 양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게 다 어디로 가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직접 보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원을 파괴하면서 건축물을 짓고 있는지 실감하게 돼요.
그래서 건축물을 짓는다는 행위 자체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치고 싶어도 처음부터 허술하게 지으면 구조적으로 위험하고 기능도 시대에 맞지 않아 수명도 짧아지죠.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짓는 게 중요하고, 그래야 나중에 필요할 때 고쳐 쓸 수 있다고 봐요. 이제는 건축물 하나 짓는 데 들어가는 자원과 그 무게감을 사회적으로 훨씬 더 많이 인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순환의 일부로서
건축가로서 긴 시간 동안,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 직업이 지닌 ‘의미’에서 가장 큰 보상을 얻는 것 같아요. 힘든 일에 대한 보상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 가장 중요했어요.
처음엔 단순히 예쁘고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이 단지 디자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 도시 문제, 주거 문화, 경제적 여건, 삶의 방식과 깊이 얽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저는 그 자체로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의미와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고민하는 건 사이클 안에서 지금의 내 일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가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 지예요. 그런 태도로 일한다면 건축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알게 됐을 때 이 구조 안에서 내가 ‘제대로’ 일한다는 건 이 판에 균열을 내고, 계속 마찰을 일으키는 과정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오랜 시간을 부딪치면서 해내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구보건축은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텐데요. 공공건축 분야에서 특히 도전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탐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까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언젠가는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싶어요. 특히 공공에서 수행하는, 흔히 말하는 아파트가 아닌 방식의 주거를 고민해 보고 싶어요. 지금의 아파트 문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그런 변화의 시기에 건축가들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어떤 담론을 형성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저희도 더 단단해지고 준비돼야겠죠. 아직 뭔가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맡은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의생태학습관 프로젝트와 연결 지어 구보건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의 태도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연의생태학습관을 설계할 때도 그 건축물이 돋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도시 안에서 너무 존재감을 과시하는 건축물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있어요. 도시는 사람과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인데, 그런 맥락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과연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어요.
설계하다 보면 자기 작업에 몰두하게 되고, 그러면 제 작업밖에 안 보이고, 자신의 작업만 중요하게 느껴져요. 주변에 있는 건축물들이나 상황들엔 관심이 덜 가게 되죠. 또 우리가 항상 현장에서 설계하는 게 아니다 보니, 실제로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자주 잊기 쉬워요. 그러다 보면 설계가 관념적으로 흐르기 쉬운 것 같아요.
공공건축 뿐만 아니라 민간 건축에도 적정한 건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건축이 생활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일상을 위한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이게 과연 적정한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요. 우리가 가진 사회적 자원이나 에너지와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고 봤을 때, ‘이 이상을 꼭 써야 하나?’, ‘이게 정말 필요한가?’ 등을 고민하는 태도가 ‘적정 건축’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항상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과잉된 제스처보다는, 그 공간에 필요한 만큼을 고민해서 설계하려고 해요.

프로젝트.
연의생태학습관
위치.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이펜1로 12
설계.
구보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