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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문화무대로 다시 태어난 지하노래방

주민들의 문화무대로 다시 태어난 지하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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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진 자료. 도시공상가

 

[도시공상가: 기웃기웃 시즌2] 최근까지 노래방으로 사용된 지하 공간. 눅눅한 공기와 담배 냄새, 남겨진 가벽과 문짝이 지난 시간을 말해주던 그곳이 주민들의 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주민들은 단순히 도구를 들고 벽을 허물거나 문을 떼고, 페인트를 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며, 일본의 리노베이션 사례를 답사하는 등 공간의 가능성을 탐구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단순한 시공작업조차 오랜 준비와 고민이 더해져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탄생한 ‘언더그라운드 489’는 8월, 아트 야시장을 시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시와 공연, 시장과 체험이 어우러진 자리에서 주민들은 손님이자 동시에 창작자가 되었다. 한때 유흥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지역문화를 실험하는 무대로 전환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489’ 오픈식 전경.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한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지하 노래방, 모두의 문화살롱으로 재탄생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 학의천 인근. 노래방이었던 한 지하 공간이 주민들의 손끝을 거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언더그라운드 489’라 이름 붙은 이 공간은 비그라운드 아키텍츠(공동 대표 윤경숙·차주협)가 운영하는 인덕원 커뮤니티 도시공상가의 DIY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기웃기웃 2탄’의 성과다.

이번 프로젝트는 열여덟 명의 참여자가 한 달 반 동안 함께했다. 주말마다 모여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직접 시공까지 더해 버려진 지하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프로젝트의 불씨는 소유주인 박영인 씨의 고민에서 비롯됐다. 그의 고향인 인덕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점과 노래방이 즐비해 외지인들의 유흥과 접대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부모가 운영하던 3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역시 40여 년간 주점, 찜질방, 노동자 숙소로 쓰였다.

공간이 도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도시가 더 이상 유흥의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수익성을 위해 무작정 임대인을 받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우자는 생각으로 부모를 설득했다. 그러던 중 도시공상가의 DIY 리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여기서 ‘기웃기웃’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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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기웃 프로젝트의 과정

이번 프로젝트는 ‘기웃기웃 1탄’에서의 학습과 답사가 토대가 됐다. 1탄에서는 두 차례의 DIY 리노베이션 스터디가 열렸다. 또한 소규모 부동산 공동 사업, 공간 크라우드 펀딩, DIY형 임대차 방식 등 새로운 개념과 사례를 함께 공부했다. 참가자들은 20~30년 만에 허물어지는 건물이 아닌, 100년을 살아갈 건축을 상상하며 그 안에서 펼쳐질 다양한 일상과 관계를 고민했다.

이후 일본 시모노세키와 후쿠오카 하카타구의 리노베이션 박물관 ‘레이젠소冷泉荘’를 함께 답사했다. 195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 비어 있었으나, 소유주의 DIY 임대와 리노베이션을 통해 개성 있는 빈티지 건물로 되살아난 사례였다.

기웃기웃 팀원들의 일본 답사 현장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참가자들은 “한국의 동네에서도 가능한 모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안고 돌아왔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겼다. ‘기웃기웃 2탄: 언더그라운드 489’에서는 주민들이 하루 종일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틈틈이 모여 함께 식사하며 유대감을 쌓았다.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공사 비용은 소유주가 부담했지만, 큰 예산을 들이기는 어려웠던 상황. 그러나 다행히 프로젝트를 지켜보던 에드워드 페인트가 자발적으로 협찬에 나서면서 가장 큰 지출 항목이 해결됐다. 덕분에 지하 공간은 담배 냄새와 흔적을 지우고, 하얀 벽으로 새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아트 야시장으로 첫 숨을 내쉬다

지난 8월 23일, 드디어 프로젝트의 결실이 공개됐다. 참여자와 일곱 명의 작가와 준비한 ‘아트 야시장’은 오픈 파티이자 첫 무대였다. 공간은 전시와 디제잉, 플라멩코 공연, 기록 영상 상영, 마르쉐와 체험 활동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주민부터 방문객까지 모두가 이곳을 누비며 새로운 공간의 탄생을 함께 축하했다.

무대와 조명이 있었던 자리는 이제 스크린이 걸려 일본 답사 영상이 상영됐고, 한때 술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던 룸들은 벽과 문을 걷어내 개방감을 얻었다. 그렇게 열린 방마다 작은 전시장이 되어 작품과 소품을 내걸었다. 주점의 흔적과 아트 마켓의 풍경이 묘하게 어울리며, 오래된 기억 위로 새로운 이야기가 덧입혀졌다.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

 

유흥의 거리에서 문화의 무대로

도시공상가 를 운영하고 있는 윤경숙 건축가는 이번 프로젝트의 원동력을 ‘참여자들의 의지’에서 찾았다. 지휘자가 아니라 동료로서 함께하며, 주민들의 에너지가 그대로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언더그라운드 489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언제든 새로운 시도를 품을 수 있는 열린 실험장이자 공동 창작물이 되었다.

소유주 역시 뜻밖의 변화를 체감했다. “이 공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요가 클래스, 아침 디제잉 파티 같은 다음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모두가 확인한 순간이었다.

한때 찜질방과 단란주점이 있던 지하 공간에서, 이제는 누구나 환영받는 문화예술 이벤트가 열린다. 담배 냄새와 폐자재로 가득했던 곳은 문짝을 떼고 벽을 칠하는 단순한 작업만으로도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의 높낮이가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몸을 보태고 시간을 쏟으며 공간을 바꾸었다는 경험 그 자체였다.

주민들의 작은 시도가 낡은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는 단지 한 번의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언더그라운드 489의 긴 이야기를 여는 첫 장이 될 것이다.

©장형순 작가 <사진 제공 = 도시공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