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하는 사람들
에디터. 김태진 자료. 케이크와 쓰레기 cake.and.trash
[케이크와 쓰레기] 기후위기는 더 이상 뉴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피부에 직접 닿은 문제다. 실로 무거운 화두를 붙든 이들이 있다. 건축교육가 홍경숙, 큐레이터 김보현, 디자이너 유혜인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그룹 ‘케이크와 쓰레기(cake.and.trash)’다.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의 건축을 주제로 2주간의 교육 프로그램과 3주간의 내부 연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필자는 그중 2주간 개최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첫째 주(8월 27일)에는 명지대 김신효정 교수가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짚었고, 요앞건축사사무소 류인근 소장이 건축 실무 현장에서 체감하는 환경 인식과 한계들을 공유했다.
둘째 주(9월 3일)에는 태국 예술가 솜 수파파린야의 영상 작품을 함께 감상한 뒤, 참가자들이 직접 ‘건축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어 ‘그린레시피랩’ 소속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 과정에서 마주한 재료적 고민을 나누며, 건축과 예술이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과 건축의 실천
올여름 유난히 잦았던 폭염과 강릉의 심각한 가뭄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피부로 체감하게 했다. 이제 “날씨가 이상하다”는 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적응해야 할 일상적 현실이 되었다.
인류는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에너지를 삶에 활용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주어진 것 이상을 끝없이 소비했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었던 에너지 과소비는 이미 한도를 넘어섰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융경제에서는 파산 후에도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지구가 과연 인류에게 같은 기회를 허락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결국 이제는 인류 전체를 넘어, 각 개인이 회생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과학도, 예술도, 건축도 더 이상 관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지난 8월 27일과 9월 3일에 열린 연구자, 건축가, 예술 실천가들의 사례 발표 ‘케이크와 쓰레기’가 주목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하는 사람들
질문을 확장하는 연구자, 김신효정 교수
첫 번째 강연자는 명지대학교 김신효정 교수로 ‘건축, 먹거리, 유통시설, 그리고’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기후위기와 우리의 일상을 연결하며, 환경 문제를 넘어 경제, 노동, 돌봄, 사회 구조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논의를 전개했다.

“지금 이 케이크 한 조각의 진짜 값어치는 얼마일까요?”
김 교수가 던진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케이크 한 조각에는 설탕의 푸드마일리지, 유리병과 알루미늄 캔의 탄소 발자국, 냉장·운송 과정에서의 전력 소모, 나아가 글로벌 농업 구조와 인권 문제가 촘촘히 얽혀 있다. 그 모든 구조의 맨 아래에는 자연이 놓여 있으며, 우리가 먹는 행위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지구 자원을 소진하거나 보존하는 결정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착한 소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음식과 돌봄 노동은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며, 이 구조는 여성 노동과 겹쳐진다. 결국 기후위기는 젠더 문제와도 분리할 수 없으며, 작은 일상에서의 실천이 기후위기 대응의 출발점이 된다고 역설했다.


식량 생산과 유통 또한 기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세계 식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인위적 배출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2019년 IPCC 보고서는 전체 배출량의 21~37%가 식량 시스템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했다. 유통 과정에서의 전력 소모와 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따라서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 식량 시스템 전체의 구조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제기됐다.
김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을 탈성장과 연결하며 ‘돌봄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돌봄은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모두에게 필요한 활동이면서도, 전통적 산업처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사회적 행위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성장 중심의 발전주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탈성장은 성장을 포기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존재 방식과 경제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리카르도 페트렐라, 세르주 라투슈, 엔리케 두셀 등이 저술한 『탈성장』에서는 이를 “코끼리를 달팽이로 바꾸자”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과거의 거대하고 빠른 성장(코끼리)을, 느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달팽이)으로 전환하자는 뜻이었다.



친환경 건축의 모순을 짚는 류인근 소장
같은 날, 요앞건축사사무소 류인근 소장은 현장의 관점에서 친환경 건축이 산업적 모순과 제도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짚었다. 그는 오늘날 건축에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상과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강조했다.

류 소장은 네 페이지에 달하는 법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며 ‘건축은 어떤 프로젝트든 관련 법규와 인증 제도를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건축물 인증,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신재생에너지 사용 등 공공 건축에서 요구되는 항목은 많지만, 단체마다 인증 기준이 달라 중복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는 친환경 건축이 지나치게 ‘에너지 효율’에만 치중되어 있는 현실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 결과 많은 건축사무소가 외주 업체에 인증 업무를 맡기고, 실제 설계자는 친환경과 직접적으로 맞닿지 못하는 구조가 굳어진다.


류 소장은 공공 건축에 적용된 친환경 적용 사례도 공유했다. 공공 건축에 적용된 지열 활용과 태양열 설비는 기술적으로 놀라운 수준이었지만, 이러한 시설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 일반 건축물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법적 요구 사항과 규제가 설계의 중심이 되면서, 친환경의 철학보다 제도적 요건 충족이 우선되는 현실이 드러난다.
그는 건축의 철학적 측면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아무리 ‘에코 프렌들리’한 건축을 설계하더라도, 건축 자체가 본질적으로 자연을 배타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설계의 목적이 벌레 한 마리조차 건물 안에서 허용하지 않는 구조라면 그것을 진정한 친환경이라 할 수 있는지 반문했다.
류 소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친환경 건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작동하는 산업과 제도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과 인증에 의해 설계가 제한되고, 외주 의존적 구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진정한 지속가능성과 건축가의 철학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친환경 건축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으로 환경과 만나는 그린 레시피 랩
오랜 시간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 예술 분야도 이번 자리를 빛냈다. 2주차 강연자로 참석한 그린레시피랩은 전시와 예술 실천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 온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은 작가, 디자이너, 연구자 약 55명이 속한 단체로, 다방면에서 지속 가능한 전시 실천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집단이다.


그린레시피랩은 먼저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를 짚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기준으로, 전시가 끝나면 약 5톤에 달하는 가벽, 우드락, 시트지 등의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에 대응해 이들은 폐기물을 새로운 작품 재료로 전환하거나, 설치 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적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을 실천 사례로 제시했다.
또한 이들은 전시장 내부에서 쓰레기가 발생하는 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오프사이트(Off-site)’ 전시를 적극 활용했다. 오프사이트 전시는 정해진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제3의 장소를 전시 공간으로 삼는 프로젝트형 전시다. 실제로 그린레시피랩은 주차장, 공원 등 관객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전환해 작품을 선보였다. 관객은 낯익은 공간 속에서 작품을 마주하며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즉, 그린레시피랩의 전시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전시와 예술 실천 자체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참여자가 함께 만들어본 케이크
기후위기와 건축이라는 불편한 주제의 충돌 속에서 김신효정 교수는 독일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 1931~2023)의 ‘경제 케이크’ 비유를 소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케이크와 쓰레기’ 기획자는 참가자와 함께하는 실험적 워크숍, ‘건축 케이크 만들기’를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직접 케이크 층을 쌓아 올리며 과정에 참여했다. 케이크를 쌓는 과정은 패시브 건축에서 강조되는 단열재의 중첩을 기술적 성능으로만 설명하는 대신, 사회적·생태적 층위를 시각화하는 과정이었다.


케이크의 맨 아래에는 다육식물용 토양과 자연에서 주운 풀잎사귀가 깔렸고, 그 위로 색모래와 쌀과자 튀밥이 층을 이루었다. 포장재를 재활용한 스티로폼은 단열재를, 규조토 팩가루는 콘크리트를 상징했다. 간간이 덧댄 골판지와 방수포는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 실험은 단순한 모형 제작을 넘어, ‘보이지 않는 노동과 자연 위에 세워진 건축과 사회’라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동시에 향후 어떤 작업으로 이어질지 모를 미지의 출발점을 예고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케이크 층을 직접 쌓는 행위를 통해, 평소 외벽에 가려진 건축물 내부의 층위를 엿보듯 자신이 딛고 선 시스템의 구조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방법은 우리의 발밑에 있다
최근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가시화된 현실을 수치로 다시 확인시킨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 폭염의 발생 빈도와 강도는 모두 증가하고 있으며, 인위적 요인으로 인한 폭염 발생 확률이 최대 4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태풍의 극한강수 영역은 16~37% 확대되고, 초강력 태풍이 유지될 수 있는 고수온 발생 확률은 최소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반도 내에서 태풍에서 안전한 지역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책적 대책과 데이터가 놓치는 부분이 있다. 환경에 연루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건축 현장에서, 연구의 자리에서, 혹은 일상적인 소비 습관 속에서 각자가 기후위기에 맞서는 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인류가 개발한 전기, 도시 가스, 반도체, 건축 자재 등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은 인류 모두의 공공재로서 책임 있는 사용이 필요하다. 올 여름 폭염과 가뭄이 보여주듯, 기후 변화의 직접적 징후는 우리의 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인류는 농경지 개간을 시작으로 지구를 점차 변형시켰고, 생산과 소비라는 이념을 더해 지구 착취를 가속화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행동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건축할 때, 우리가 작품을 만들 때, 우리가 소비할 때, 진정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우리의 발밑에 있다.

프로그램.
케이크와 쓰레기 #1. 기후 위기와 건축
교육 장소.
바운더리스 건축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209, B1F)
운영 기간.
8월 27일 ~ 9월 24일 (5주)
강연자.
김신효정 교수 (명지대학교)
류인근 소장 (요앞건축사사무소)
정원, 김한비, 송윤지 (그린레시피랩)
기획자.
건축교육가 홍경숙, 큐레이터 김보현, 디자이너 유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