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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를 넘어 사유로

도구를 넘어 사유로

Musée des Arts et Métiers건축건축가기술 이후의 건축김성아김성아 교수성균관대 건축학과움베르토 에코파리 기술공예박물관푸코의 진자Story
글. 김성아 에디터. 정지연

 

[김성아의 기술 이후의 건축가] 기술은 최적화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듭니다. AI는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고르고, 인간은 가능성이 없어도 마음이 끌리는 길을 택합니다. 이같은 비합리성은 결함이 아니라 창조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은 이 감정적 필연 위에서 태어나기에 기술의 시대에도 건축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연재는 건축을 둘러싼 기술적 변화의 과정에서 건축가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 지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도구를 넘어 사유로 – 건축가의 새로운 손

 

“천장에 매달린 무수한 전시품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전시 품목은 교육적인 구실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의미 심장한 지식의 메타포였다. 진자가 그 궤적을 좇고 있는 알레고리인 쥐라기의 곤충 무리와 파충류는 성난 아르콘 같았고, 브레게, 블레리오, 에스노의 비행기, 그리고 뒤포의 헬리콥터는 아르콘이 겨냥하는 조상새 부리처럼 생긴 화살 끝 같았다.”
– ‘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저, 이윤기 역

 

움베르토 에코의 이 문장으로 열리는 ‘푸코의 진자’ 속 공간, 파리 기술공예박물관(Musée des Arts et Métiers)의 생 마르탱 데 샹(Saint-Martin-des-Champs)은 발명품을 정리해 보여주는 장소를 넘어, 인간의 상상력과 용기가 시간 속에 겹겹이 쌓인 기억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물들은 설명되기 이전에 이미 거대한 서사를 품고 있다. 그것들은 지식의 성과물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가능성을 향해 몸을 던졌던 흔적들이다.

은은한 빛 속에서 브레게(Breguet)의 ‘R.U1 No.40’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궁륭 천장 아래에는 블레리오 XI과 에스노-펠테리(Esnault-Pelterie)의 ‘R.E.P. 1’이 내려다본다. 투박하고 원시적인 형상의 비행기들. 그러나 그 날개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먼저, 하늘을 향한 인간의 갈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공간은 ‘지면과 헤어질 결심’을 품었던 영혼들의 흔적이 머무는 장소다.

영예의 계단(l’escalier d’honneur)을 따라 올라가면 끌레망 아데르(Clément Ader)의 ‘아비옹(Avion) III’와 마주한다. 증기기관으로 날개를 움직이던 이 비행기는 기계라기보다 한 시대의 열망이 응축된 조형물에 가깝다. 아데르가 라이트 형제보다 앞서 동력비행을 성공했는 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그가 새로운 세계의 문턱을 밟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바퀴 자국이 끊기는 순간, 그는 자신의 루비콘 강을 건넜을 것이다.

 

파리 기술공예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끌레망 아데르의 ‘아비옹 III’ ©Sung-Ah Kim

 

이곳에 놓인 모든 물체는 과학사의 성취물이기 이전에 상상력의 실체다. 경계를 넘으려 했던 의지의 물리적 흔적이며, 용기가 형태를 얻은 결과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 발명품들이 품고 있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콘택트(Contact)’에서 엘리가 우주의 끝에서 돌아와 불과 몇 초의 전자기 잡음만 남겼던 것처럼. 그러나 그 몇 초 안에 담긴 18시간은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력한 증거였다. 아데르의 300미터 남짓한 비행 역시 짧은 이동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상상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장면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미네뜨 바리(Minnette Vári)의 영상물 ‘센티넬(Sentinel)’은 변화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변화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의 상태를 암시한다. 화면 속 인물은 도시를 내려다보는 낯선 피조물이다. 인간과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신체는 여러 세대에 걸친 잔재와 염원, 선물과 무기가 뒤엉킨 변형된 형상이다. 첨병(sentinel)처럼 다가오는 변화의 전조일 수도 있고, 이미 낯설어진 도시로부터 이탈한 정신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그 낯섦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네뜨 바리 작가의 영상물 ‘센티넬’ 중 한 장면.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경계를 넘고 있다. 이 경계는 지도 위의 선이나 국경이 아니라, 감각과 기술, 기억이 뒤섞이며 생성된 새로운 차원의 경계다. 과거에 경계를 넘는 일은 물리적 공포와 맞닿아 있었다. ‘서울로 간다’는 말이 하나의 사건이던 시절처럼, 경계는 세계의 크기이자 마음의 크기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넘고 있는 경계는 훨씬 더 내면적이다. AI와 데이터, 가상공간과 디지털 트윈이 구성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다른 방식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월급 2만9000원 짜리 AI는 신입도, 경력자도, 전문가도 아닌 기묘한 존재다. 기술 분석과 시뮬레이션, 검토 작업을 몇 초 만에 수행하는 이 디지털 동료는 교육과 경력, 자격이라는 근대적 전문성의 계단을 흔든다. 지식의 희소성은 빠르게 약화되고, 시간은 압축된다. 이 변화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인간의 전문성은 어디에 남는가. 영상 플랫폼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연 이후, AI는 편집과 합성, 생성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든다는 말은 더 이상 민주화의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경제 질서가 되었다. 크리에이터는 개인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팬덤, 브랜드가 결합된 프로세스다. 전통적인 교육을 거치지 않아도, 강력한 도구 위에서 공간과 객체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설계의 정확성보다, 얼마나 빠르게 상상력을 가시화하고 연결하느냐에 달렸다.

파리 기술공예박물관의 ‘생 마르탱 데 샹(Saint-Martin-des-Champs)’ 내부 전경 ©Sung-Ah Kim

 

그러나 누구나 감각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는 수많은 형태를 생성할 수 있지만, 어떤 공간이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차이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왜 이런 형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서사적 응답에서 생겨난다. 도구가 정교해질수록 상상력과 해석력의 차이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디지털 도구는 이제 표현을 넘어 사고하고 학습하며 대안을 생성한다. 건축가는 더 이상 설계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의미를 조율하는 존재가 된다. 디지털 트윈은 센서 데이터가 결합된 3D 모델이 아니라, 실패와 성공, 사용과 유지의 기억이 축적된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될 수 있으며, 실체의 유무와 무관하게 자기 진화를 거듭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지고, 가상은 현실의 작동 원리가 된다.

이 과정에서 AI는 도구를 넘어 함께 설계하는 존재가 된다. 가능성을 제시하고, 선택을 예측하며, 때로는 방향을 제안한다.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진리를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의미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조율된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듯, 세계는 애초에 해악이 없는 수수께끼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안에 단 하나의 답이 있다고 믿는 태도다.

 

파리 기술공예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브레게(Breguet)의 ‘R.U1 No.40’ ©Sung-Ah Kim

 

그래서 오늘 다시 건축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건축은 형태나 기능을 결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가상과 현실의 층위를 오가며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를 묻는 사유의 예술이다. 기술은 최적화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AI는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고르고, 인간은 가능성이 없어도 마음이 끌리는 길을 택한다. 이 비합리성은 결함이 아니라 창조의 조건이다.

건축은 이 감정적 필연 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기술의 시대에도 건축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가는 감각의 증언자이며, 기억을 번역하고 세계의 균열을 읽는 사람이다. 미래는 언제나 경계를 먼저 넘어본 자의 기억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공간이라는 언어로 다시 쓰는 존재, 그가 바로 건축가다.

이 글은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긴 여정의 입구에 가깝다. 이어지는 글들은 가상공간과 디지털 트윈,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건축적 조건을 통과하며, 건축이 어떻게 물리적 실체를 넘어 기억과 시간, 경험의 구조로 확장되는 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공간 이후의 건축’은 더 이상 역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그리고 ‘인간 이후의 건축’은 인간을 배제하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무엇을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지를 되묻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이 연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기술 낙관도 기술 비관도 아니다. 그것은 기술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건축이 여전히 사유의 형식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이다.

AI가 최적의 답을 제시하는 세계에서, 건축가는 여전히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자동화된 환경 속에서도, 공간은 기억을 낳고 감각을 흔들 수 있는가. 첫 회를 파리 기술공예박물관의 비행기들로 시작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았고, 실패에 가까웠으며, 당대에는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도구들 덕분에 세계는 한 번 더 확장되었다. 이 연재가 다시 묻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오늘 우리가 쓰는 도구들은, 과연 어떤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가.

기술은 언제나 경계를 앞당겨 놓는다. 건축은 그 경계 너머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 지를 묻는다. 이 연재는 그 질문을,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회피하지도 않은 채 이어가려 한다.

 

김성아 Sung-Ah Kim
성균관대학교 교수로서 건축 설계와 컴퓨팅을 접목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미국(Harvard University)과 스위스(ETH)를 오가며 1990년대에 무르익던 설계 자동화와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영화, 음악, 전쟁사와 지리, 언어 등의 잡학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2021)’, ‘건축학과 교수의 클래식 음악 수첩(202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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