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 문화를 담는 그릇
글. 김태진 에디터 사진. 이용주 건축스튜디오 Yong Ju Lee Architecture
건축, 기술 그리고 문화의 접점
건축(Architecture)은 무엇일까? 건축의 경계를 탐구하다 보면 그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으며, 건축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자연스럽게 사유하게 된다.
먼저 어원을 살펴보며 건축의 본질을 이해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아키텍처(Architecture)’는 근원을 뜻하는 ‘아르케(Arche)’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네(Techne)’의 합성어다. 따라서 건축은 동시대의 근원이 되는 원천과 다양한 과학 기술이 결합한 총체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자연과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건축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건축가가 예술가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건축이 본질적으로 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용적 기술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철학적 논의를 떠나 국내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건축과 건설, 건축주와 건물주의 경계를 모호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해 건축가를 ‘집 짓는 사람’ 정도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건축 문화’가 정착하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난다.
이같은 배경 속에서, 국내 건축계에 새로운 문화적 시각을 제시하는 이용주 건축가의 신간 ‘생각의 구축’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관심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신기술과 접목하여 구현해 낸 17개의 실험적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영화, 음악, 소설,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건축은 그의 작업에서 독창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 프로젝트는 시작 계기와 아이디어의 출발점, 설계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해결 방식, 그리고 자세한 도면과 사진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이용주 건축가를 특징지을 수 있는 책 속에 소개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책에 관련하여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방법
이용주 건축가는 종합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 영화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캐나다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1980년대 바디 호러 영화에서 착안한 ‘분해 농장’과 ‘애벌레 건축’이 그 예시이다. 영화에서 유기체와 무기물의 결합을 핵심 이미지로 삼은 그는 이를 기후 위기의 건축적 대안으로 발전시킨다. 밀웜mealworm을 활용한 애벌레 건축은 이러한 아이디어의 일환으로, 밀웜이 폴리스타이렌을 소화해 무해한 배설물로 배출하는 특징을 건축적 창작에 적용한 것이다.



‘애벌레 건축’은 밀웜이 특정 크기의 스티로폼을 먹고 분해된 형태를 그대로 건축물의 슬래브로 사용한다. 이 과정은 실시간으로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밀웜의 활동이 환경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후 이 아이디어는 ‘분해농장 : 계단’이라는 큰 설치물로 확장되었으며, 산업용 로봇을 활용해 스티로폼 덩어리를 가공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선으로 가공된 폴리스타이렌 덩어리가 밀웜의 서식지를 만들고, 이끼와 함께 생태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실험은 단순한 탄소-제로 건축을 넘어 탄소-네거티브 생애주기를 추구하며, 최신 기술을 활용한 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만큼이나,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과거로 되돌리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상상을 실재로 구현하는 방법
책에 소개된 사례 중 하나인 뿌리벤치는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간 경험을 선사하며, 그 자체로 한강공원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뿌리벤치’는 한강의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공공 예술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당신에게 쉼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스케치 공모전에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한 고등학생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제안된 형태는 한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뿌리가 사방으로 구불구불하게 뻗어 나가는 벤치였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축이나 예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잠깐이라도 눈길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건축 프로젝트라고 믿는다. -66p ‘뿌리벤치’ 중
완성된 뿌리벤치는 서울 한강 공원에 배치되어 도시와 자연을 잇는 독특한 공간을 창출했다. 벤치는 나무뿌리처럼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며, 다양한 높낮이와 곡선을 통해 시민들이 앉거나 눕는 다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자연과 인공이 결합한 형태는 공원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방문객들에게는 시각적 예술성과 동시에 실용적인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뿌리벤치의 디자인은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간 경험을 선사하며, 그 자체로 한강공원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설계 과정은 매우 기술적인데, 건축가는 뿌리벤치의 복잡한 형태에서 건축가는 ‘반응-확산계’라는 알고리즘을 떠올렸다. 이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패턴을 분석하는 수학적 모델로, 동물의 피부 패턴처럼 고유한 형태가 나타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건축가는 그래픽 알고리즘 툴인 ‘그래스호퍼Grasshopper’를 사용해 반응-확산계의 변수를 조정하며 형태를 설계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4가지 주요 목표를 설정했다.
- 인공과 자연 요소가 곡선으로 엮인 유기적 형태
- 나무뿌리처럼 가운데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
- 시공 가능한 형상
- 가구로서의 기능성

목표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알고리즘을 통해 형성된 기본적인 디자인의 부분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실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하기 위한 건축가의 실무적 고민이 담겨 있다. 협의한 시공업체와의 협력 속에서 몇 가지 제약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각파이프를 사용해 벤치의 구조를 지지하기 위해 40mm x 40mm 크기의 파이프를 선택했으며, 곡선은 직선과 호의 일부로 수정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구조적인 제약을 만족시켜야 했다. 또한 가구로서의 기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높이를 어린이 의자, 성인 의자, 테이블 높이로 세 가지로 구분하고, 편안한 사용을 위한 간격도 고려해야 했다.
실제 제작 과정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각파이프 구조를 자르고 가공하는 데 한 달이 걸렸고, 구조물이 설치된 이후에도 데크 작업에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시공자들의 불만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건축, 문화가 되다
건축을 단순히 집을 짓는 기술로 간주하면, 이는 공공의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건축이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탐구와 혁신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용주 건축가는 이러한 도전 속에서 새로운 접근법과 관점을 제시하며, 국내 건축계가 잃어버린 예술적 경계를 복원하고 독립적이고 고유한 건축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그의 저서 ‘생각의 구축’은 건축을 기술과 문화의 총체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환경, 기술,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건축관과 실천을 담고 있다.
건축이 기술적 수단을 넘어 문화적 표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실현을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다.
도서명.
생각의 구축
출판사.
효형출판
저자.
이용주
판형 및 분량.
120×170 mm | 296쪽
정가.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