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콘택트, 루이즈의 언어와 철수 씨의 집짓기
글. 최준석 에디터. 김태진
[최소장의 시네마노트] 영화와 건축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각적 매체이며, 인물과 그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에는 인상적인 공간이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어떤 장면들은 마치 정교한 건축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영화 속 건축은 ‘말하지 않는 배우’와 같습니다. 배경처럼 머물러 있지만, 장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의 감정을 담아냅니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상상과 생각들을 짧은 에세이로 연재하려 합니다. 영화를 통해 건축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미나리, 그 집의 기억 – 정이삭 감독, 영화 ‘미나리’
②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 씨의 집을 설계하던 날 – 빔 벤더슨 감독, ‘퍼펙트 데이즈’
③ 영화 콘택트, 루이즈의 언어와 철수씨의 집짓기 – 드니 빌뇌브 감독, ‘콘택트(Arrival)’
④ 마음이 지은 담장에 관하여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존 오브 인터레스트’
⑤ 강변의 무코리타, 그 해 여름의 기억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강변의 무코리타’
⑥ 그녀, 불완전함에 관하여 – 스파이크 존즈 감독 ‘그녀 Her’
⑦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 박제범 감독 ‘집이야기’
⑧ 그래비티, 진실은 이면에 있다 –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
⑨ 계단 중간의 문을 열면 – 실뱅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⑩ AI 앞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기차의 꿈 Train Dreams
한번 보고 다신 볼 일 없는 영화가 있고 너덧 번 봐도 재밌는 영화가 있다. 내겐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의 영화 ‘콘택트(Arrival, 2016)’다. 늘 보던 SF영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식으로 보든 재밌기만 하다면야 별 상관없긴 하지만.
키조개처럼 생긴 거대한 UFO가 땅에 접촉하지 않고 공중에 절묘하게 떠 있다. 뭔가 센 놈들이 외계에서 지구를 찾아왔는데 어디선가 마블 영웅이 나타날 리 없고 변신 로봇으로 합체되는 지구 방위대도 없다. 지구 입장에선 대체 저들이 왜 왔는지부터 알아야겠으니…. 영화 시작 부분만 보면 팀 버튼의 ‘화성 침공’을 연상시키는 뻔한 클리셰다.

한데 이후의 전개가 조금 다르다. UFO는 관조하듯 아무 반응이 없다. 형태도, 구조도, 감각도 확실히 비지구적인 분위기다. 거대한 키조개 속으로 들어가니 중력이 바뀌고, 공간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외계 생명체의 실체는 다리 7개 달린 생명체 일명 ‘헵타포드’다. 그들의 언어는 뿌연 먹물이 둥근 원으로 번지는 기괴한 상형문자 형태.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애덤스 분)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선형적 시간으로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 점차 처음과 끝이 하나로 맞닿는 그들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루이즈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직관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미래에 겪을 기쁨과 고통, 후회와 그리움을 알게 된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어린 딸이 죽고, 그녀의 사랑도 떠나고, 다시 홀로 남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과거의 추억처럼 보게 된 루이즈. 이미 알아버린 미래를 받아들이는 헵타포드의 세계관 속에서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다.

비트겐슈타인 선생께서 말씀하셨던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인식할 수 있는 진짜 세계라는 의미로, 나는 이해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나의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얘기이다. 예컨대 노란색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노란색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그 사람의 언어에 노란색이 없으면 노란색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없는 셈이다.

4년 전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했던 철수 씨. 그는 40대 중반 중견 샐러리맨으로 30년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전형적인 아파트 키즈였다. 처음 만난 날 그의 눈에 아른거리던 떨림과 결의가 생생하다. 한 달 후 첫 번째 설계안을 보고 한참 말이 없던 그의 흔들리던 눈빛도.
“천장 높이가 6m요…?” 거실 상부의 일부를 2층 천장까지 수직으로 열어 시원한 보이드void를 두었는데 흠칫해서 나도 놀랐다. 비효율의 결정체로 보였던 모양이다. 난방비, 소음, 청소, 공사비….
아파트 살면서는 당최 해볼 일 없을 고민에 당황한 그에게 나는 말했다. “철수씨 돈 워리, 살아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아마도, 만족하실 거예요. 한번 믿어주시면….”
헵타포드와 루이즈를 보면 나와 철수 씨가 겹친다. 헵타포드의 언어 대신 철수 씨의 공간이라도 의미는 같으니까. 내 공간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 내가 경험하고 인식했던 공간의 폭이 내 세계의 폭이다. 그럴 듯하다. 어떤 공간을 인식하는지에 따라 인식하는 세계의 폭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 물론 현실의 건축은 좀 다르다. 익숙한 세계에 머물려는 분들이 다수.
가령 이런 세계다. ‘방은 3 : 4 비율 직사각형으로, 4평은 돼야죠’, ‘거실은 반듯하고 네모나게, 소파와 TV가 서로 마주 보는 벽이 필요해요’, ‘홀 중앙의 계단은 데드 스페이스인데 구석 자리에 작은 계단이 효율적이지 않나요’, ‘창 너무 많네요. 겨울에 추울 텐데요…’.
누구든 자신의 언어가 있고 그 속에서 잘 살아왔다. 아파트의 언어에서 단독주택의 언어로 넘어가는 과정이 간단치는 않은 이유다. 막상 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지만.

아파트의 언어는 면적, 방 개수, 동선, 수납처럼 정량화된 요소다. 층층이 세대가 겹치는 집합 주거로서 효율과 반복을 기반으로 한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동일한 평면, 규격화된 공간 구성, 외부와 확실히 분리된 각 세대 구조.
누구든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공간에 맞는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이 구축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바깥보다 내부가 중요하고, 개별성보다는 통일성에 익숙해진다. 아파트의 언어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표준화된 수치가 있다. 이런 언어가 수십 년간 몸에 밴 것이다.
반면 단독주택은 따로따로의 독립체, 정해진 틀이 없다. 대지마다 배치와 구성이 다르고, 거주자 취향 맞춰 힘을 줘야 할 집의 콘셉트가 변한다. 기능과 효율로 설명되지 않는 각자가 원하는 공간과 구조가 중요하다.

단순한 형태와 건물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언어를 받아들이고 세계관을 인식하는 일이다. 처음엔 도면도 공간도 잘 안 읽힌다. 하지만 점점 낯선 언어가 눈에 익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된다. 처음엔 효율과 면적에만 관심 있던 철수 씨도 조금씩 변했다.
“소장님, 주방 싱크대 벽 옆에 마당 모퉁이 작은 모래밭이 보이는 작은 창을 내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가 왠지 그 코너를 좋아할 거 같아서요.”
설계가 중반을 넘어가던 즈음이었나. 그가 문득 던진 말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각의 전환이 숨어있었다. 비로소 아파트의 언어에서 단독주택의 언어로 넘어가는 순간, 그제야 집이 철수 씨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우리의 삶과 공간도, 주어를 바꾸고 어순을 뒤집고, 문법을 익히고, 쉼표 대신 느낌표를 써보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에 새로운 시야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루이즈 같은 의뢰인을 만나면 행복하다. 낯선 언어를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집은 또 다른 언어다. 건축가는 낯선 언어를 보여주는 사람, 루이즈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먹물을 뿌리며 말을 걸던 헵타포드처럼 말이다.

최준석 Junseok Choi
최준석 소장(나우랩건축사사무소)은 서울에서 오랜 시간 건축 실무를 해오다, 용인 보정동에 직접 지은 3층 주택에 터를 잡게 되었다.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건축주의 입장을 깊이 체감했고, 이 경험은 남의 집을 설계할 때 들리는 삶의 사연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출퇴근 없는 삶을 선택하고, 집 1층에 절친 차현호와 함께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그는 건축이란 결국 누군가의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의뢰인과의 편안한 대화에서 좋은 집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집의 귓속말(2020)’, ‘건축이 건네는 말(2016)’, ‘서울 건축만담(2014)’ 등을 출간하며 건축과 사람, 도시를 잇는 글쓰기도 지속해왔다.
누군가의 집을 짓고 그 과정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백발의 건축가로 남는 것이 그의 오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