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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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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준석 에디터. 김태진

 

[최소장의 시네마노트] 영화와 건축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각적 매체이며, 인물과 그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에는 인상적인 공간이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어떤 장면들은 마치 정교한 건축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영화 속 건축은 ‘말하지 않는 배우’와 같습니다. 배경처럼 머물러 있지만, 장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의 감정을 담아냅니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상상과 생각들을 짧은 에세이로 연재하려 합니다. 영화를 통해 건축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미나리, 그 집의 기억 – 정이삭 감독, 영화 ‘미나리’
② 히라야마 씨의 집을 설계하던 날 – 빔 벤더슨 감독, ‘퍼펙트 데이즈’
③ 루이즈의 언어와 철수 씨의 집짓기 – 드니 빌뇌브 감독, ‘콘택트(Arrival)’
④ 마음이 지은 담장에 관하여 –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존 오브 인터레스트’
⑤ 강변의 무코리타, 그 해 여름의 기억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강변의 무코리타’
⑥ 그녀, 불완전함에 관하여 – 스파이크 존즈 감독 ‘그녀 Her’
⑦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 박제범 감독 ‘집이야기’
⑧ 그래비티, 진실은 이면에 있다 –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
⑨ 계단 중간의 문을 열면 – 실뱅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⑩ AI 앞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기차의 꿈 Train Dreams


 

©영화사지음

 

영화를 안 봤다면 아마 이번에도 그 집을 찾아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필이면 여행 직전 주말에 아내와 같이 본 영화가 ‘집 이야기’였다. 아빠와 딸이 같이 살던 어떤 집에 관한 이야기. 가족이 살다 하나둘 떠나버린 그 집에, 다시 사람이 돌아오는 이야기.

늦은 여름휴가를 맞아 들어간 제천 박달재 숲 속엔 길고 한가로운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소백산맥 능선이 보이는 독채형 리조트에 비 핑계로 갇혀서 책 읽고 낮잠 자고 오래간만에 호사스러운 룸서비스 시켜 먹고 비 맞으며 노천 스파도 즐기고 며칠 뒹굴뒹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천에 잠시 들러 점심도 먹고 그 집을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이천을 지나갈 때면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집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강렬하게 가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어서 조수석에 앉아 혼잣말처럼 소심하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곤 했다.

사흘 내내 내린 비 덕분인지, 잘 쉬어서인지, 영화의 잔상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엔 아내의 혼잣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말했다. “이번엔 한번 가보자, 사실 나도 좀 궁금하긴 해.” 그 집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게 연애하던 시절이니까 거의 20년이다. 그 집은 아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외과 전문의였던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돌아가신 장인께서 서울의 큰 병원을 나와 처음 독립해서 차린 작은 병원과 살림집이 같이 있던 상가주택이었다.

 

©영화사지음

 

병원 이름은 이천 현대신경외과. 1층에서 3층은 진료실, 입원실, 수술실, 약국 등이 지하엔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살림집은 4층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집 주소는 이천읍 창천 6리였는데 논밭이 드문드문 보이는 저층 연립빌라와 단독주택이 섞여 있던 변두리 동네였다고 했다.

아내의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이천시 창천 6동 골목. 왕복 2차선 차도 주변에 3~5층 짜리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아내는 쉽게 찾지 못하고 세 번쯤 같은 길을 이리저리 돌고 난 뒤에야 한 집을 가리켰다. 1층엔 편의점, 2층엔 피자집, 3층은 소아과, 4층엔 주택으로 쓰고 있는 낡은 건물. 집 떠난 지 3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아내는 예상보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건물을 응시했다.

“그랬구나! 저 집이었네. 외벽은 한번 새로 했나 보네. 예전엔 연하늘색 타일 집이었는데 지금은 회색 돌이 붙어있네.” 물론 나 역시 감동적인 드라마의 한 장면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한참 물끄러미 복잡한 시선으로 집을 어루만지던 아내는 갑자기 “됐어, 이제 가자”하며 돌아섰다. 영화 속 은서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빈집에 들어와 마지막으로 둘러보던 그 애매모호한 표정과 닮았다.

 

©영화사지음

 

여행 가기 전 영화를 보다가 아내가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거쳐 가는 집은 몇 개나 될까? 우. 리.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집. 대충 세어보니 나는 지금 집이 여섯 번째 집인데 오빠는 어때?” “음 글쎄. 하나, 둘, 셋….지금은 몇 번째 집일까. 이 집이 마지막일까. 아니면 아직도 몇 번의 집이 더 남아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살면서 거쳐 간 집으로 설명되고 이해될 수도 있다는 걸.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나와 혼자 서울살이하던 신문사 편집기자 은서가 계약기간이 끝난 월세 집을 떠나 또다시 새집을 알아보는 처지가 되었을 때, 주저했던 이유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살고 있는 그 집에 가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인천 변두리에 살고 있는 아빠는 열쇠 전문 수리 가게가 붙어있는 낡고 좁은 단층집에서 엄마, 언니, 은서를 떠나보낸 후에도 줄 곳 혼자 살았다. 마치 뿔뿔이 흩어져버린 옛 가족의 베이스캠프, 기억의 저장고처럼.

비록 이젠 가족처럼 여겨지지 않는 모호한 사이가 되었더라도 같이 살았던 그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은 아빠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예전 그대로의 집에서 살았다. 은서는 모두가 떠난 그 집이 싫었다. 은서에게 그 집은 도망치고 싶은, 지긋지긋한 연민이었다.

 

©영화사지음

 

하지만 역세권과 가격, 계약기간으로 매겨지는 서울의 임시 거처들을 전전하며 지쳐버린 마음을 받아줄 곳이 그 집 말고는 없다는 걸 알았다. 집에 다시 들어와 아빠와 둘이 지내면서 은서는 잊고 있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던 아빠의 마음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 집이 둘의 허기진 마음을 다시 묶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할 굴레 같은 곳인데 어떤 사람에게 집은 들어가고 싶어도 주변만 배회하게 되는 곳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 집은 싫어서 떠났는데 다시 올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영화사지음

 

사실은 누구보다 그 집을 떠나고 싶어서 햇볕 드는 창 하나도 안 만들고 일부러 토굴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집에 어떤 기대도 주지 않고 살았던 은서의 아빠는, 제일 마지막까지 그 집을 지켰던 사람이 되었다.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가족, 남았던 이유도 가족이었는데 우리는 종종 집이 우리에게 그런 존재임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처음엔 사람이 집에서 살지만 살다 보면 집이 서서히 사람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살게 된다. 아내의 표정은 쓸쓸했지만 후련해 보였다. 이제 일부러 이천에 그 집을 다시 보러 올 일은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천 지날 때마다 아내가 그 집을 더는 혼잣말로 중얼거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조금 마음이 헛헛해졌다.

 

©영화사지음

 

최준석 Junseok Choi

최준석 소장(나우랩건축사사무소)은 서울에서 오랜 시간 건축 실무를 해오다, 용인 보정동에 직접 지은 3층 주택에 터를 잡게 되었다.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건축주의 입장을 깊이 체감했고, 이 경험은 남의 집을 설계할 때 들리는 삶의 사연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출퇴근 없는 삶을 선택하고, 집 1층에 절친 차현호와 함께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건축이란 결국 누군가의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의뢰인과의 편안한 대화에서 좋은 집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집의 귓속말(2020)’, ‘건축이 건네는 말(2016)’, ‘서울 건축만담(2014)’ 등을 출간하며 건축과 사람, 도시를 잇는 글쓰기도 지속해왔다.

누군가의 집을 짓고 그 과정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백발의 건축가로 남는 것이 그의 오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