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의 해체된 공동체를 찾아서
글. 김태진 자료. 안그라픽스 ahn.graphics
‘탈 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저)’은 과거와 현재, 일본의 환경 변화를 분석하며 해체된 커뮤니티의 원인을 추적하는 한편,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관리의 효율 측면에서 탄생한 ‘1가구 1주택’ 관념이 커뮤니티 해체의 주요 원인임을 지목하며, 효율주의에 입각한 ‘프라이버시’ 아래 외부와 단절된 삶이 진정 안전하고 편리한가, 오늘날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는 도시와 주거 형태가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건축이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성과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책은 이러한 단절의 구조를 설계자가 해결해야 할 책임 있는 과제로 제시한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설계적 대안으로 ‘시키이(閾)’라는 공간 실험을 소개한다. 시키이는 사전적 의미로 문지방, 문턱을 뜻하는데, 저자는 이를 집과 외부, 집과 집 사이의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중간공간’으로 확장해 해석한다. 예컨대 중정이나 툇마루처럼 외부로부터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열린 사적 공간을 의미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야마모토 리켄의 사례로는 ‘구마모토현 호타쿠보 제1단지’와 ‘헤이타 모두의 집’이 있다.
‘호타쿠보 프로젝트’에서는 공동주택의 배치 방식을 통해 관계 형성의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리빙룸과 침실을 각각 두 개의 건물로 나누고, 그 사이를 외부 다리로 연결했으며, 단지 중앙에 중정을 배치하여 주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은 중정을 지나야만 집에 도달하거나, 집을 지나쳐야 중정에 닿을 수 있었다. 이러한 배치는 주민 간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유도하며, 중정과 같은 공적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구조이다.
‘헤이타 모두의 집’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반복적으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로 추진되었다. 저자는 피해자들이 가설주택에 머무는 동안에도 기존에 하던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상점을 포함한 설계를 시도했고, 가구 배치 또한 골목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하여 주민 간 교류를 증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행정 절차 상의 제약으로 인해 해당 시도는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건축이 단지 구조적 해법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문화적 전환과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공동체 회복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나카 도시하루의 ‘SOHO주택’은 소규모 경제 활동과 커뮤니티 형성을 동시에 고려한 집합주택 사례다. 다섯 가구의 SOHO 유닛, 반지하 공유 오피스, 1층 식당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공유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결 지점을 만들어낸다. 입주민들은 상가번영회처럼 운영 방식과 공간 사용에 대해 논의하며, 책임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적 감각을 다시 세워나간다.


이 책은 주거 문제를 단순한 구조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공공성과 사적 삶의 균형 속에서 주거를 바라보고자 한다. 책은 설계하는 과정에서 부딪혀야 했던 제도적 관념 등 한계 역시 제시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지역 사회권’은 곧 주거의 기능을 넘어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공급자의 효율성과 행정 편의성에 따라 계획된 집합주택은 사람을 내부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고립된 개인은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행복’이라는 착각 속에서 점점 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집 안에서 OTT를 보며 간편 조리식을 먹는 도시인의 일상은 어쩌면 그러한 현실의 직접적인 반영일지도 모른다.
도서명.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출판사.
안그라픽스
참여.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공저
박창현 감수
이정환 옮김
판형 및 분량.
128 × 188 mm, 296쪽
정가.
2만 3,000원
문의.
안그라픽스 출판부
031-955-7755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