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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경계에서 공공성을 짓다

도시의 경계에서 공공성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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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태진 자료. 도만사 Domansa

 

[다르게 짓는 건축가] 건축의 경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열고, 어떤 이는 도시 투어를 기획하거나 발 빠르게 공간에 다녀와 소셜미디어(SNS)에 기록하기도 하죠. 건축가는 이제 도면과 설계를 넘어 사람과 건축,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일을 건축의 일부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경계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것이 ‘건축하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는 지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작은 가게, 커뮤니티, 새로운 미디어가 건축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는지 여러분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도시의 경계에서 공공성을 짓다 −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도만사, 조영하’
② 도면 밖으로 나온 건축 커뮤니케이터 − 건축ㆍ공간 인플루언서 ‘공간교과서, 진세인’

③ 딱딱한 건축과 부드러운 버터, 그리고 건축가 − 건축가의 버터 가게 ‘아키텍츠 버터, 위원우’


ChatGPT의 말:

도시의 변화는 한 사람의 비전보다 여럿의 손과 마음이 얽힐 때 비로소 인간적인 깊이를 얻는다. 건축주든 시민이든 자신이 속한 공간에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생긴 애정은 다시 개인의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토양이 된다.

도만사는 그런 ‘참여의 회로’를 열어주는 조직이다. 도시가 점점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고 거리의 온도가 식어갈수록 도만사는 시민이 자신의 손으로 공간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 판을 마련한다. 그 위에서 행정은 더 이상 단순히 편의를 ‘공급하는 주체’가 아니며 시민 또한 도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의미를 함께 구축하는 ‘동료 주체’로 선다.

어찌 보면 도만사의 일은 소박하다. 그러나 그들은 작고 느린 실천을 모아 도시를 조금씩 움직인다. 사라진 동네 평상을 다시 놓아 이웃 할머니들과 나누고 아이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전시 구조물을 함께 짓는다. 또 자동차의 소유물이었던 도로를 잠시나마 시민들의 놀이터로 되돌린다. 이러한 단순한 생산의 과정 속에서 도시는 차가운 껍질을 벗고 관계와 온기를 되찾는다. 결국 도만사가 짓는 것은 건물의 구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설계하는 일일 것이다.

‘도만사’를 이끌고 있는 조영하 대표 ©BRIQUE Magazine

 

사사로운 공공성

 

도만사처럼 자발적인 공공성을 띄는 프로젝트라면 개인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동기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도만사를 시작하기 전,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에서 도시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어요. 건축이라는 게 대부분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공공성에 대한 욕구나 실험적인 시도를 구현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비어 있는 이 공간을 보게 됐고 임동우 소장님(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와 ‘이제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시작했죠. 건축과 도시에 대한 생각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2019년에 이 자리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북성수의 거리와 함께 성장해왔어요. 그때만 해도 이 일대는 카페 하나 없고 대부분 저층 다세대주택 뿐이라 조금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그래서 ‘가장 힙한 성수이지만 상대적으로 문화의 사각지대인 북성수에 도시문화를 향유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됐습니다.

 

단순한 생각이었다고 하셨지만 도만사가 구현하는 공공성을 보면 더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적부터 공공성을 중시했다거나 그 의미를 자각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제 삶에 주어졌던 경로를 돌아보면 건축을 공부하고 이어 도시계획을 전공한 경험이 지금의 방향을 만든 것 같아요.

도시계획을 공부할 때 제가 배운 ‘도시’는 한 건축가 또는 계획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였어요. 지역사회를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도시계획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었죠. 건축에 관심을 갖다가 도시계획으로 방향을 옮긴 이유도 사실 멋진 건물을 짓기보다 지역사회의 의견을 기반으로 도시의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연구원에서 도시공간 정책을 다루는 일을 했어요. 이후 프라우드건축사사무소에서 ‘서울시 골목길 재생사업’이나 ‘금천구 말미마을 프로젝트’처럼 시민 기반의 도시계획 연구를 진행했죠. 그렇게 지역사회 중심의 도시 설계 방식을 계속 탐구해왔고 그 갈증이 결국 실천적 형태로 이어진 것 같아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미국에서 저는 ‘외국인’, 즉 마이너리티Minority였어요. 공교육을 받으면서도 사회적 소수자로서 다양한 차별과 기회를 동시에 경험했죠. 그런데 그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지는 교육 기회, 제도적인 형평성 같은 것들이 인상 깊었어요. 아마 이런 경험들이 공공성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게 한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조영하 도만사 대표(왼쪽)와 임동우 프라우드건축사사무소 소장. <사진 제공 = domansa>

도시계획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것을 경험하셨나요?

처음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타운 오브 하노버Town of Hanover’에서의 경험이였어요. 그곳에서 ‘어시스턴트 타운 플래너Assistant Town Planner’로 일하며 도시계획 실무를 처음 접했죠. 인구가 약 8,000명 정도된 작은 타운이었지만 그만큼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가 도시 운영의 핵심이었어요. 그곳의 모든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기반으로 진행됐어요. 지역 주민들과의 회의를 조직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계획을 세우는 방식이었어요.

일하면서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저희 ‘보스Boss’가 매일 ‘순찰’을 하더라고요. 상사와 함께 차를 타고 동네를 돌며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의 생활을 직접 관찰하는 일이었죠.

어찌보면 보안관 같은 역할이네요?

네, 정말 그랬어요. 처음엔 저도 그게 왜 필요한지 몰랐어요. 그때는 ‘왜 자꾸 나가서 사람들만 만나고 일은 안 하고 돌아다니기만 하지?’ 싶었죠. 농땡이 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는데 순찰하며 만난 동네 분들이 언젠가 도시계획 심의를 받으러 오고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 같은 지역의 중심 인물들이 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마을에 살면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평소에 인사를 나누고 관계를 맺어두는 게 결국 도시계획을 원활히 진행하는 데 아주 중요했던 거예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민원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주택 앞마당에 물건을 쌓아두면 안 된다는 규정이 굉장히 엄격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생겨서 문제를 해결하러 갈 때도 불쑥 찾아가서 “이거 치워야 합니다”라고 바로 지적하는 게 아니라, 먼저 “요즘 잘 지내? 근처 사람들은 어때?” 같은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풀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웃들이 좀 불편해하더라, 이건 조금만 정리해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죠.

저의 첫 경험이었던 지역과의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도시계획가로서 중요한 역할이란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도시계획은 도면이나 제도보다 결국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고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대화가 오갈 수 있게 중재자가 되는 일이라는 걸 처음 체감했어요.

 

2023년 여름 건축디자이너그룹 ‘으쌰으쌰브라더스’가 준비한 ‘게릴라 세레모니: 병풍의 여행’. 전시된 병풍과 함께 주민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평상을 두었고,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휴식 중인 할머니들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 제공 = domansa>

 

시민이 함께 만드는 도시

 

한국과 미국의 도시계획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제가 경험한 한국의 도시계획은 주로 디벨로퍼나 용역사가 개발 계획을 세워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어요. 반면 미국에서는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도시계획의 주체로 참여하는 모습*을 자주 경험했어요.

제가 로드아일랜드 주에서 자전거 관련 계획을 세울 때 만난 시민들 중에는 연구자, 건축가, 기업가처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며 쌓은 경험과 데이터를 공유했고 현장에서 체감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했죠. 이런 시민들의 참여가 도시계획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힘이 되더라고요.

*편집자 주: 미국 역시 대규모 도시계획이나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그 복잡도에 따라 추가적인 전문가 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시민이 단순한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계획의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의미.

 

국내에서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이 ‘민원 대응’처럼 피곤한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맞아요.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시민 참여가 훨씬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문화로 자리 잡혀 있었어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스며 있죠.

예를 들어 지역자원 보존위원회나 공공공간 심의위원회 같은 조직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운영돼요.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모여 ‘우리 동네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하는 모습이 일상적이었어요. 그 회의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공동의 가치를 실천하는 문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시민이 능동적으로 지역 문제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셨나요?

한국과 미국의 행정 구조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시민 참여’라는 개념 자체에 차이가 있다는 건 분명해요. 한국에서는 여전히 형식적인 참여 절차가 많고, 주민 의견이 ‘참고용 데이터’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죠.

그럼에도 제가 인상 깊게 본 건 한국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에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공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단순히 구경하러 오는 게 아니라 직접 돕고 봉사하죠. 그건 ‘좋은 일 하자’는 마음보다 ‘이 동네의 주인은 나’라는 주인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에요.

이런 장면을 보면서 도시계획이란 결국 위에서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방향을 만들어가는 ‘공동의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도시계획가는 그 사이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하고 현장을 매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성수동 전역으로 확장된 도시팝 활동 현장. ‘파클릿(parklet)’ 개념을 도입해 아트홀 앞 보도를 시민 중심의 공간으로 재구성했으며,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차량 공간 일부를 시민이 점유하는 놀이터이자 휴식처로 조성했다. <사진 제공 = domansa>
2023년 9월 성동구 송정동에서 열린 첫 도시팝 활동 현장이다. 뚝방길로 이어지는 골목 입구에 보도 광장을 조성해, 자동차보다 사람이 우선되고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참가자들과 함께 만든 ‘우리동네 리어카’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 즐겁게 어울렸다. <사진 제공 = domansa>

도시를 도시인의 것으로

도만사 공간을 처음 열었을 때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나요?

처음에는 지역 어르신과 아이들 중심의 전시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격식을 갖춘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는지 쉽게 들어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골목 음악회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문을 열어두고 기웃거리면 말을 걸어 잠깐 잠깐 앉아보도록 유도했죠.

저희는 이곳을 열린 공간으로 유지하려 했어요. ‘게릴라 세레모니 : 병풍의 여행 프로젝트 때 홍익대 학생들과 함께 평상 형태의 설치물을 놓았는데 첫날부터 어르신들은 평상이 익숙한지 와서 편히 누워계시더라고요. 공간을 통제하지 않고 문도 활짝 열어둬서인지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자율적으로 사용하셨고, 나가실 때는 불까지 끄고 나오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주민들의 목소리를 실제 공공에 전달했던 사례가 있을까요?

공간을 직접 사용해 본 어르신들이 지역구 의원을 이곳으로 초대했어요. 그 분들이 적극적으로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셨죠. 저희는 그 순간을 작은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공간을 알렸기 때문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발화한 것’이었으니까요.

구로구 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진행한 도시팝 활동 현장. 아이들과 직접 기획한 놀이활동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제공 = domansa>

앞으로 이런 주도적 목소리가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이어진 활동이 ‘도시팝(Urban Pop)’이에요. 우리 동네뿐 아니라 다른 문화 사각지역에서도 도만사 같은 장소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죠. 도시팝은 그런 곳들을 직접 찾아가 유휴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이동형 도시공간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히 시설을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참여하면서 공간의 의미를 바꿔가는 과정이에요.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공간의 이용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주체, 공동의 주인이 되어가죠.

직접 참여한 주민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나 효능감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행사 후 한 어르신이 저에게 “콜라보레이션이란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오늘 처음 그게 뭔지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전에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던 행사였다면, 이번에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어울리며 커뮤니티가 확장되는 걸 경험하신 거죠.

도만사의 토크 프로그램과 참가자들을 지켜보는 동네 할머니. <사진 제공 = domansa>

 

도만사의 건축적 역할

앞으로는 건축물의 완성도만큼 도만사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프로그램과 장소성을 함께 설계하는 부분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멋진 재료와 큰 규모, 비싼 건축물이라도 그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반면 단순한 벽돌 건물이라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런 경험이 가능한 공간, 그게 바로 장소성을 갖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장소성이란 단순히 ‘어디에 있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송정동에서 도시팝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그 부분을 강하게 느꼈어요. 단순한 설치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지역의 작은 돌봄 공간이 되어 있었거든요.

도시팝을 진행하던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이를 두고 “잠깐 집에 다녀올게. 필요하면 집으로 와”라며 가셨는데 오후 쯤 다시 와서 아이를 데려가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이게 건축이 줄 수 있는 돌봄의 형태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돌봄은 더 이상 엄마나 아빠만의 역할이 아니잖아요. 할머니일 수도 있고 아빠 혼자일 수도 있죠. 그런 분들이 우연히 저희 공간을 발견하고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야겠다’하며 3~4시간 머물다 가는 장면들이 생깁니다. 그게 바로 장소성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장면이에요.

도만사가 개발한 ‘도시팝 키트’. 이동이 간편하고 직접 조립할 수 있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 제공 = domansa>
<사진 제공 = domansa>

 

그런 공간들을 건축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가요?

완벽한 답은 저희도 모르겠어요. 다만 저희가 시도하고 있는 건 분명히 있어요. 저희는 ‘참여’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시민들이 직접 공간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키트 개발도 하고 있어요.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tion) 방식으로 모듈을 제작했었죠. 즉, CNC로 부품을 미리 잘라서 현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였어요.

구로구 복지관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직접 복지관 앞 보도광장을 꾸미는 프로젝트였어요. 모듈을 활용해 모형을 만들고 실제 현장에서도 함께 조립하면서 완성했죠. 그리고 마지막엔 자기 친구들과 주민들을 초대해서 작은 지역 축제를 열었어요. 그 공간이 단순히 ‘만든 곳’이 아니라 ‘함께 만든 장소’로 기억되도록요.

저는 건축이라는 걸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로 보지 않아요. ‘구축하는 일’, 즉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런 구축의 방식 중에서도 모듈러 형식의 어셈블리 구조, 이동 가능한 구축물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장소성을 체험하도록 돕고 있어요. 결국 건축은 형태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경험의 총체가 아닐까요.

폐플라스틱 톱밥과 날개를 재활용해 제작한 도시팝 키트. 가장 작은 단위의 커뮤니티 공간인 평상을 구현했으며, 조립된 평상 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조영하 대표의 모습이 놀이와 순환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domansa>
직접 조립에 참여하는 아이들 <사진 제공 = domansa>
<사진 제공 = domansa>
<사진 제공 = domansa>
<사진 제공 = domansa>

 

도만사가 짓는 꿈

 

대표님은 지금까지 멋진 프로젝트를 이어오셨는데 여전히 갈증을 느끼시나요?

사람들이 우리 만든 장소를 경험할 때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 힘들 때도 많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쩌면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도시와 건축 분야에서 비영리 조직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는 이미 다양한 비영리 활동가들이 있지만 공간과 도시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적인 비영리 조직은 여전히 드물어요. 저는 건축과 도시를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언젠가 그런 조직이 더 있기를 바랐어요. 도만사는 어쩌면 그 꿈의 연장선 상에 있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해요.

비영리에 대한 꿈,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저는 다양한 분야에서 비영리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영리를 단순히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아요. 비영리는 단체가 품고 있는 명확한 미션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고 영리 활동에서 벗어나 목표에 집중해서 달려가는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생긴 수익을 다시 사회적 목적에 지속적으로 재투자하는 구조, 그게 진짜 비영리죠. 그러니까 ‘돈을 안 버는 집단’이 아니라 미션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제가 꿈꾸는 비영리의 모습이에요.

저희 도만사의 미션도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도시계획과 건축 활동을 통해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도만사가 말하는 ‘더 나은 도시’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활력을 느끼고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넘쳐나는 도시예요. 이런 도시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도시건축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 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도만사가 도시에서 해주어야 할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순찰’하듯 동네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어디에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 지속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주민들로부터 제보를 듣기도 하고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오면 직접 발을 들여보기도 하죠. 그렇게 하나씩 접점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도시팝’ 활동도 조금 더 확장해보려 해요. 아파트 단지 내 유휴 공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볼 계획이에요. 그동안 거리, 공원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단지 내 소통과 돌봄이 필요한 시점에 공간과 삶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해보려 합니다.

©BRIQUE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