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다른 파도가 하나의 수평선을 만들다
글. 정지연 편집장, 김태진 에디터 자료. 사단법인 로컬브랜드포럼(LBF)
[2025 로컬브랜드포럼 x 강릉] 서로 다른 파도가 모여 하나의 수평선을 만듭니다. 이번 포럼은 이 문장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350여 명의 로컬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쌓아온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정책과 산업, 생활의 결까지 아우르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2박 3일 동안 무대 위 발표와 카페거리 밋업, 바닷바람 속 러닝과 네트워킹이 교차하며, 로컬은 단지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연결되는 보편적 의제임을 확인했습니다.
‘2025 로컬브랜드포럼×강릉’ 현장을 따라가며 그 안에서 오간 키워드와 목소리, 그리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로컬의 가능성을 편집팀 르포와 전문가 참관기 형태로 담아봤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편집팀 르포] 강릉에서 만난 로컬생태계
② [전문가 참관기] 지역은 왜 로컬적 재해석이 필요한가




서로 다른 파도가 하나의 수평선을 만들다
로컬 플레이어들의 민간 조직인 사단법인 로컬브랜드포럼이 주관한 ‘2025 로컬브랜드포럼 × 강릉’이 지난 9월 4일(목)부터 6일(토)까지 2박 3일간 강릉 원도심에서 열렸다.
‘로컬브랜드, 새로운 수평’을 주제로,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이름과 브랜드를 내걸고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 지역 소상공인 뿐만 아니라 대기업 브랜드, 공공 기관 담당자, 로컬 연구자 및 교육자 등 350여 명이 참석해 로컬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상상했다.
올해는 LBF 정회원 이외에도 비회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 기간을 2박 3일로 늘리고 전야제와 로컬택시, 밋업 등 세부 프로그램을 보강한 것이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강원도 내 35개 로컬브랜드들의 팝업 행사를 포럼에 맞춰 열어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해 온 데다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소통을 해 온 터라 금새 스스럼 없이 어우러졌다.




전남 여수에서 7시간을 운전해 왔다는 참가자는 “내 지역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활동을 참고하기 위해 왔다”고 소개했다. 제주도청과 제주시청에서 함께 참석한 공무원들은 “창의 산업을 육성하고 크리에이터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누군가는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또 누군가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를 만나기 위해 모였다. 그 속에서 교차한 이야기들이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번 포럼을 애써 준비한 강릉 청년들에게 되레 힘을 주었다.
주최 측은 “모든 파도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수평선을 만든다”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크리에이터와 브랜드, 그들을 둘러싼 민간과 공공이 저마다의 결로 부딪히고 흔들리며 결국 새로운 수평을 이뤄낸다는 메시지였다. 경쟁이 아닌 연결과 연대로 만들어가는 생태계, 이번 ‘로컬브랜드포럼 × 강릉’이 던진 선언이었다.
포럼, 로컬의 흐름을 담다
강릉시장을 대신해 개회식에 참석한 김두호 도시재생과장은 “로컬 크리에이터와 전문가, 정책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브랜드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지역의 가치가 주목 받고 있는 만큼 로컬브랜드들의 도전이 더 널리 알려지고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축사했다.
홍주석 로컬브랜드포럼 공동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2022년 순천 출범식 이후 첫 포럼을 군산에서, 지난해에는 부산 영도에서 개최했는데, 올해 강릉에는 더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면서 “준비해주신 분들과 참가해주신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기술 변화까지 겹쳐 도시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처음 마음을 잊지 말고 이겨낼 수 있길 응원하고, 우리들의 브랜드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K콘텐츠가 돼 세계로 뻗어나가자”고 강조했다.



1부: 로컬 2025, 전환의 신호들 10
올해 포럼은 3세션으로 나눠 각각 주제 발표와 토론의 시간이 마련됐다.
개회식에 곧이어 진행된 1부 세션 ‘오픈 토크’는 ‘로컬 2025, 전환의 신호들 10’을 주제로 고선영 LBF 공동 이사장(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김은율 동해형씨 대표, 이상창 보탬플러스 이사, 전정환 크립톤 부대표가 발제자 겸 토론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2025년 현재 로컬 생태계를 관통 중인 키워드 10가지를 사전 토론을 통해 정하고, 그 배경와 이유를 공유했다.
선정된 10가지 키워드는 △그 빵집이 ‘경쟁’하는 법 △로컬to서울(X), 로컬to글로벌(O) △5극 3특과 K지역 관광 △테라로사와, 런던베이글뮤지엄 or 로컬스티치 △지역기반 커뮤니티의 가능성 △지역 상권화와 새로운 수평 △제주도엔 로컬크리에이터 전담 공무원들이 있다 △야구장으로 간 로컬 (feat.댐에서 찾은 로컬) △군산 북페어의 돌풍 △로컬을 콘텐츠로, 콘텐츠를 자산으로 등이다.
고선영 이사장은 대전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성심당과, 글로벌 시장을 스스로 개척한 춘천 감자밭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은율 대표는 동해형씨의 싱가포르, 미국 수출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공유했고, 이상창 이사는 충주 관아골의 동네 커뮤니티와 성장 과정을 나눴다. 전정환 부대표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군산북페어’가 군산시민문화회관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PPP)이 토대가 됐던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외에도 한국수자원공사가 로컬에 관심을 갖는 이유, 제주도와 제주시에 생긴 로컬크리에이터 전담 조직 이야기를 통해 공공의 흐름도 짚어봤다.


2부: 정책의 흐름
이어진 2부 세션에서는 지역을 중심에 둔 정책의 현황을 살펴봤다.
한승헌 한국지역경영원 단장은 각 부처가 운용 중인 지역 관련 정책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도표로 정리해 비교했다. 그는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부처마다 정책마다 목표가 다르고 구현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어느 부처는 정주 환경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고, 다른 부처는 생활 인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떤 정책은 상권과 소상공인을 살리는 데 목표가 있고, 또 어떤 정책은 마을공동체를 이어나가는데 힘을 모은다. 한 단장은 “정부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라며 “목적과 목표에 맞게 쓰였는 지를 점검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의 공동 호스트인 김지우 더루트컴퍼니 대표는 고향 강릉으로 돌아와 청년사업가로 성장해온 지난 10년간을 되짚었다. 처음에는 로컬크리에이터도, 로컬브랜드라는 개념도 없었는데, 동네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방법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고. 그러면서 혼자서는 변화를 따라가기도, 성장하기도 어렵다는 걸 깨달아 공공의 정책도 활용하고, 함께 커 나갈 동네 친구들도 모았다고. 그래서 나온 것이 원도심 상권브랜드 ‘감자타운’. 느슨한 연결이지만 꾸준히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CBO는 ‘Local, Policy, Politics: 갈등과 낙관의 랩소디’를 주제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대내외적인 환경에 여러 갈등이 발생하지만 자유 의지가 기반이 된 상호 존중의 문화만 있으면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고 제언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정지연 <브리크brique> 발행인은 “정책 언어가 현장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한 아이가 자라는데 온 동네의 도움이 필요하듯 정책도 그런 조력자 중 하나”라고 마무리했다.


3부: 미래를 준비하다
이번 세션은 그야말로 지역의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브랜드 소상공인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여러 힘을 보탰다.
10년간 전북 김제에서의 생활을 토대로 ‘생애 한 번은 로컬’을 쓴 방경은 어반피크닉 대표는 로컬 생활과 로컬 창업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들과 브랜드에게 적절한 준비를 화두로 이끌었다.
‘공간은 전략이다’의 저자, 이승윤 건국대학교 교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로컬 마케팅 전략’을 풀어놨고, 신지민 네이버 리더와 박소이 카카오 PM은 각자 로컬크리에이터를 위한 AI 활용 방안 등을 소개했다. ‘누가, 언제, 왜 이곳을 찾는가’를 알 수 있는 로컬 관광 흐름을 데이터로 알아볼 방법을 소개한 권태일 한국관광연구원 팀장의 발제에는 많은 이들로부터 큰 관심과 질문이 몰렸다.


밋업, 로컬은 사람이다
LBF의 하이라이트는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호스트가 돼 다른 회원들을 만나는 ‘밋업’이다.
올해는 호스트 신청이 많아 총 17개의 밋업이 마련됐다. 분야와 주제도 다양했고, 호스트들의 활동 지역도 훨씬 폭 넓었다. 각 주제마다 10명을 선착순으로 신청 받았는데, 아이돌 공연의 티켓 예매처럼 순식간에 마감이 됐다. 호스트들은 미리 행사장 인근 명주동, 남문동 등지의 카페로 이동해 신청자들을 맞는다.
밋업의 장점은 현장에서 활동하거나 직접 사업체를 운영 중인 이들이 많아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1부에서는 △로컬의 리스크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10년차 수제노트 브랜드는 왜 공간을 만들었나? (최현우, 류하윤 명경지수 공동 대표) △동네 가게의 커뮤니티 기반 고객경험 디자인 (우은지 카이스트 박사) △밀양 느린물결마켓이 만든 시간의 감각 (최현아 공유를위한창조 매니저) △울릉도에 맥주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정성훈 울릉브루어리 대표) △부안의 풍경을 바꾼, 20대 청춘들 (윤나연 시고르청춘 대표) △대구 최초의 로컬서점의 생각 ‘반드시 느리게 걸을 것’ (김인혜 더폴락 대표) △경주 권역 사업자 900명을 단톡에 모았더니 벌어진 일들 (김기만 로컬경주 대표) △수평적 호텔, 로컬의 결을 따라 흐르다 (조승연 호텔카라멜 대표) 등이 오픈됐다.



건축, 양조, 시장, 여행 등의 주제로 확장된 2부에는 △지역을 바꾸는 데 건축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조영우 폼아키텍츠 소장) △주룩주룩 창업 스토리 : ‘소비되는 강릉’과 ‘살아가는 강릉’ (한빛찬 주룩주룩양조장 대표) △광장시장, 빈대떡 한 장에서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 (추상미 박가네푸드시스템 대표) △1유로 프로젝트가 지역을 마주하는 특별한 방법 (최성욱 오래된미래 공간연구소 대표) △로컬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 사람, 이야기, 공간의 힘 (이승민 한국리노베링 대표) △앞으로 로컬여행! 어떤 스토리가 가장 힘이 클까? (김지형 가이드라이브 대표) △로컬도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조권능 지방 대표) △대구 동인동의 5인 동업자 10년 이야기 (성주현 피키차일드컴퍼니 대표)가 참가자를 만났다.
한 참석자는 “그동안 SNS를 보면서 궁금했던 분들을 직접 만나 사업의 인사이트까지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협업할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자연스레 연결이 돼 열심히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함께 노는 시간의 ‘힘’
올해 처음 도입된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70여 명이 하루 빨리 도착했다. 모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목걸이를 걸고,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름표 너머의 이야기는 낯섦을 덜어내고, 참가자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이틑날 아침에는 강릉에서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를 주축으로 10명의 호스트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참가자들과 함께 강릉 곳곳을 누비는 ‘로컬 택시’ 숏트립을 진행했다. 강릉 주민들이 소개하는 풍광이 좋은 곳과 맛집을 4인 1조로 함께 다니며 포럼에 앞선 시간을 즐겼다. 차 안에서 오간 짧은 대화와 풍경은 도시의 결을 전했고, 새로운 교감으로 이어졌다.
홍천 청년마을 ‘와썹타운’을 운영하는 업타운이 준비한 네트워킹 파티는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간이었다. 로컬스피치, 디제잉, 이벤트 추첨이 이어지며 참가자들은 또 다른 결의 수평선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마지막날 오전 8시, 강문해변에서는 ‘게더링: 느슨한 연결의 아침’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중현 아물다 대표(책방러너 채널 운영자)가 이끈 러닝과 박소정 보리울림 대표의 해변 명상이 참가자들의 몸과 마음을 깨우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모래 위를 달리고 걸으며,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이어진 ‘커피챗’에서는 전범선 풍류회/양반들 대표가 ‘해방촌, 강원도 인제, 디지털 마을회관 실험’을 소개하며 현장의 경험을 공유했다. 방경은 어반피크닉 대표는 저서 ‘생애 한 번은 로컬’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통찰을 나눴다. 커피향이 스며든 공간 속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연결했다.



작은 파도가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다
2박 3일은 짧았지만, 각자의 파도가 모여 거대한 수평선을 이루는 과정을 함께 목격한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정책의 결을, 누군가는 사업의 아이디어를, 또 누군가는 새로운 친구의 얼굴을 익혀갔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점. 바다 위 파도가 끝내 수평선을 만들 듯, 이번 포럼에서 만난 작은 물결들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로컬생태계의 지형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