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라는 물성, 흐름을 걷는 사람들
글 & 사진. 김태진 자료. 서울국제도서전 sibf
‘믿을 구석’을 묻는 자리, 2025 서울국제도서전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6월 18일 개막, 오는 22일까지 서울 코엑스 A홀과 B1홀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믿을 구석(The Last Resort)’이다. 이 질문은 삶의 위기와 혼돈 속에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자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최근 격한 변화를 겪었던 동시대의 감정과 사회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주제로 해석된다.


서울국제도서전은 1954년부터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해 온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행사는 정치적 갈등과 제도적 변화 속에서 운영의 기반이 흔들려 왔다. 2024년 도서전은 출판협회 자체 예산과 참가비로만 운영되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존의 일괄 지원 방식 대신 개별 참가사에 직접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했다. 이러한 변화는 도서전의 운영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켰다.
2025년 도서전의 주빈국은 타이완이었다. 이 외에도 태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출판사와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책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독자들이 함께 호흡했다.
도서전은 “당신이 의지하는 마지막 구석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자연재해와 인공지능, 기후위기, 전쟁 등 전 지구적인 혼란 속에서 책이 개인에게 어떤 감정적 지지와 사고 거리를 제공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여러 부스와 강연들은 이 물음에 대한 각자의 답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냈다.

생각을 걷는 공간, 도서전이 다시 붐비는 이유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예년보다 더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번 도서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책이라는 매체가 단순한 지식 전달 수단을 넘어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책이 가진 물성은 단순히 정보를 담는 그릇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감각을 공유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매개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여성의 역사, 감정, 노동, 페미니즘, 퀴어 등 젠더와 정체성에 대한 출판물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많은 관람객이 평소 온라인을 통해 팔로우해 온 작가나 출판사의 부스를 직접 찾아와 책을 고르고, 기획자나 저자와 대면하는 경험을 통해 더 깊은 감각의 연결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은 책을 사는 행위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하나의 감각적 참여, 시대에 대한 반응으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출판계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동시대의 감정 구조, 존재 방식에 대한 탐색이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징후였다. 과거의 책이 사유와 이론의 언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오늘날의 책은 감정과 정체성,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었다.


‘도서전의 도서전’ 속 서울국제도서전의 자리
도서전은 어느덧 전국단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주류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을 ‘군산북페어 2025’나 얼마전 성료한 ‘제 3회 전주책쾌’ 등 지역별 북페어를 포함해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책 행사가 연중 펼쳐진다.
이 흐름 속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여전히 가장 큰 규모와 주목도를 가진 행사이지만, SNS상에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반응도 포착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단순한 큐레이션 마켓이 아닌, 글로벌 담론을 한국적 관점으로 재배열할 수 있는 ‘사고의 플랫폼’으로서 어떤 기획적 제안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행사들과의 차별성은 결국 ‘기획력’과 ‘언어의 명료함’에서 비롯된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독립서점, 콘텐츠 기획자, 대형 출판사 모두의 교차점이 될 수 있으려면 단순히 도서 산업을 넘어, 도서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더불어 출판 생태계 전체를 조망하는 사고의 공간으로서 입지를 다져야 한다.
이번 도서전은 많은 질문을 남겼다. 그러나 책이 정답을 내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하는 매체이듯, 그 질문이 던져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축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감각은 분명해졌다. 이 흐름이 다음 해에도,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행사명.
2025 서울국제도서전: 믿을 구석(The Last Resort)
일시.
2025년 6월 18일 (수) ~ 6월 22일 (일)
장소.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코엑스 A & B1홀
주빈국.
타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