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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가치를 &#8216;보이는 언어&#8217;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는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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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오 에디터 자료. 한국리노베링, 비마이크

 

‘지역브랜드는 어떻게 성장해야하는가?’

지난 1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랩 연남방앗간에서 열린 ‘2026 지역브랜드 디자인 경쟁력 평가(1st Local Brand Design Excellence Review)’는 기존 행사와는 결이 달랐다. 경희대학교 RISE사업단 지산학협력혁신센터(센터장 박상희)와 ㈜한국리노베링(대표 이승민)이 공동 주최한 이 자리는 로컬 브랜드가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어떻게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지, 그 방법론을 제시하는 공론장에 가까웠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그동안 모호했던 로컬브랜드의 경쟁력을 △시장 임팩트 △사회적 임팩트 △로컬 생태계 구축이라는 3가지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구체화한 ‘5대 핵심 지표’가 공개돼 관련 생태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희대 RISE사업단 지산학협력센터와 한국리노베링이 공동 주최한 ‘2026 지역브랜드 디자인 경쟁력 평가’ 결과 발표가 지난 19일 DDP 디자인랩 연남방앗간에서 열렸다. ©Bemike
(왼쪽부터) 박상희 경희대학교 RISE사업단 지산학협력혁신센터장, 나카노 시호코 한국리노베링 연구원 ©Bemike

 

로컬브랜드의 성장 방향을 알려주는 5가지 지표

 

연구진이 제시한 5대 지표는 △시장 반응성(Make Resonance) △확산 및 파급력(Cultural Spillover) △감각적 완성도(Aesthetic Coherence) △로컬 통합력(Embedded Locality) △시간을 통과하는 가치(Temporal Relevance)다. 이는 매출 같은 단편적 숫자를 넘어, 브랜드가 지역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지를 입체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다.

박상희 센터장은 모두 발언에서 “현재 지역은 공간, 제도, 사유 등 ‘네 가지 사막’에 갇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학이 청년을 돕는 시혜적 역할을 넘어, 지역 브랜드가 경쟁력을 갖추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며 “이번 지표는 신생 브랜드나 리브랜딩이 필요한 기업들이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도록 돕는 ‘성장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연구 실무를 이끈 나카노 시호코 한국리노베링 연구원은 “도시 브랜드가 인프라와 기능성을 중시한다면, 지역 브랜드는 ‘고유성(Originality)’이 핵심”이라며 “브랜드의 불완전함을 수치로 확인하는 과정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가 어떤 ‘캐릭터(성격)’를 가졌는지 분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민 한국리노베링 대표가 5가지 지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Bemike
5가지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이어그램 ©한국리노베링

 

 

2026 올해의 브랜드, 개항로·해녀의 부엌… “유형화 통해 생태계 입체적으로 조망”

 

첫 평가에 참여한 91개 후보군 중 심사를 거쳐 올해의 지역브랜드 20개가 꼽혔다. 이 중 인천의 ‘개항로프로젝트’와 제주의 ‘해녀의 부엌’이 각각 △장소 주도형 △제품 주도형 부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주최 측은 이번 평가는 ‘순위 선정’보다 ‘유형화’에 방점이 있음을 강조했다.

연구를 총괄한 이승민 한국리노베링 대표는 “단순히 1등을 뽑는 것이 아니라, 조화형, 확산형, 지속성장형 등 11개 유형으로 분류해 각 브랜드의 강점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댄싱그랜마’는 확산 및 파급력(Cultural Spillover)이 뛰어난 ‘확산형’으로, ‘칠성조선소’는 시간을 통과하는 가치(Temporal Relevance)와 시장 반응성(Make Resonance)을 겸비한 ‘지속성장형’으로 분류된다.

이 대표는 “이번 평가를 통해 우리 생태계가 어떤 모습인지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며 “대다수 브랜드가 로컬 통합력은 높았지만, 확장성이나 지속성 면에서는 과제가 남았다”고 총평했다.

 

지역브랜드 경쟁력 평가 핵심 요소 ©한국리노베링
5가지 평가 지표에 따른 각 브랜드의 경쟁력 다이어그램 ©한국리노베링
2026 올해의 로컬브랜드 20 ©한국리노베링

 

[패널토론] 운영자, 투자자, 연구자가 말하는 ‘진짜 경쟁력’

 

(왼쪽부터) 패널 토론 중인 박상희 센터장, 김지우 더루트컴퍼니 대표,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박사 ©Bemike

 

2부에서는 이승민 대표의 진행으로 △김지우 더루트컴퍼니 대표(운영)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투자)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박사(로컬 연구) △박상희 센터장(대학 교육) 등이 패널로 참가해 각 영역의 주체가 생각하는 지표의 의미와 활용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단순 KPI 넘어, 정책과 현장의 실질적 가이드가 돼야

김지우 더루트컴퍼니 대표는 운영자로서 느끼는 피로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김 대표는 “일 년에도 몇 번씩 ‘돈 내면 상 준다’는 스팸 메일 같은 시상식 연락을 받다 보니, 현장에서는 이런 보여주기식 평가들에 지쳐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중기부 등 기존 정부 지원사업은 일반적으로 매출이나 고용 같은 단순 KPI를 중요하게 보는데, 운영자 입장에서는 우리 브랜드가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나 방향성을 제대로 이해받고 싶다는 갈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5대 지표가 다른 차원의 가치를 측정해 숫자나 상징성을 넘어 실제 정책에도 반영되고, 운영자에게도 실질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북극성’ 같은 가이드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브랜딩은 상업적 전략… 자본과 대화하려면 ‘숫자’로 통역하라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는 “브랜딩은 우리나라에 300개 쯤 있는 출렁다리 중 우리 동네 다리가 무엇이 다른지 증명해 사람을 모으는 철저한 상업적 전략”이라며, 이번 지표가 로컬 씬에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지표가 로컬 씬이 안고 있는 정체와 답답함을 해소하는 솔루션으로서, 브랜드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임팩트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입증하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본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병목현상으로 ‘숫자 언어의 부재’를 꼽았다. 한 파트너는 “금융과 대화하려면 ‘숫자’라는 통역기(IR)가 필요한데, 많은 창업가가 자기 브랜드가 얼마짜리인지 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이 없으면 자본 공급자가 접근할 수 없다”며 “로컬 운영자들이 단순히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와 소통하고 투자의 병목을 뚫기 위한 필수 언어로서 브랜드의 재무적 가치 평가와 예측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표도 적자생존… ‘사회적 재무제표’로 설득해야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박사는 로컬 비즈니스의 복잡성을 ‘관계’의 관점에서 풀었다. 조 박사는 “지역에는 주민, 관계인구, 공무원 등 18가지가 넘는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며 “이들의 갈등과 이익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현장에서 창업가들이 아이템을 바꾸는 ‘피봇(Pivot)’을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표 역시 ‘적자생존’의 대상임을 강조하며,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활용법을 제시했다. 조 박사는 “최근에는 경제적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재무제표’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소통량이나 지역을 오간 시간 등을 치밀하게 기록할수록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를 정당하게 설득할 수 있다. 한 명씩 붙들고 설명하는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지표가 객관적인 설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계를 허무는 문답… “로컬은 장소가 아닌 정체성이자 데이터다”

 

이번 포럼에는 각 지역에서 미디어와 로컬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에디터들이 참석했다. 남윤주 에딧시티프로젝트 대표가 패널들에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리노베링

 

이어진 Q&A 세션에서는 ‘로컬’의 정의를 물리적 거주지를 넘어 ‘당사자성(Authenticity)’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철학적 논의가 뜨거웠다. 청중들이 “서울도 로컬인가”, “시민이 정의하는 로컬은 무엇인가”를 묻자, 김지우 더루트컴퍼니 대표는 ‘충주맨’과 ‘김성운 셰프’를 예로 들며 물리적 위치를 넘어선 ‘당사자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매장보다 ‘충주맨’ 같은 개인의 캐릭터가 더 강력한 지역 브랜드가 되는 시대”라고 짚었다. 이어 “서울에 살더라도 스스로를 ‘태안의 아들’이라 칭하며 그 지역 식재료로 요리하는 김성운 셰프처럼, 개인이 지역과 맺는 관계와 정체성이 명확하다면 그것이 곧 흥미로운 로컬 브랜드가 될 것”이라며 향후 지표가 이러한 유연한 당사자성까지 포괄하길 기대했다.

참석자인 남윤주 에딧시티프로젝트 대표는 “글로벌 시장은 한국의 특정 지역이 가진 기질과 라이프스타일, 즉 ‘태도’에 매력을 느낀다”며 거듭 로컬의 확장을 주문했다.

이러한 철학적 담론은 곧바로 생존을 위한 현실적 조언으로 이어졌다. 경주 로컬브랜드 커뮤니티 ‘경주로컬’을 운영하는 김기만 대표가 ‘선택과 집중’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자, 패널들은 ‘데이터 기반의 다각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박사는 “시장이 좁은 지역에서는 다각화가 오히려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역설했고, 한종호 파트너는 “감이 아닌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다면 굳이 사업을 버릴 이유가 없다. 10개 모두 관리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스케일업(Scale-up)의 영역”이라며 경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어워드가 아닌 ‘성장의 기록’으로… 로컬의 내일을 기약하며

 

토론의 마지막은 이 지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으로 채워졌다. 정지연 <브리크brique> 발행인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현장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언급하며 이번 연구의 중요성을 되짚었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로컬브랜드 운영자들은 본인이 단순히 골목의 소상공인인지, 아니면 지역의 임팩트를 만드는 기업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토로를 들을 때가 많다”며 “이 지표와 연구가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면, 로컬브랜드들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대표 기업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이 지표가 단순히 상을 주고 끝나는 일회성 ‘어워드’로 전락하지 않고, 연구로서 깊이 있게 확산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박상희 센터장은 이 지표의 본질을 ‘성장 기록’에 비유하며 화답했다. 박 센터장은 “아이가 자랄 때 벽에 키를 재며 성장 과정을 기록하듯, 이 지표가 브랜드의 생애주기를 함께하며 자신의 성장을 기록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아이의 키재기 표’처럼 활용되길 바란다”는 따뜻한 비전으로 이날의 치열했던 논의를 마무리했다.

 

©Bemike

 

‘완벽한 오각형’은 없다, ‘나다운 모난 돌’이 되기를

 

이번 포럼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로컬브랜드의 경쟁력은 천편일률적인 ‘표준화’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상희 센터장은 “완벽한 오각형은 오히려 표준화일 수 있다. 찌그러져 있어도 괜찮다. 모난 돌이 더 훌륭한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누군가는 시장반응성(Make Resonance)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압도적인 로컬통합력(Embedded Locality)으로 승부할 수 있고, 누군가는 감각적 완성도(Aesthetic Coherence)를 무기로 확산력(Cultural Spillover)을 극대화할 수 있다. 모난 부분을 더 강력하게 만들거나, 부족한 부분을 대학이나 파트너와 연계해 채우는 것. 그것이 이번 지표가 그리는 생태계의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가 아닐까. 이번에 발표된 5대 지표는 브랜드 스스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독해하게 해주는 진단 키트로 볼 수 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완전한 균형’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강점을 더 날카롭게 갈아 ‘대체 불가능한 뾰족함’을 만들 것인가. 그 선택은 브랜드의 몫이다.

이제 막 던져진 이 질문들이 척박한 사막에서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로컬브랜드들에 유효한 생존 지도이자, 자신만의 고유함을 짓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국리노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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